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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현장 인터뷰] 세계적 작가 최울가 “나도 내 작품 잘 몰라요, 그냥 느끼시면 돼요”
갤러리코쿤, 최울가 작가 전용갤러리 오픈
블랙시리즈 등 ‘원시적 영감’ 명작 한눈에
최 작가 “어린시절 연상 동굴벽화 모티브”
순간적 감성을 컨템포러리 이미지화한 것
어항·동물·술병·꽃 등 경지에 오른 낙서
“5~60년대 한국적 특유애환 작품배경”

최울가(WoolGa Choi) 작가가 ‘최울가 전용 갤러리’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울산과 집(家)을 합친 말이 자신의 이름이라며 작품 뿌리엔 늘 한국적 정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은근히 강조했다.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호텔오크우드 지하 2층의 한 갤러리.

“나도 (내 작품을)잘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해요?”라는 최울가(68) 작가의 말에 갤러리 방문객들이 일제히 웃는다. 이날 조형 예술 콘텐츠 기획사이자 갤러리코쿤을 운영하는 코쿤디아트(KOCOON D‘ART·대표 이카타리나)는 이곳에 ‘최울가 전용 갤러리관’을 오픈했다. 뉴욕, 파리, 베를린, 도쿄 등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 작가는 원시적 동굴벽화의 영감을 작품에 불어넣는 유니크한 예술세계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다. 그는 이날 갤러리 방문 손님들에게 작품을 설명해달라는 이카타리나 대표의 제안에 이같은 첫마디를 떼 손님들을 빵 터뜨리게 했다. 최 작가는 그러면서 “제 작품은 순간 순간 낙서하듯 스치는 것을 나만의 해석과 나만의 언어로 작품화했을 뿐이니, 설명은 좀 그렇고 (굳이 말씀 드리자면) 작품이란게 그냥 내 맘에 와닿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걸로 대신하죠”라고 했다. 갤러리 방문객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 작가는 “스쳐가듯 보시고 손님들이 보시는대로 느껴달라”고 했다.

이름에 풍긴 진한 한국 정서, 울산+집(家)

최 작가는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곤 부모님을 따라 곧바로 부산으로 이사했단다. 출생지인 울산은 그의 진정한 고향이다. ‘최울가’란 이름은 예명인데, ‘울’자는 울산을, ‘가’자는 집 가(家)를 뜻한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적 작가로 이름 났지만, 낯선 외국에서 고독한 작품세계를 고집했을 그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예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리에서 화폭 세계를 배운 최 작가는 2000년 뉴욕에 건너가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펼쳤다. 뉴욕 도심을 장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실험정신과 자유로움에 반해 인간의 본능, 특히 유희적인 측면에 집중해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실험했다. 최울가 작가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한 것은 이것이 계기가 됐다.

최 작가는 ‘동굴벽화 작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는 인류 최초의 예술행위인 동굴벽화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원시적 색채와 단순하면서도 리드미컬한 형태 표현을 통해 무의식 세계의 에너지를 화폭에 담는 화가다.

울산은 한반도 선사 문화의 정점이자 세계적 유산으로 평가받는 ‘반구천 일원의 암각화’가 있는 곳이다. 최 작가가 태어난 곳과 동굴벽화 영감을 어우려보면 그의 작품세계 뿌리가 너무나 ‘한국적’인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그의 작품에 어린시절 같이 뛰어놀던 강아지 등 동물, 바닷가 놀이를 연상케하는 어항과 물고기 형태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전쟁 후 배고프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콩 한쪽도 나눠먹던 한국인의 정과 애환이 그의 작품에선 늘 은은한 색채로 풍겨나온다.

최울가 작품 ‘블랙 시리즈’ 중 하나. 동굴벽화 모티브의 동물과 동식물 등의 자유로운 배치가 특징이다.

최 작가와 스탠딩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계적 작가라고 들었는데, 수줍음을 많이 탄다. 40~50년 동안 작품에 동심을 담다보니 그런가 가끔 어린아이처럼 쑥스럽게 웃는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정말 모처럼이라고 했다.

▶작품세계가 시종일관 동심과 연결돼 있다. 설명 좀 해달라.(최 작가의 홈페이지에 가면 작품이 3개의 영역 ‘블랙 시리즈&레드블랙 시리즈’, ‘화이트 시리즈’, ‘조각&원시적(Sculpture&Primitive)’으로 소개돼 있다).

-나도 잘 몰라요. 그냥 어린시절 경험과 축적된 경험이 (머리 속에)스치고 지나가면 그걸 본능적으로 캐치해서 회화화 시키고 만들곤 합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많지만, 즉 순간적 감성을 하나의 컨템포리(contemporary·동시대)적 이미지화를 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4개월 걸리는데, 그동안의 수없이 스친 감정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합니까. 하하하.

