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찐 마라탕에는 ○○ 없어요…한국의 첫 마라탕집 가보니 [혀 끝의 세계]
땀 빼기 위한 쓰촨인의 생존食
마라탕 매운 맛 중심엔 ‘화자오’

매력적인 땅콩베이스는 한국식
매콤칼칼한 투명육수가 현지식
.
혀 끝의 세계
해외여행에서 먹은 한 파스타의 소스가 너무 궁금했지만 ‘몰라서’ 몇 년 동안 그리워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죠. 중식 스타일 면요리에 들어가는 굴소스였다는 걸 말이죠. 열린 신세계는 입맛의 지평을 넓혀줬습니다. 알고 먹으니 한입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먼 나라 이웃들의 입맛에도 문화에도 관심이 가게 된 이유죠. 세계의 식탁을 둘러 싼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 봅니다. 눈으로 먼저 혀 끝의 세계를 만난 뒤, 주말이나 일상의 틈새에 새롭지만 즐거운 한입을 권해봅니다.
TVING 웹드라마 〈백수세끼〉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배우 하석진) 재호가 마라탕의 얼얼함에 놀라는 장면. [유튜브 TVING 채널 캡처]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짜증이 나고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마라탕 하오츠(好吃,맛있다), 쩐하오츠(真好吃,진짜 맛있다)~가나다라 마라마라 마라탕 먹고 싶다~”

2019년 나온 싱어송라이터 듀오 혹시몰라의 노래 ‘마라탕’의 가사입니다. 마라탕 만큼 중독성 있는 이 노래에서는 심술이 나고 분이 나는데 너무 매운 메뉴를 고를 때 마라탕을 먹고 싶다고 말하죠.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마라’가 들어간 상호를 쓰는 일반음식적 907곳이 문을 열었다고 해요. 더위가 다가 오는 이번 주말엔 이 빨간맛의 유혹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봅니다.

혀 끝의 세계가 만나는 세 번째 음식은 마라탕(麻辣烫)입니다.

마라탕은 어디서 왔을까요. 중국 쓰촨 지역의 러산시가 마라탕의 고향이라고 전해집니다. [구글 지도]

먼저 많은 분들이 마라탕을 국물 음식으로 생각하시는데요. 마라탕의 탕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국물 음식인 해물탕(海物湯), 추어탕(鰍魚湯)과는 다릅니다.

‘탕’의 한자가 다른 것 발견하셨나요?

마라탕의 ‘탕(燙)’은 데우다, 즉 뜨겁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식재료를 끓는 국이나 탕에 넣고 익히는 걸 뜻하기 때문에 육수까지 ‘쭈욱’ 마시기 위한 국물은 아니죠.

마라탕은 중국 촨차이(川菜, 사천음식)라 불리는 쓰촨요리 중 하나로 중국 러산시(乐山市)의 향토 음식으로 유명합니다. 맞아요, 삼국지에서 유비의 촉나라가 있었던 그 쓰촨입니다.

매운 음식이 발달한 쓰촨은 2010년 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아시아 최초 미식의 도시(City of Gastronomy) 청두가 있는 중국 중남부 지역입니다.

마라탕에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인 화자오. 중국식 초피로 알려져 있다. [바이두]

이곳에서는 기후 때문에 매운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중심 도시 청두로 이르는 길에는 해발고도 3000m에 이르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죠. 서쪽에는 티베트 고원, 동부에는 분지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1년 내내 습하고 해가 제대로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습한 기후는 사람의 체온을 올리죠.

생존을 위해서 쓰촨 사람들은 많은 땀을 배출해야 했습니다. 즉, 쓰촨의 중국인들은 생강 등 매운 음식을 통해 신체 속 습기를 몸 밖으로 빼내야 했습니다.

이때 향토 향신료였던 화자오(花椒)가 큰 역할을 합니다.

화자오는 한국의 초피, 일본의 산초를 떠올리시면 좋아요. 얼얼함이 특징인데요. 1600년 전부터 쓰촨 사람들은 이 향신료를 이용했어요. 이후 16세기 서양에 의해 고추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두 재료는 혀를 마비시킬 만큼 얼얼한 마라(麻辣)로 재탄생했다고 해요.

얼핏 보면 마라탕 소스에 화자오와 고추만 들어갈 것 같지만 사실 들어가는 식재료는 수십 가지입니다. 양념장에는 구기자, 백지(白芷) 등 약재는 물론 두반장, 삭힌 두부, 마늘, 생강 등도 들어가죠. 육수는 그냥 물이 아닌 사골국물에 고추기름과 화자오를 대부분 넣습니다.

