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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내다본 혜안으로 듀퐁 꺾은 ‘기술 경영인’…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누구?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 제공]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29일 타계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혜안으로 효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기업의 미래는 원천 기술에 있다’는 신념으로 기술경영을 실천했고 이를 바탕으로 ‘섬유의 반도체’ 스판덱스를 비롯한 다수의 ‘세계 1위 제품’을 키워내는 저력을 보였다.

그는 풍부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제 외교관’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민관 협력은 물론 대중소기업 상생에 이바지하는 재계의 구심점으로 역할한 경제계 원로로도 평가 받는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은 효성의 2대 회장으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효성을 이끌었다.

1935년 11월 19일 경남 함안에서 조홍제 회장과 하정옥 여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석래 명예회장은 서울 경기고에서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일리노이공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중인 1966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그룹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6~1959년 일본 유학 당시 부친인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있는 조석래(왼쪽)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 제공]

조석래 명예회장은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효성그룹의 전신) 대표이사 사장을 시작으로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그룹의 주력계열사를 맡아왔다. 선친인 만우(晩愚)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82년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해 효성의 제2 성장기를 진두지휘했다. 지난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로부터 7년 뒤 타계했다.

그는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그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이후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해 기술경영을 몸소 실천했다.

그 중에서도 효성의 스판덱스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친 결과 효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

독자기술 개발로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는 물론 세계 최고의 품질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구축으로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타이어코드, 비유럽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유럽시장 진출에 성공한 송배전설비, 금융자동화기기, 시트벨트·에어백 원사 등 다양한 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 명예회장의 미래를 내다 본 혜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 명예회장은 1990년대부터 중국의 성장세를 눈여겨 보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수출확대만이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으로 효성을 경쟁사들보다 한 발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켰다.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전력기기 등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인도, 터키, 브라질 등에 이르기까지 현지에 생산공장을 만들어, 전세계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했다.

이를 기반으로 효성은 2000년 이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2010년 이후 스판덱스 섬유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며 세계 1위 위상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 당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설비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효성 제공]
1990년 2월 HICO 창원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 제공]

조석래 명예회장은 나아가 새로운 첨단산업 육성과 제품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꿈의 미래소재’로 불리는 폴리케톤을 비롯해 탄소섬유, LCD용 편광판보호필름인 TAC필름 등은 조석래 명예회장의 창조적 마인드와 추진력, 신기술에 대한 집념이 낳은 산물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했고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과 위상 강화에 한몫했다. 효성은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일 만큼 수출지향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 세계에 걸쳐 50여개 제조 및 판매법인과 30여개의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3년 5월 청와대 기업인 초청 오찬 당시 김영삼(왼쪽 두번째) 전 대통령과 이건희(왼쪽 첫번째) 삼성전자 선대회장 등과 함께 한 조석래(왼쪽 네번째)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효성 제공]

그룹경영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아 왔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유창한 어학 실력과 풍부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인과 활발한 협력활동을 전개했다.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의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있어 그의 공은 컸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2000년부터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한미 FTA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한미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주도하여 양국 간 교류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일본과도 한일FTA의 필요성을 제기해 추진한 바 있고 한일경제인회의, 한일산업기술협력페어, 한일고교학생캠프 등을 통해 한일간 무역역조 해소와 한일 기업간 공동비즈니스 추진, 한일 국민간 우호친선활동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여왔다.

1988년 8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경제협력을 논의하고 있는 조석래(왼쪽 첫번째)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 제공]
2007년 11월 후투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를 예방하고 있는 조석래(왼쪽)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 제공]

조석래 명예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을 맡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 경제계 국제교류 활성화 등에 이바지했다.

그가 수장을 맡을 당시 전경련은 그 역할이 퇴색돼 가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조석래 명예회장은 재계의 넓은 인맥과 특유의 리더십으로 전경련을 ‘일하는 조직’, ‘솔선수범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부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해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발전하는 데 역할했다.

‘재계의 대표 민간 외교관’으로도 불린 조석래 명예회장은 민간 외교활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9년 일본 욱일대수장, 1980년 덴마크 다너브러 훈장을 수훈받았다.

2000년 미국 일리노이공대(IIT) 국제지도자상, 1994년 한국경영자대상, 1987년 금탑산업훈장, 1982년 체육훈장 등을 받았으며 2013년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명예공학박사를, 2005년 일본 와세다대에서 명예공학박사를 각각 수여받으며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의 위상을 정립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와세다대와 일리노이공대의 한국 동문회 회장직을 오랫동안 맡아 왔고 동양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양고, 동양미래대 등을 통해 미래 우수인재 육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부사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76년 11월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있다. [효성 제공]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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