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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의 영광 넘어라” SM, 새 미래 먹거리 찾다
해외 작곡가와 협업 ‘송캠프’ 도입
글로벌 보편성 갖춘 음악 시발점
제왕적 1인 프로듀서시대 마무리
멀티 제작센터·KMR 공격적 행보
각각 ‘SM 1.0’과 ‘SM 3.0’ 체제를 상징하는 그룹 소녀시대(위쪽)와 라이즈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열여덟, 오빠들은 내 삶의 전부였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대사)

1997년 ‘오빠들’에 미쳐있던 소녀들이 등장했다. 속칭 ‘빠순이’로 불리던 1세대 팬덤. 하얀 풍선을 손에 쥐고 H.O.T.가 가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동행하던 한국의 소녀들은 K-팝 팬덤의 ‘최초의 역사’였다.

1세대 K-팝 그룹 H.O.T.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들과 함께 K-팝 문화가 태동했고, K-팝 아티스트라는 슈퍼 IP(지적재산권)는 ‘가요기획사’가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이끄는 회사로 뿌리내리는 출발점이 됐다. 그 시작에 SM엔터테인먼트가 있었다. 모든 것이 ‘최초’였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땅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 ‘과거의 영광’은 오늘의 SM을 있게 한 성공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SM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실제로 SM은 지금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이는 K-팝의 한 시대에 대한 ‘종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M은 ‘1인 프로듀서’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K-팝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최초·최초...SM 30년 원동력은 ‘독창성’

과감한 실험정신, 트렌드를 만드는 세련미, 타협하지 않는 독창성.... SM의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소위 SMP(SM Music Performance)라고 불리는 ‘독특한 음악색’은 SM이 30년간 이 분야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SM식 음악을 만들기 위한 ‘최초의 도전’은 지금의 K-팝을 움직인 힘이 됐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SM의 인터내셔널 A&R(가수의 음반 기획, 작곡가 섭외, 녹음 등 음악작업 총괄)은 K-팝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꿨다”며 “이 시스템을 통해 나온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하는 음악이 K-팝을 한국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 이끈 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SM 최고의 ‘음악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송캠프’다. 지금은 국내 대중음악계의 ‘필수코스’가 됐지만, 송캠프를 최초로 시작한 것은 SM이었다. 송캠프에서는 각양각색의 창작자가 모여 트랙메이킹부터 톱라이닝·믹싱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노하우를 주고 받으며 하나의 곡을 만든다.

이성수 SM CAO(최고A&R책임자·이사)는 “송캠프의 핵심은 작가, 톱라이너(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 트랙메이커(반주부터 편곡까지 음악의 뼈대를 만드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를 잘 발굴해 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조합이 나왔을 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가 원하는 방향의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SM은 2009년 송캠프 실험을 시작,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송캠프 시스템을 구축했다.

송캠프는 SM 음악의 분기점이 됐다. 송캠프 시작 1년 후인 2012년 샤이니·소녀시대·f(x)가 실험적인 음악을 내며 SM의 색깔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도 이 무렵을 “SM 음악이 한 단계 올라서는 시기”라고 본다. 이에 대해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 작곡가와 달리 해외 작곡가는 새로운 관점으로 K-팝 아티스트를 바라봤기에 보다 다면적인 음악을 풀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캠프를 통해 소녀시대 ‘더 보이즈’, 엑소 ‘로또’, NCT U ‘배기 진스(Baggy Jeans)’, NCT 127 ‘영웅’, 에스파 ‘새비지(Savage)’, 라이즈 ‘토크 색시(Talk saxy)’ 등 SM 소속 가수 타이틀곡의 30~40%가 나왔다. 지금도 무려 40개의 송캠프 스튜디오를 통해 매일 새로운 곡이 만들어지고 있다.

송캠프를 비롯해 다양한 해외 작곡가들의 협업은 ‘국내 가요 감성’에서 벗어난 SM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던 계기가 됐다.

S.E.S.가 부른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는 핀란드 출신의 여성 듀엣 나일론 비트의 원곡을 다양한 창작자들이 머리를 맞대 리메이크했다. SM 최초로 해외 작곡가와 교류가 시작된 곡이자, K-팝 업계에 ‘외토벤(외국인+베토벤의 합성어로, K-팝 팬덤이 외국인 작곡가를 부르는 말)’ 시대를 알린 곡이다.

북유럽 음악 시장의 개척은 현재 K-팝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의 작곡가들이 SM 송캠프를 통해 발굴돼, 함께 음악을 만들며 K-팝에 뿌리내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바 딤버그다. SM 송캠프 출신의 그는 4세대 걸그룹 뉴진스의 ‘하입 보이(HYPE BOY)’, ‘디토(Ditto)’, ‘쿠키(Cookie)’를 만들며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고 있다.

2세대 K-팝 그룹 전성기 시절, 세련된 팝 감성을 담아낸 SM의 음악은 국내 엔터사 최초로 회사의 팬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소속 아티스트가 아니라 SM 자체를 사랑하는 팬덤인 ‘핑크 블러드(PINK BLOOD)’다. 전문가들은 핑크 블러드에 대해 “국내 음악시장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희윤 평론가는 “핑크 블러드의 핵심은 ‘SM 음악은 좀 이상하다’며 이 독특한 실험성에 빠져드는 SM의 팬덤이 결집한 것”이라며 “심지어 너무 난해하고 기괴한 ‘병맛’이라 여겨지는 음악과 세계관, 여기에 비주얼과 퍼포먼스가 더해져 핑크 블러드를 공고히 만들었다”고 봤다.

