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초과급 동메달 결정전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렸다. 한국 이다빈이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메달은 프랑스의 알테아 로랭, 은메달은 우즈베키스탄의 스베틀라나 오시포바, 또 다른 동메달은 패자부활전으로 올라온 튀르키예의 나피아 쿠스. 2024.8.10/ 파리=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한국 태권도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수확하며 대회를 마무리 했다. 종주국으로서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세계 무대에 ‘도전자의 자세’로 임하자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진행된 파리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한국은 박태준(20·경희대·남자 58㎏급)과 김유진(23·울산광역시체육회·여자 57㎏급)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태권도 간판 이다빈(27·서울특별시청)은 67㎏ 초과급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남자 80㎏급에 우리나라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전한 서건우(20·한국체대)는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3위 결정전에서 끝까지 경쟁했다.

태권도 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한 23개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게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이는 2020 도쿄 대회(은1, 동2)보다 훨씬 좋은 성과다. 도쿄 대회에는 역대 최다인 6명이 출전했다.

금메달을 2개 수확한 건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2016년에는 금메달 2개(김소희·오혜리)와 동메달 3개(차동민·이대훈·김태훈)를 따고 출전 선수 모두 시상대에 올랐다.

서건우가 지난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급 덴마크 에디 흐르닉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24.8.9 파리=이상섭 기자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태권도계의 불안감은 상당했다. 도쿄 대회 ‘노골드’ 충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국가별 출전 선수 수 제한이 사라진 뒤로 역대 최소 인원이 출전해 걱정을 키웠다.

올림픽 태권도 종목은 메달이 특정 국가로 쏠리는 걸 막고자 2012 런던 대회까지 국가당 남녀 2체급씩 최대 4명이 출전하도록 제한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부터 체급당 한 명씩 최대 8명이 출전할 수 있었고, 한국은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5명, 2020 도쿄 대회에 6명이 출전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는 그보다 적은 4명이 나섰다. 적은 출전 인원은 국제 대회 실적 등을 통해 랭킹 포인트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올림픽 출전권 경쟁에서 한국 선수들이 밀렸다는 의미다.

8개 체급 중 5위 안에 한국 선수가 포함된 체급이 3개뿐이었다. 김유진(24위)이 대륙별 선발전을 뚫지 못했다면 올림픽에 딱 3명만 출전할 뻔했다.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진행된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 경기에서 김유진이 이란의 키야니찬데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4.8.8 파리=이상섭 기자

이런 우려는 태권도의 세계화에 속도가 붙은 추세에서 올림픽 초창기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회의론’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2012 런던 대회 때 8개 체급에서 8개 나라가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직전인 도쿄 대회 때도 7개 나라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

올림픽 태권도에 특정 국가가 메달을 독식하는 시대가 끝난 셈이다. 이번 파리 대회 때도 7개 나라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2개를 수확한 팀이 한국이다. 선수들이 ‘노골드’의 아픔을 씻어야 한다는 압박 속 절치부심해 올림픽을 준비한 덕이다. 부상을 조심해야 하는 이다빈을 뺀 3명 모두가 훈련량과 강도에서는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할 거라고 자신할 정도였다.

대한태권도협회도 효율적 훈련을 위해 ‘맞춤 코치제’를 도입했다. 대표팀을 총지휘하는 이창건 감독이 이다빈, 정을진 코치가 박태준, 오혜리 코치가 서건우, 손효봉 코치가 김유진을 전담했다. 각자 소속팀에서부터 선수들을 관리해왔던 지도자들이 대표팀이라는 큰 틀 아래 협동 체제를 이뤘다. 이다빈을 빼면 다 20대 초반에 첫 출전이라 분업 체제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나선 선수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올림픽에서 만날 선수들을 파악하기 위해 각국으로 지도자를 보내는 등 전력 분석에도 공을 쏟았다. 한국 태권도가 올림픽을 ‘도전의 무대’로 확실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태권도 대표 박태준이 지난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에게 승리해 금메달을 확정짓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2024.8.7. 파리=이상섭 기자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장은 “‘종주국론’을 주장하기에는 세계적인 태권도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며 “이제는 올림픽 태권도 경기장 매일 8천명이 4일간 들어와서 보는 시대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국 선수들에게 언제든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다빈을 이긴 우즈베키스탄 선수(오시포바)만 해도 몇개월 사이 실력이 매우 좋아졌다”며 “어느 정도 아는 선수였는데 급성장했다. 이런 선수가 눈 깜빡할 사이에 등장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종주국이라고 자만해서도 안 되고, 압박을 느껴서도 안 된다. 부단히 노력하고 선수들을 경쟁시켜서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쫓기는 기분으로, 또 도전하는 기분으로 새 선수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내부 평가처럼 종합 1위의 성과에 마냥 자만할 수는 없다. 도쿄 대회 당시 종합 1위(금 2, 은 1, 동1)를 차지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여파로 이번 대회에 참여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오르기 구르치예프가 개인중립 자격으로 참여했을 뿐 나머지 도쿄 대회 메달리스트들은 나서지 않았다.

30년 전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통해 정식 종목이 된 태권도는 첫 대회인 2000 시드니 대회부터 7회 연속으로 올림픽을 거쳤다. ‘올림픽 스포츠’로서 위상이 뚜렷해진 태권도는 4년 후 2028 로스앤젤레스(LA) 대회를 통해 8번째 올림픽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