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은행. [REUTERS]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유럽과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금융 제재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 은행들이 지난해 러시아에 낸 세금은 8억유로(약 1조2000억원) 이상으로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 전의 4배로 불어났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RBI, ING,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등 7개 유럽 은행이 지난해 러시아에 낸 세금은 약 7억8000만유로로 2021년 약 1억9000만유로보다 대폭 증가했다.

러시아에서 영업하는 자산 기준 상위 7개 유럽 은행의 이익이 지난해 30억유로 이상으로, 2년 전의 3배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이 낸 세금은 올해 러시아 전체 비에너지 예산 수입 예상치의 약 0.4%에 달한다.

이는 국제사회 제재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이 러시아 금융 안정성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고 FT는 설명했다.

또한 키이우 경제대학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은행 중 씨티그룹은 5300만달러, JP모건은 680만달러를 세금으로 냈다.

서방 은행들은 연 16%에 달하는 러시아의 고금리에 더해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로 혜택을 받았다.

중앙은행 기준금리가 거의 두 배로 뛰면서 변동금리 대출에서 수입이 크게 늘었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제재로 인해 국제 결제 시스템 접근권을 잃으면서 서방 은행들은 매력도가 높아졌다.

특히 오스트리아 RBI가 낸 세금은 유럽 은행 전체 납부액의 절반이 넘는다. 러시아 내 서방 대출기관 중 자산 규모가 가장 큰 RBI가 일부 기업에 부과된 횡재세 4700만유로까지 냈기 때문이다.

RBI의 러시아 사업 이익은 18억유로로 2년 전의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RBI 내 러시아 이익 비중은 3분의 1에서 절반으로 커졌다.

RBI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재무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직 러시아에 남아 있다.

RBI는 러시아 사업 축소, 매각 계획을 계속 밝히고 대출 규모를 절반 이상 감축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지만 최근 러시아 내 채용 공고에선 사업 확장에 관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FT가 전했다.

러시아 금융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 중앙은행도 RBI를 놔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제재로 인해 러시아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 남은 은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씨티그룹은 러시아에서 기업과 소매사업을 중단했는데도 1억4900만달러 이익을 거뒀다. 납세액은 서방 은행 중 4번째로 많다.

JP모건의 이익은 3500만달러다. JP모건은 러시아에서 철수하려고 했지만 전 파트너인 VTB로부터 수백만달러 규모 소송에 걸리는 등 발이 묶였다.

서방 은행들은 러시아에서 번 돈을 가져올 순 없다. 전쟁 후 비우호적 서방국의 러시아 자회사는 배당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한 유럽 은행 고위 관계자는 "예치금을 러시아 중앙은행에 보관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러다 보니 금리가 오르면서 이익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