이성수 CAO는 “핑크 블러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SM이라는 브랜드와 음악”이라며 “음악에 대한 기대감, 예술로서 가지는 기대치가 높아 자발적 팬덤으로 자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SM 3.0으로 ‘더 새로운’ 음악 보여준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에스파, ‘이모셔널 팝’의 라이즈, NCT의 마지막 세대 NCT 위시....

지금의 K-팝계를 이끌어가는 신진 세대부터 2세대 동방신기·샤이니, 3세대 엑소·레드벨벳, 3.5 세대 NCT·NCT 127·NCT 드림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SM에선 K-팝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11개 팀이 컴백, 데뷔했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분쟁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었음에도 SM의 정상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며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입을 모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던가. 이른바 ‘이수만 체제’를 유지했던 SM은 3.0 시대를 선언하며 핵심 과업으로 멀티 제작센터·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했다.

SM은 1995년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사업을 시작한 후 총 세 시기로 나뉜다. ▷‘K-팝 퍼스트 무버’ 1인인 이 전 프로듀서가 이끌며 H.O.T.,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등 대형 아티스트들이 태어난 2010년까지를 ‘SM 1.0’ ▷이 전 프로듀서가 SM과 계약을 통해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엑소, 레드벨벳, NCT, 에스파 등을 탄생시킨 2022년까지는 ‘SM 2.0’ ▷멀티 제작센터·멀티 레이블 체제 등이 도입된 ‘SM 3.0’ 체제 등이다.

사실 3.0 시대는 1996년 H.O.T. 데뷔 이후 줄곧 제왕적 시스템을 유지했던 SM 입장에서는 엄청난 변화다.

멀티 제작센터의 핵심은 조직 형태의 변화를 통한 역량 집중이다. 이성수 CAO는 “새로운 프로덕션과 사람의 유입이 아닌, 기존에도 각 그룹을 이끌어 오던 ‘동일한 사람’이 달라진 환경에서 집중력 있게 아티스트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멀티 제작센터를 원활히 움직이게 할 음악 창작의 근간엔 퍼블리싱 자회사 크리에이션뮤직라이츠(KMR)가 있다. KMR은 SM의 음악 사업 뿌리 역할을 할 ‘성장동력’이다. KMR의 수장은 이성수 CAO가 겸직하고 있다.

일종의 ‘악곡 출판사’인 KMR은 현재 총 4개의 사내 독립기업(CIC)과 유럽 법인인 디자인뮤직, 선샤인 등으로 이뤄진 전 세계 작곡가들의 에이전시다. KMR에 속한 작가의 숫자만 해도 100여 명. 업계 최대 규모다. 1998년 S.E.S.의 ‘드림스 컴 트루’를 통해 외국 곡을 리메이크하고, 보아가 미국 진출을 한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창작진과 작업하며 구축한 2000~3000명의 작곡가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KMR이 하는 일이 다양하다. KMR 대표이기도 한 이성수 CAO는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한 송캠프,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레이블에 소개하는 송 피칭을 비롯해 이들의 음악을 영화, TV, 게임, 광고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싱크 비즈니스’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배분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창작자들과 레이블의 관계에서 필요한 A&R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KMR에 속한 창작자들의 커리어엔 K-팝의 어제와 오늘이 녹아있다. 이들은 SM은 물론 타기획사 소속 아티스트, 국내를 넘어 해외 아티스트와도 작업한다.

이 대표는 “KMR의 작가진 숫자나 커리어를 보면 벌써 굉장히 강한 회사가 됐다”며 “이 곳에서 다양한 작곡가들이 국내외에서 작업을 하고, 제작 역량을 갖춘 작곡가는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을 내놓거나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등 KMR에서 제작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갖췄다”고 말했다. 스트레이 키즈 출신 김우진이 소속된 프로듀서 레이블 커스터메이드가 그 사례다.

KMR이라는 음악 출판사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K-팝과 SM을 위한 미래 먹거리다. 특히 차세대 작사·작곡가를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가 크다. 이성수 CAO는 “지속적으로 좋은 음악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소속 작가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로 진출하는 활로를 만들어 K-팝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경영권 분쟁과 뜨거웠던 인수전을 마무리한 뒤, 지난 1년간 SM은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퍼블리싱 자회사를 세워 음악의 근간을 다졌고, 멀티 제작센터를 구축해 주요 아티스트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해 신규 음반 판매량은 전년(2022년) 대비 67%나 상승한 2100만장을 팔아치우며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험대 위에 놓인 SM의 상황은 여전하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경영권 분쟁 이후 SM을 둘러싼 여러 정황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리더십이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현재의 위기를 확실하게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것이 3.0 체제의 관건”이라고 했다.

정민재 평론가는 “3.0 체제로 접어들어 데뷔한 라이즈, NCT 위시 등 신인 그룹의 활동, 음악 전반의 여러 사업을 통해 SM은 다시 도약할 동력을 얻었다”며 “독보적 1위 시절은 벗어났지만 SM은 이제 다른 회사들과 상생과 경쟁을 도모하는 회사로 나아가리라 본다”고 평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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