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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수막 없음 못 이겨요” 일회용 쓰레기 없는 선거, 정말 못해? [지구, 뭐래?]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1교 위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선거철이면 거리와 건물 외벽 등 온 도시가 현수막으로 뒤덮인다. 길게는 선거일로부터 넉달, 짧게는 일주일 안팎이면 현수막들은 쓸모를 잃고 모조리 쓰레기통 행이다. 정말 현수막 없이는 선거를 치를 수 없는 걸까?

헤럴드경제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3개 선거구 8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현수막 없는 선거 캠페인’을 제안했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한 후보라도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해당 선거구에서 현수막 없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선거에서도 현수막 없는 선거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후보들이 현수막을 사수했던 건 아녔다. 또 후보들이 현수막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막도 들어볼 수 있었다.

22대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외동 창원병원사거리에 창원성산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연합]

우선 후보 8명 중 4명은 상대 후보들이 동의할 시 현수막을 걸지 않는 선거를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다만 이 답변들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상대 후보가 응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깔았기 때문이다.

서울 가 선거구에 출마한 A후보는 “현수막 없는 선거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상대 후보들이 동의하면 우리도 해보겠지만 아마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가 선거구의 B후보 측도 현수막을 걸어야 할 이유로 상대 후보를 지목했다. 캠프 관계자는 “상대 후보 캠프에서 네거티브 현수막을 너무 많이 걸다 보니 대응하지 않으면 진짜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상대 후보가 현수막을 걸지 않으신다면 저희도 고려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거대 정당이 아닌 후보들은 난색을 표했다. 모든 홍보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터라 현수막조차 놓칠 수 없다는 이유다.

서울 나 선거구에 출마한 C후보 관계자는 “소수 정당의 설움이 있다”며 “양당에 비해 전통 매체에서 발언권이 적다 보니 지역에서 현수막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수막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이전에 사용된 현수막을 재활용해 선거복으로 입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 쓴 현수막도 재활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가 선거구의 D후보 측도 “양당은 지난 4년 간 현수막 정치를 해온 반면 저희 당은 막 출발하는 입장에서 홍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수막을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현수막 없는 선거는 어렵다”고 밝혔다.

3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에 투표참여 독려 현수막이 걸려 있다. 파란색 배경에 '일찍일찍 사전투표'라는 글자가 인쇄된 현수막이 특정 정당을 홍보하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연합]

주목할 만한 건 다수의 후보들이 현수막을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서울 다 선거구에 출마한 E후보 관계자는 “유권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정보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 다니는 길목에 현수막을 걸어 놓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며 “선거 흐름 상 갈수록 지역에 거는 현수막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 선거구의 F후보도 “국민들께 드려야 할 말씀이 너무 많다”며 “지금 유일한 스피커가 (현수막)”이라고 답했다.

3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에 투표참여 독려 현수막이 걸려 있다. 빨간색 배경에 '이번에도 투표 참여'라는 글자가 인쇄된 현수막이 특정 정당을 홍보하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연합]

현수막 없는 선거는 불가능하다는 후보들, 과연 유권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오히려 설문조사 결과는 정반대다.

후보들과 달리 유권자들이 현수막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강원 춘천시에서 지난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서 “정당 현수막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답변이 94%에 달했다.

인천시의회에서 5314명에게 현수막 강제 철거에 대해 물었을 때에도 응답자의 94%는 “정당 현수막들이 교통, 보행, 안전, 도시미관 등을 위협하고 있어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수막이 홍보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눈에 많이 띈다고 해서 반드시 표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한 ‘지방선거 캠페인 홍보효과 조사’에서 현수막은 선거 참여에 가장 적은 영향을 준 매체로 지목됐다. TV 광고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61.9%로 가장 많았고, 신문 및 SNS, 라디오, 홈페이지, 현수막 등 옥외 광고가 뒤를 이었다.

주요 교차로에 걸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후보들의 대형 현수막. 후보들은 선거사무소 건물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현수막을 크기의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다. 주소현 기자

유권자들이 외면해도, 효과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현수막 없는 선거를 하기 쉽지 않다. 사소한 차이가 당락을 가르는 탓에 상대 후보들이 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 선거 유세를 할 수밖에 없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선거 운동에서 현수막을 줄이려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특정 후보가 법적으로 허용된 홍보 수단을 포기하면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막연한 기대”라며 “공직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현수막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선거 현수막을 제한하는 법들이 죄다 사라져 현수막 줄이기 캠페인도 잘 되고 있지 않다”면서 “지역 주민들이 입는 피해와 불편 등에 주목해 현수막 게시를 제한하는 조례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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