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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병 엄마 때문에 왕따 당했다…내가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해? [고승희의 리와인드]
조현병 소재로 한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낙인을 견딘 사람들의 성장기·그들을 향한 위로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라의 하늘엔 비가 많이 내렸다. 엄마와 함께 구름다리를 오르던 그날부터였다. “하나님께 기도를 한 이후 화투에서 진 적이 없다”며 웃기 시작하는 엄마. 강력한 웃음에 전염되듯 사라도 따라 웃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엄마, 그만 웃어.”

사라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스민다. “사라 엄마, 혼자 실실 웃고 다녀.” 엄마의 웃음이 사라의 낙인이 된 날. 이 날부터 사라의 삶에 균열이 생겼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2월 23일~3월 3일·대학로예술극장)는 조현병을 앓는 엄마를 둔 10대 소녀 사라의 고백을 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질병 기호 F20, 조현병 가족이라는 이유로…

원형의 무대, 동그란 테이블 위에 사과 하나가 놓여있다. 그 옆으로 앉은 사라.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사라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다. 그의 얼굴엔 대체로 별다른 표정이 없다. 원형의 무대를 트랙 삼아 달릴 때에만 드러나는 사라의 감정의 파편들엔 엄마의 낙인이 가져다준 거대한 고달픔이 묻어난다.

연극은 두 축으로 흐른다. 한 축은 조현병을 앓는 엄마를 지켜보며 세상의 편견을 받아내는 사라의 이야기, 다른 한 축은 ‘조현병 보고서’라고 할 정도로 상세하게 풀어낸 해설이다. 이 두 축이 상호작용하며 치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멈춰 세우고 끼어든다. 조현병을 다루지만 정작 조현병 환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연극을 기획한 손신형 PD는 “한 걸음 떨어져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며 객관적인 감정을 유지하도록 했다”며 “사라의 성장을 통해 관객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선택한 방식”이라고 했다.

엄마의 ‘이상 신호’를 마주한 이후 사라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선 사라를 더러운 오물이나 감염병 바이러스 취급을 하기 일쑤였다. 왕따를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현재의 고통이 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라는 엄마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큼 두려움과 수치의 크기를 함께 키워간다. 엄마를 진단한 의사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조현병은 유전인가요? 나을 수 있나요? 원인이 뭐예요?”

질병분류기호 F20. 오랫동안 ‘정신분열증’으로 불렸고, 지금은 병에 대한 오해를 지우기 위해 ‘조현병’으로 이름 붙였지만 편견은 여전한 병. 정확한 음을 내기 위해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의미의 ‘조현’이 병의 이름으로 붙은 것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너무 팽팽하거나 느슨해져 제멋대로의 음을 내는 악기들의 줄을 적당히 바로잡는 것, 즉 ‘현을 조율하는 병’이 조현병이다.

조현병은 흔한 질병이다. 전체 인구의 10%는 조현병. 일반인이 조현병에 걸릴 가능성은 1%에 불과하지만, 부모나 형제 중 한 명이 조현병 환자일 경우 발병율은 5~10%다. 부모 모두가 조현병 환자일 경우 자녀가 조현병에 걸릴 가능성은 40%. 하지만 이는 발병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것일 뿐, 조현병이 100% 유전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은 사라의 불안과 두려움이 피어날 때마다 조현병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다. 하지만 사라는 모든 것이 위태롭다.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이 “정상인지, 증상인지” 알 수 없어 두렵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엄마를 짐승처럼 끌어내 새하얀 엉덩이를 내보이며 병원으로 넘긴 아빠를 향한 분노는 커진다. 사라는 “넘겨진다는 표현은 엄마의 박탈당한 주권을 의미한다”며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엄마를 향한 연민 등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아빠에 대한 분노로 키운다.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지금 꾸는 이 꿈이 너무도 끔찍해 “엄마가 집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며 속마음을 뱉어버린다.

사라는 엄마가 조현병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주도한 동급생의 얼굴을 연필로 찔러 구멍을 내고, 스스로의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스무날 분의 향정신성 약물을 한꺼번에 집어삼킨다. 그 시간이 4시 48분. 천재 작가 사라 케인(1971~1999)의 ‘4.48 사이코시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자 사라 케인에 대한 오마주다. ‘4.48 사이코시스’는 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쓴 작품으로 현대인의 정신분열과 고독, 소외를 주제로 한다. 4시 48분은 연극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 중 하나다. 연극에선 시시각각 4시 48분을 대사로 읊는다. ‘4시 48분’은 한 사람의 삶에서 변곡점이 되는 때, 깨달음을 얻는 때, 명료하게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치유가 일어나는 시간을 상징한다.