▶그 모티브가 동굴벽화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 놀이 기억과 관련이 크지요. 제 이름(예명)이 ‘울가’인데, 울산과 집(家)란 뜻입니다. 울산에서 태어난 아이죠. 1950~60년대 아시죠? 전쟁후 다들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유난히 정은 많은 시절이었죠. 50~60년대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애환이 그림 바탕이지요. 수많은 한국인들의 습성과 모습을 모티브로 한다고 할까요? 고향산천이 그림 원천인 셈이죠.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그냥 낙서가 경지에 올랐다 정도로 봐주시면 돼요. 어린시절의 추억과 그런 단편들을 늘 낙서하고 스케치하는 게 버릇입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그 낙서를 하면 도가 트지 않겠어요? 제가 작품을 한지 40~50년은 됐고 많은 작품들을 했는데 그것들(작품 모티브와 배경 또는 그것에 대한 정의)을 어떻게 말 몇마디로 풀어낼 수 있겠습니까. 맘에 와닿는대로 보시면 됩니다.

▶울산의 유산인 암각화와도 관련이 있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태초의 원시, 과연 동굴벽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울산 암각화는 선사시대에 어떻게 생기게 됐고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영감이 당연히 떠오르겠죠.

▶선생님 시리즈를 보면 동물과 물고기 형태 등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유는.

-역시 어린시절 기억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강아지 등 동물, 바닷가와 물고기, 술병과 꽃 등은 그때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요. 그걸 자유롭게 배치하는 것입니다. 좀 사람이나 동물, 동식물들이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사람과 동물, 동식물 간 자유로운 대화

▶‘자유로운 배치’라고 하셨는데, 그게 그림의 표방점인가요.

-제 작품엔 포멀한 형식은 없습니다. 딱딱한 것 싫어해요. 색상도 달리하고, 소재 배치가 자유롭습니다. 정형화된 패턴은 없습니다. 아무런 규칙없이 무질서하게 배치된 일상 소재는 문명 이전의 순수한 정서를 의미합니다. 어떠한 위계나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 문명 이전의 고도의 순수함, 그 원시적 정서에 전 늘 천착합니다. 그리고 제 작품은 아크릴 같지만 100% 유화입니다. 물감 전체가 분리되는 듯한 느낌, 소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서 영혼의 프리함을 극대화한 느낌, 그런 것들이 굳이 표방점이라고 한다면 표방점일 수 있다 싶네요. 원시시대는 정말 그러지 않았을까요?

▶뉴욕에서 발표한 대표작 ‘시리즈(Series)’는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나.

-그냥 우주와 빛의 근원을 상징하고 싶었어요. 원시적 생명력을 뿜어내는 흑과 백의 화면위의 일상적 요소들이 다수 등장하는 게 특징인데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것도 낙서입니다. 40~50년간 낙서만 하면 달인이 됩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을 전광석화처럼 낚아채는 낙서, 그게 작품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울가 전용 갤러리를 찾은 방문객들이 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너무나도 사적인 질문인데요. 그림 공부하러 외국에 유학갈 정도면 그런대로 사는 집이었나 봅니다.

-전혀 아닙니다. 외국 가는데 재산신고하는데 돈 없는 집이니 공항 사람들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외국 가서는요? 일단 가기는 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거처가 없어 창고에서 자기 일쑤였고, 거기서 작품하고 못먹고 정말 고생했어요. 지금은 추억으로 남긴 하지만요.

▶한국에서의 전시는 자주 하나요.

-거의 안하는데요. 갤러리코쿤 대표와 인연으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서…. 하하하. 파주에 화실이 있어요. 그곳에서 작업합니다. 한번 놀러오세요.

80년대 파리 국립 장식 예술 학교와 베르사유 시립미술학교를 졸업한 최 작가는 전통미술에 그치지 않고, 뉴욕으로 건너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현대미술에 매료됐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우주와 빛의 근원을 상징한다. 동굴벽화에서 얻은 원시적 영감은 그의 화폭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1979년 첫 개인전을 했고 뉴욕 전시회 등에서 화제를 모았으며 지금은 세계적 명성의 작가로 발돋움했다. 10여년전 최 작가는 ‘나는 하이에나처럼 걸었다’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예술에 심취하면서도 하이에나처럼 외로움에 절어있었던 그의 지난날을 거기에 담았다. 그림을 배우려고 낯선 땅 창고를 전전하던 그의 고독은 전시된 갤러리 작품들과 오버랩된다. 최울가 전시회는 22일 오픈을 겸해 시작됐으며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정확한 전시명은 ‘최울가 개인전(제3의 눈)’.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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