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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까지 대박날 줄이야…‘전쟁광 독재자’가 쓴 뜻밖의 국수 신화 [퇴근 후 부엌]
팟타이 [게티이미지 뱅크]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비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인문학 이야기도 한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미국 아시안 레스토랑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점은 어느 나라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첫번째는 중국, 그 다음은 일본입니다. 3위는 놀랍게도 ‘태국’입니다. 한식 음식점이라고 기대하셨다면 아쉽지만 아닙니다. 인도 음식점이 태국 다음 4위인 점도 의외인 사실이죠.

지난해 3월 데이터 조사 기관 퓨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아시안 음식점 가운데 타이 음식을 파는 비중은 11%나 된다고 합니다. 아시안계 미국인의 인구 구성과 비교해봐도 태국 음식점은 유난히 많습니다.

[퓨리서치센터]

아시아계 미국인 중 24%가 중국 출신인데 아시안 레스토랑 10곳 중 4곳(39%)은 중국 음식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일본 출신은 7%에 그치지만 음식점 비중은 28%에 이르고요. 태국계 아시아인은 전체 아시아계 미국인 가운데 고작 2%인데도 음식점 비중은 무려 11%를 차지합니다.

태국의 대표 음식을 하나 꼽자면 ‘팟타이’가 제일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아삭한 숙주와 부추, 새콤달콤한 맛에 남녀노소 ‘불호’가 없는 음식입니다. 게다가 재료를 한번에 넣고 휘리릭 볶아내기만 하면 되니 미국에서는 테이크아웃 메뉴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죠. 이런 팟타이는 사실 역사가 100년도 안된 음식입니다. 또 일반 시민들이 먹던 음식이 아닌 정부에 의해 개발된 지극히 ‘정치적’인 음식이죠.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팟타이에 얽힌 태국의 근현대사와 집에서도 간단히 만드는 팟타이 레시피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음식썰]

“요즘 당국이 정부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부서와 모든 공무원들에게 국수를 끓여 판매하도록 강요하고 있어요”, “ 이 모든 국수 선전에 지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 태국의 역사 소설 ‘씨 팬딘 (Four Reigns : 네번의 통치)’에는 팟타이에 관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태국 총리이자 작가 큭릿 쁘라못은 당시 태국 사람들이 국수를 먹도록 강요 받은 사건을 이렇게 묘사하죠.

태국의 총리이자 독재자인 쁠랙 피분송크람

국수를 볶아 먹는 문화는 몇 백 년 전 중국에서부터 태국으로 전해졌습니다만 지금의 ‘팟타이’는 1930년대 태국의 총리이자 독재자인 쁠랙 피분송크람이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쁠랙 피분송크람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족주의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강대국의 식민지 침탈이 만연하던 시대에 요리가 태국인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공동체 강화에 필수적이라고 믿었죠.

또 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쌀값 폭등과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쌀국수를 장려했습니다. 하지만 쌀국수는 태국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음식으로 여겨졌는데, 이에 피분송크람 총리는 ‘팟타이’ 즉 ‘태국의 볶음 요리’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볶음국수 요리의 태국화를 진행했습니다. 팟타이의 레시피는 그의 가정부가 개발했다고 전해집니다.

태국 현지에 가서 팟타이를 주문하면 젓가락 대신 포크를 주는데요, 이것도 피분송크람 총리의 영향입니다. 그의 집권 전까지는 태국은 주로 손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는 포크를 비롯한 서구식 식기들을 도입하고 문화를 강제로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식탁에서 포크를 안 쓰면 처벌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팟타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유타야 왕조 시대에 아유타야를 방문한 베트남 상인들이 쌀국수를 소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컵에 담긴 팟타이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온 국민의 음식이 된 팟타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태국인들과 함께 미국에 알려지게 됩니다. 1960년대 미국은 태국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태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를 통해 일반 미국인들도 태국을 여행하고 태국 음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결국 고국에서 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아울러 태국인들은 60년대 후반, 70년대부터 미국으로 이민을 시작했습니다. 네바다 대학교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교수인 마크 파둥패트(Mark Padoongpatt)에 따르면 이들 중 다수는 취업이 제한된 학생 비자를 갖고 있었고, 결국 식당 주방 및 식품 업계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그렇게 미국에 서서히 뿌리를 내린 팟타이는 2000년대 태국 왕실의 ‘미식 외교’를 통해 글로벌 푸드로 한번 더 도약하게 됩니다. 태국 정부는 2002년부터 전 세계에 태국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글로벌 타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같은 태국 정부의 지원으로 2002년 5500개였던 해외 태국 레스토랑 수가 현재 전 세계에 약 1만7000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태국 정부는 태국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소프트파워 채널로 태국 레스토랑을 주요 채널로 삼은 전략이 먹혔다고 평가하고 있죠.

팟타이는 쌀국수에 계란, 타이식 피시소스, 타마린드 소스, 붉은고추, 새우, 두부 등을 넣고 고명으로 고수, 라임, 으깬 땅콩 등을 얹어 만듭니다. 지역별, 재료별로 다양한 팟타이의 종류가 있는데, 방콕의 팟타이는 ‘팟타이 끄룽텝’, 아유타야의 팟타이는‘팟타이 아유타야’, 코랏 지역의 매운 팟타이는‘팟미 코랏’, 방콕 팟타이 중 고기가 없는 고전적인 팟타이는 ‘팟타이 망사위랏’등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팟타이를 먹어보면 새콤하면서도 액젓의 쿰쿰한 맛과 단맛이 조화롭습니다. 여기에 고소한 계란과 땅콩, 칠리 페퍼까지 다채로운 맛을 내죠. 맛의 핵심은 바로 ‘타마린드’입니다. 열대 지방에서 재배되는 콩과 식물로 열매에서는 시면서도 달콤한 맛이라고 합니다.

타마린드.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자취생 신분에 타마린드 페이스트까지 갖춰놓고 요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 조미료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팟타이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팟타이에 새우를 토핑으로 한 ‘팟타이꿍’을 만들어봤습니다. 꿍은 태국말로 새우라는 뜻입니다.

신주희 기자.

▶재료 부추 한 줌, 숙주 한 줌, 두부면(또는 1시간 불린 쌀국수면), 칵테일 새우 한 줌 계란 2알, 진간장 1큰술, 굴소스 1큰술, 액젓 1큰술, 레몬즙 약간, 식초 반큰술

1. 기름을 두르고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듭니다.

2. 물에 담가 해동한 새우, 두부면을 넣습니다.

3. 진간장, 굴소스, 액젓, 식초를 넣고 볶습니다.

4. 마지막으로 부추와 숙주를 넣고 야채 숨이 죽을 때까지 볶습니다.

팟타이는 만드는 데에 5분이 채 안 걸릴 만큼 정말 간단합니다. 또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쌀국수 면을 사용할 경우 한 시간 정도 불려 놓아야 합니다. 두부면을 사용할 경우 따로 조리할 필요 없이 바로 볶으면 되어 간편합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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