사라는 “왜 내가 손가락질을 받는지 모르겠다”며 “이곳에서 나를 꺼내줬으면 좋겠다”며 울부짖는다. 그제서야 원통한 심정이 드러난다. 사라가 상처입을 때마다 하늘에선 비가 왔고, ‘이상한 나라’로 초대하는 토끼 구름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연극에선 몇 번이나 ‘희망의 노래’가 흘렀다. 아이슬란드의 포스트 록밴드 시규어로스의 ‘호피폴라’다. 시규어로스는 심지어 대사로도 등장했다. ‘호피폴라’는 아이슬란드어로 ‘물 엉덩이에 뛰어들다’라는 뜻이다. 아이슬란드어와 그들이 만든 언어인 ‘희망어’를 조합해 노래하는 시규어로스의 곡을 차용한 것 역시 상징적이다. 이 곡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플래닛 어스’(BBC), 영화 ‘페넬로피’에 쓰이기도 했다. 물웅덩이를 뒹굴어도, 매일 상처입어도 다시 서겠다는 의지가 사라의 성장을 응원한다.

사라는 엄마를 마주한다. 사라의 엄마는 끊임없이 사과를 깎았다. 사과를 깎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내가 아빠 죽여줄까?”. 픽 웃는 엄마. 사라는 아주 오랜만에 수치와 악몽을 딛고 자신을 긍정해준 엄마를 바라본다. 사라는 엄마가 자신과 같은 감정을 겪어왔다는 동질감을 갖는다.

사과꽃이 진 자리에 맺힌 사과를 깎으며 “정말 향기롭지 않냐”고 말하는 엄마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사라는 “엄마는 이상한게 아니야. 아픈 거야”라며 마침내 엄마를 인정한다. “내가 어떻게 내 운명을 사랑할 수 있겠냐”던 사라는 ‘호피폴라’에 맞춰 춤을 추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가장 아름다운 흉터 위에서 열매로 맺힌 사과는 사라의 성장과 극복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상처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응원하듯 사라는 온전히 자신을 마주한다. 그 시간 역시 4시 48분이었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조현병 팩트 체크…편견과 혐오의 해소 장치

연극엔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다. 두 개의 큰 구성을 풀어내는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사라의 이야기는 상징과 함의, 시적언어로 가득찬 반면 해설자가 등장해 조현병을 설명하는 부분은 다양한 도표를 활용해 일목요연하게 ‘팩트 체크’를 해나간다. 조현병이라는 병명이 범죄와 연관돼 오르내린 이후 생겨난 맥락 없는 편견과 혐오를 객관적 정보로 해소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 역시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원인진 작가는 배우 출신 극작가로 ‘이상한 나라의 사라’에서 해설자 역할을 맡고 있다. 원 작가는 “조현병을 검색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이 조현병의 본질과 무관하게 흥미 위주의 보도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조현병에 대한 오해를 줄여보고 성장기에 있는 사라가 병에 걸린 엄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도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시작했다”고 했다.

창작진은 ‘조현병 편견 지우기’를 목표로 둔 기획의도를 충실히 따르듯, 연극 내내 섬세하게 조현병에 접근했다. 세상이 조현병 환자를 두고 ‘예비 살인자’, ‘미치광이 정신병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해도, 연극은 사라의 엄마에 대해 단 한 번도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라를 괴롭히는 동급생 K만 빼고다. K는 조현병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의 시선이기도 하다. 원 작가는 “언어는 확산되고, 확산된 언어는 고착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편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언어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극은 조현병을 충실히 다루지만, 세상의 모든 편견을 받아내고 지워지지 않은 낙인을 가진 소수자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친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돼 자신만의 삶을 꽃 피운 이들의 성장기이자 그들을 향한 위로다.

원 작가는 “조현병 환자, 혹은 다양한 편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회 사이에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사라가 그 둘을 잇는 다리이자 성장을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사라의 성장으로 인해, 그에게 찍힌 낙인은 표식으로 치환된다. 연극은 ‘표식(表式·무엇을 나타내 보이는 일정한 방식)’을 인정하는 공존의 삶을 그리며 끝을 맺는다. 몇 번이나 강조하는 마지막 대사엔 절박한 단호함이 담겼다. “표식은 드러내야 합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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