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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도 안 보여” 미세먼지 뿌연 하늘…꿀벌들도 앞을 못 본다니 [지구, 뭐래?]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 뒤로 미세먼지가 자욱한 원효대교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겨울과 봄철 기승인 미세먼지. 숨 쉬기도 어렵지만, 눈 앞까지도 흐릿할 만큼 시아를 방해한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인간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꿀벌의 생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꿀벌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방향 감각을 잃어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꿀벌의 활동이 식물의 번식과 직결된다는 점. 꿀벌이 사라진 곳에서는 식물의 번식도 어려워지고, 이는 곧 인간의 식량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다.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 칩이 삽입된 꿀벌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세계자연기금(WWF)이 21일 발표한 ‘대기오염으로 인한 꿀벌 시정 거리의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오염이 증가하면 바깥에서 꿀을 채집해오는 일벌의 방향감각이 저하할 수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4월12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및 제주의 4개 꿀벌 집단의 일벌 2500마리에게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를 부착해 이들의 활동 시간을 추적했다.

그 결과 PM2.5의 미세먼지가 400㎍/㎥ 이하일 때 외역봉은 평소보다 1.7배 더 오래 먹이 탐색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먹이를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은 꿀벌의 탐색 기능이 떨어진 증거로 판단했다.

연구원이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 칩을 심는 모습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쉽게 이야기하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꿀벌들의 나침반 기능이 떨어지는 셈이다.

대부분의 곤충은 태양이 가려질 때 편광 신호에 의존해 방향을 찾는다. 자연광이 전기장이 여러 방향으로 진동한다면 편광은 전기장이 특정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빛이다.

대기 중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에어로졸)들이 늘어나면 편광의 강도, 편광 중에서도 선편광의 강도가 줄어든다.

문제는 꿀벌이 선편광의 신호만을 사용해 방향을 탐색한다는 점이다. 선편광이 최소 15%는 확보돼야 완벽한 방향 설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선편광이 이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꿀을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방향을 잃게 된다. 일벌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면 꿀벌 집단 자체가 떼죽음을 당할 수 있는 셈이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일대가 미세먼지로 인해 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세준 기자

꿀벌의 위기는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상업적 작물의 약 75%는 동물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열매를 맺는다. 이에 꿀벌을 비롯한 수분 매개자들이 줄어드는 건 가장 시급한 기후환경 문제 중 하나다.

그동안 벌 개체 수가 줄어드는 원인으로 크게 토지 이용과 기후의 변화가 지목돼 왔다.

도시화로 꽃이 풍부한 서식지가 농지가 되고, 벌의 서식지도 줄어들어서다. 살충제가 늘어나는 것도 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날씨가 따뜻하고 습해질수록 벌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벌의 천적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런데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 오염조차 벌의 활동과 생존에 불리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제한된 가시성은 식물 번식에 매우 중요하다”며 “수분 매가자의 탐색 실패로 인해 수분 손실이 단 하루만 발생해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양봉농가의 벌통에서 겨울 새 벌들이 사라지는 집단 붕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제공]

미세먼지로 인한 벌 개체 수 감소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보다 2050년에 PM 2.5 미세먼지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인도 북부 지역에서는 최소 100일 이상, 중국 동북부 일부 지역에서는 20일 이상 벌의 비행이 교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인도와 중국은 벌이 길을 잃도록 하는 인위적인 에어로졸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들이다. 동시에 벌들의 수분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전세계에서 과일과 채소를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인도로,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으로 수입을 얻는다.

연구팀은 “인도와 중국에서의 농업생산에서 수분 수요 충족이 실패가 전세계적인 식량 부족과 미세 영양소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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