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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한국 자생식물 이야기〈26〉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Baker) Decne.)
멧돼지와 숨바꼭질하며 개미와 공존하는 숲속의 전략가, 얼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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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


숲속엔 동물과 식물이 공존한다
. 식물은 동물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동물을 통해 번식을 도모한다. 동물 중에서도 특히 멧돼지, 개미, , 나비가 식물의 생존 및 번식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친다.

멧돼지는 먹을거리가 부족한 봄철에 식물의 비늘줄기(전분 등 양분을 포함한 알뿌리)를 찾아 땅을 파헤치고, 비늘줄기를 가진 식물은 멧돼지를 피해 땅속으로 점점 파고든다. 얼레지, 한계령풀, 나리류의 비늘줄기가 그렇다.

얼레지를 포함해서 제비꽃, 피나물, 매미꽃, 복수초,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깽깽이풀 등 다수의 봄꽃이 개미와의 공존을 통해 번식한다. 이들 봄꽃 씨앗에는 엘라이오좀(elaiosome)이 붙어있다.

지방산
, 아미노산, 포도당 등으로 이루어진 영양체 덩어리 엘라이오좀은 개미 유충들의 휼륭한 먹이가 된다. 개미는 엘라이오좀을 발라낸 씨앗을 개미굴 밖으로 내다 버린다, 따라서, 얼레지, 피나물, 복수초, 깽깽이풀 등 다수의 봄꽃들은 개미굴 단위로 대규모 집단으로 서식한다.

대부분의 식물은 유전자 다양성을 얻기 위해, 자가수정 보다 타가수정 전략을 취한다. 뻐꾹나리가 타가수정을 위해 암술과 수술이 성숙하는 시기와 뻗는 방향을 달리하듯, 얼레지 또한 암술이 수술 보다 길게 뻗어나오면서 아래로 뻗는 수술과 달리 암술은 옆으로 뻗으면서 자가수정을 피한다. 꿀샘이 있는 꽃 중앙으로 곤충이 들어가려면 자연스럽게 다른 꽃에서 묻혀온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힌다.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이 드문, 이른 봄에 피는 봄꽃은 곤충 눈에 잘 띄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붓꽃류나 난초류 꽃의 아래쪽 꽃잎에는 종 마다 특유의 무늬가 들어있는데, 벌이나 나비를 내려앉을 곳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얼레지는 햇빛이 충분하면 오므렸던 꽃잎을 뒤로 활짝 열어젖힌다
. 꽃잎 안쪽에는 자주잭 W자 무늬가 선명하게 나 있다. 선명한 W자 무늬는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 눈에 쉽게 띄어 곤충을 꽃잎에 안착시키기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백합과 얼레지속에는 전세계적으로 약 25종이 분포하며, 주 분포지역은 북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1종이 얼레지로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전국의 주로 높은 산악지대에서 집단으로 자라며, 깊은 산속의 낙엽수림 하부의 비옥한 땅에서 자란다.

잎에 얼룩덜룩한 자주색 반점이 많아서 순우리말로 얼레지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 얼레지 잎은 이른 봄에 긴 타원형의 큰 잎을 낸다, 녹색이 귀한 시기에 녹색의 큰 잎은 초식동물의 눈에 띄기 쉽다. 얼레지는 얼룩덜룩한 무늬로 낙엽 속에서 자신을 감춘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녹색 식물이 출현하면서 얼레지가 꽃이 필 무렵엔 무늬가 점차 사라지고 녹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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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잎 가운데에서 꽃대가 나오고, 꽃대 끝에 1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린다. 꽃잎은 6장이고, 길이 5~6, 5~10로서, 자주색 꽃잎이 뒤로 말린다. 열매는 삭과로 3개의 능선이 발달하며, 6~8월에 성숙한다. 잎이 처음부터 지표면에 붙어 나오고, 마주보는 잎 사이에서 꽃대가 나오므로 줄기는 따로 없다. 비늘줄기는 땅속 20~40정도로 깊게 들어있고, 한쪽으로 굽은 피침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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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의 엘레지 자생지


재배특성 및 번식방법

얼레지는 깊은 산속 낙엽수림 하부 비옥한 땅에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줄기는 점차 자라면서 땅속 깊이 20~40정도로 깊게 들어가며, 그 끝에 비늘줄기가 달린다. 비늘줄기는 매년 뿌리 끝에서 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해가 거듭될수록 얼레지 뿌리는 땅속 깊이 내려간다.

지하의 뿌리나 줄기가 깊에 자라기 위해서는 토심이 깊고 유기물이 풍부한 흙이 적당하다
. 숲이 잘 발달해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흙이 마르는 것을 막고, 해마다 떨어지는 낙엽이 분해되어 양분이 풍부하고 헐거운 흙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건조하고 얕은 흙에서 건강한 생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꽃이 지고 나서 6월까지는 인경이 비대해지다가 이후 지상부가 고사한다. 땅속 깊이 자리잡은 비늘줄기는 땅속에서 그대로 동면했다가 다음해 봄에 다시 개화, 생육을 반복한다.

주로 실생으로 번식한다. 6~8월경 채취한 종자를 곧 바로 파종하면 이듬해 봄에 발아한다. 매년 3월경 싹이 터 6월경에 휴면에 들어가면서 지상부가 고사하므로, 생육기간이 짧아서 비늘줄기가 꽃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대해지기까지 6~7년이 걸린다, 이식에 취약하므로 재배적지를 선정해서 장기간에 걸쳐 재배하는 것이 요령이다.

재배시 잎에 녹병
(녹균류가 식물에 기생하여 발생되는 식물 병의 총칭. 포자의 색이 녹이 슨 색깔과 비슷하여 녹병이라 불린다)이 나타나는데, 살균제를 주기적으로 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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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의 엘레지 열매


원예·조경용

약간의 경사가 있는 낙엽수림 하부에 집단 군락으로 조성하면 좋다. 다만, 이식에 취약하고 종자에서 개화주를 얻기까지 6~7년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재배적지를 선정해서 6~8월경 채종한 종자를 대량으로 직파하여 장기간에 걸쳐 군락을 조성하는 것을 고려해볼만하다.

식·약용

얼레지 비늘줄기에는 전분이 많아서 예로부터 전분을 추출해서 국수 등 여러 먹거리로 만들어 구황식물로 이용했다고 한다. 봄에 새로 돋아나는 잎을 데쳐서 독성을 우려내고 나물로 먹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비늘줄기를 건조하여 건위제(健胃劑) 또는 지사제(止瀉劑)로 활용해 왔다.

추위 속에서 가냘픈 꽃대를 올린 얼레지 꽃은 수수한듯하면서도 도도해보인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다보면 고산지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꽃이기도하다. 흔하지만, 종자로부터 두 잎을 달고 나와 꽃을 피우기까지 6~년이 걸린다.

인고의 시간을 유충으로 보내다가 한여름 보름 정도 울다 사라지는 매미가 그렇듯
, 얼레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멧돼지를 피해 살아남아서 보름 정도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지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은 왔고, 우리 산야에 널부러지게 펴있을 얼레지 꽃이 눈에 밟힌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자리잡은 봉화군에도 문수산
, 구룡산, 청옥산 등 백두대간 자락이 펼쳐져 있다. 그 곳 산자락에서 여기저기 얼레지가 왕성하게(치열하게?) 봄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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