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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해자 반성시키는 것도 내 역할”…성범죄 피해 변호사가 ‘가해자’ 변론하는 이유[우리사회 레버넌트]
변호사 된 직후 겪은 성추행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 실감”
지금은 성범죄 가해자 변호 주력 “사죄·합의 이끌어내”
“피해자 합의에 비난하는 사회…합의할 권리 인정해야”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채다은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한중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가해자의 사죄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도 변호사의 일입니다.” 올해로 9년차인 채다은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는 형사 전문이다. 특히 성범죄 가해자 측 변호를 주로 맡는다. 동시에 채 변호사는 10년 전 자신이 직접 성범죄 피해를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력이지만, 그는 피해자 변호만이 성범죄 해결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회 나오니 현실 된 ‘성범죄’…“내 탓만 하게 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 하는 채다은 변호사. 임세준 기자

성범죄라는 전문 영역은 채 변호사가 변호사를 꿈꿀 때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영역이었다. 계기는 오히려 변호사가 된 직후 찾아왔다. 서른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 변호사가 되며, 로펌 취업이 쉽지 않아 방황 끝에 우울증까지 겹친 때였다. 채 변호사는 “오히려 변호사가 되고 나서 선배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성추행을 겪었다”며 “원서를 100곳에 넣어도 면접 불러주는 곳이 2~3곳 밖에 없어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때였다”고 털어놨다.

의지할 곳이 없는 성범죄 피해자의 처지에 처음 공감한 것도 이때다. 채 변호사는 피해 당시 현장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 다른 이들에게 상황을 털어놨다. 하지만 채 변호사에게 돌아온 건 무심한 반응이었다.

채 변호사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 마치 내 탓인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며 “한편으로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나에게도 이렇게 쉽게 추행이 벌어지는데, 사회의 다른 여성들에겐 얼마나 많은 추행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해 변호 전문으로…“사죄와 반성, 합의 이끌어야”

채 변호사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측 변호를 주로 맡는다. 가해자 변호인은 가해 사실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채 변호사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채 변호사는 “무조건 상대방을 공격해 재판에서 이기는 것만이 변호는 아니다. 가해자가 빠르게 합의하거나 사죄하도록 만드는 것도 변호인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 측의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도 채 변호사 역할이다. 성범죄 고소를 당한 피고인들은 채 변호사를 찾아와 “이게 왜 성범죄라는 것이냐”는 등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있다. 이때 채 변호사는 단호하게 가해가 성립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절차를 안내한다. 채 변호사는 “어린 여직원에 성추행을 했지만 ‘너무 예뻐서 그랬다’며 계속해서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이 있어, ‘아버님 딸이 지금 몇 살이냐. 따님이 취업을 했는데 아버지 뻘인 남자가 너무 예뻐서 입을 맞췄다고 했다면 뭐라고 하시겠느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변호사는 “가해자 변호를 맡을 때 저 같은 경우 비슷한 사례에서 유죄가 나온 판결문들을 보여주며 합리적으로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임을 인지시킨다”며 “반드시 피해자의 변호인만이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인 관계였던 상대로부터 불법 촬영물 소지로 고소를 당한 피고인이 찾아온 일도 있었다. 피해자 측이 촬영물을 발견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고소를 한 탓에 피고인은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었다”고 항변했다. 채 변호사는 “피고와 원고가 그간 나눠온 대화 내역을 보니 피해자 측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가 제3자 입장에선 보였기 때문에 이 지점을 잘 설득하고, 이 건은 무고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피해자의 ‘합의할 권리’ 인식 자리 잡아야”
채다은 변호사가 저서 ‘당신 탓이 아니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임세준 기자

우리 사회에는 아직 피해자의 ‘합의할 권리’가 자리잡지 못했다는 게 채 변호사의 생각이다. 채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합의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법적으로 다투는 것만이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는 여론이 있는데 정답은 아니다”라며 “피해자 입장에선 돈을 받는다고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죄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범죄 피해와 마찬가지로 성범죄 피해에 대해서도 금전적 배상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피해자들 역시 합의를 한다는 것이 마치 돈을 벌려고 고소를 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오해를 한다”며 “하지만 고소 이후 수년에 이르는 지난한 형사재판절차를 감수할 수 있는지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회사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에선 가해자 측의 퇴사를 조건으로 합의를 한 적도 있었다”며 “고소만이 반드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생각에서 채 변호사는 지난 2022년 ‘당신 탓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형사재판 절차와 합의 과정 등 고소 과정에서 피해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정리한 책이다. 채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고소하기 전에 많이 두려워하는 것이, 성범죄 증거가 없어 ‘혐의 없음’ 선고가 나오면 무고가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라며 “하지만 허위 사실이 아니라면 무고는 성립될 수 없으므로 어떤 부분에서 죄가 성립되는지를 변호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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