자, 그럼 이 마라탕을 어떻게 사람들이 먹게 됐을까요.

가장 유력한 기원은 강가에서 시작됐다는 겁니다.

꼬치를 넣어먹는 마라탕. [바이두]
마라탕을 먹는 TVING 웹드라마 〈백수세끼〉 여자 주인공의 모습. [유튜브 티빙 채널 캡처]

고된 노동을 하던 쓰촨의 뱃사람들이 가마솥에 둘러앉아 허기를 달랠 때 여러 재료를 꼬치에 꽂아 끓여 먹었다고 해요. 한국에서 뱃사람들이 먹어서 유명해진 통영 충무김밥이 있다면 쓰촨에서는 마라탕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는 강을 따라 문명이 발달할 때 마라탕 식문화도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라탕을 먹는 2가지 방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각종 식재료가 들어간 꼬치를 육수에 담갔다 먹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식재료를 끓여 한 그릇에 담아 먹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후자의 방식이 보편적이죠. 실제로 마라탕 집에 가 보면 식재료 냉장고에는 완자나 새우, 소시지 같은 식재료들이 꼬치에 꽂혀 있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마라탕의 육수가 중국 현지와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건 마치 한국에 들어와 짠맛이 사라진 자장면과 비슷한 경우인데요. 중국식 자장면은 황장 소스의 짠맛이 특징이지만 한국식 자장면은 소스에 설탕 등이 들어간 춘장이 들어가죠.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겨냥해 초기에 생긴 마라탕 집들은 마라 소스와 땅콩, 참깨를 이용한 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일명 ‘한국식 마라탕’인 셈입니다.

중국식 마라탕을 판매하는 서울 광진구 봉자마라탕의 '소고기 마라탕'. 땅콩의 향은 찾아볼 수 없다. 김희량 기자

사실 현지식 마라탕은 좀 더 매콤하고 칼칼한 맛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토의 맛에 가장 가깝다는 한 식당을 찾아 맛보고 왔는데요. 서울에 2009년 문을 연 ‘봉자마라탕’입니다. 화자오와 고추기름이 들어가지만, 숟가락을 떠 보면 투명한 육수가 보이는 이 마라탕은 재료를 손님이 직접 고르지 않습니다.

주방장이 이미 정해 놓은 두부피, 고기, 버섯, 둥근 당면, 콩나물 등이 들어가 있는데 양념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월계수 잎, 파, 양파, 고추씨 등 30여 가지 재료를 가루로 만든다고 합니다. 재료는 사천에서 공수한답니다. 들어가는 고추도 한 가지가 아니라 3~4가지입니다.

1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태 씨는 매일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사골육수를 끓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는 “저희가 처음 마라탕집을 열었는데 대림동에서 초기 여러 곳이 본토식 마라탕을 시작했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남은 곳은 저희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봉자마라탕이 있는 자양동 중국음식거리에는 춘리마라탕 비롯해 마라꼬치훠궈 등 수많은 ‘마라’ 식당들이 있습니다.

15년째 중국식 마라탕의 맛을 고수하고 있는 박영대 봉자마라탕 대표. 그는 매일 아침 6시부터 4시간 동안 사골육수를 끓이는 일상을 지켜왔다. 김희량 기자
마라탕 집에서 매운 맛 대결을 펼치는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모습. 마라탕에 넣을 식재료를 고르고 있다. TVING 웹드라마 〈백수세끼〉의 한 장면. [유튜브 TVING 채널 캡처]

매운 맛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사랑에 웹드라마 〈백수세끼〉에도 마라탕으로 대결을 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나옵니다.

쓰촨의 중국인들은 몸속 습기를 빼내고 싶었다면 한국인들은 어떤 이유에서 마라탕을 찾는 걸까요?

한국인들의 애정과 함께 전국에는 마라탕 이름이 들어간 프랜차이즈 식당만 해도 1066개(2023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당분간 한국인들의 마라탕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너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위에 좋지 않은 만큼 건강하게 먹는 게 좋겠지요.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다는 이번 주말, 마라탕 한 그릇 하시고 가시겠어요?

〈참고자료〉

중화미각, 김민호·이민숙·송진영 외 지음, 문학동네

중국요리백과사전, 김신디·임선영 지음, 상상출판

hop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