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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이나 똥이나 똑같아”…분뇨로 돈 버는 청춘의 사랑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흑백 시대극
에도 시대 순환경제 속 청춘 사랑
[앳나인필름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돌고 돌아 음식이나 똥이나 똑같아.”

1858년 일본 에도 막부가 집권하던 시절, ‘똥거름 장수’인 야스케와 츄지는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분뇨를 수거한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참으며 분뇨를 배에 옮기고선 다른 마을에 있는 농부들에게 거름으로 되판다. 매일 분뇨로 시작하고 분뇨로 끝나는 하루. 가끔씩 분뇨 값을 너무 적게 쳐준다며 무시하는 진상 고객들 탓에 고단하기도 하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들이 담당하는 한 공동주택엔 사무라이 가문 출신의 외동딸 오키쿠가 산다. 조직 내에서 소신 발언을 했다가 밀려난 아버지 탓에 가난한 공동주택 생활을 하게 된 오키쿠. 곧이어 아버지는 사무라이식 복수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를 따라 나섰던 오키쿠도 목을 다치며 목소리를 잃는다. 1년이 넘도록 칩거하며 두문불출하던 오키쿠. 다행히 야스케와 츄지의 관심 속에서 조금씩 일상의 세계로 돌아온다.

[앳나인필름 제공]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19세기 에도 시대 당시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마키 쿠로도 분)와 인분을 사고파는 분뇨업자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분)와 츄지(칸이치로 분)의 사랑과 청춘을 경쾌하게 담은 시대극이다.

일본 뉴웨이브 대표 거장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30번째 작품이자 최초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완성된 첫 흑백 시대극이다. 사카모토 감독은 1973년 도쿄에서 납치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건을 다룬 ‘KT’(2002)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감독이다.

영화는 일본에서 ‘괴물’과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제치고 제97회 키네마준보 일본 영화 베스트 순위에서 1위로 선정되는 동시에 각본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앳나인필름 제공]

영화의 주요 소재는 분뇨다. 영화는 끊임없이 분뇨를 퍼다 나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에도 시대의 실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에도 시대는 대내적으로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대외적으로는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 쇄국 정책으로 외부와 일절 단절됐다. 때문에 사람들은 종이에서 기모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원을 재활용하며 살아야 했다. 인간의 폐기물인 똥마저도 재활용과 거래의 대상이었다.

영화는 에도 시대의 이러한 순환경제 사회에 초점을 맞춘다. 분뇨로 키운 작물을 사람들이 섭취하고 작물이 다시 분뇨가 되는 일상을 배경으로, 분뇨업자들의 핵심적인 역할을 조명하는 한편 그들이 겪었던 차별과 빈곤의 문제까지 짚는다. 그러나 무겁기 보다 경쾌하다.

[앳나인필름 제공]

영화 제작진은 촬영 현장에서 기모노 의상을 비롯해 미술세트나 소품 등을 모두 재사용품으로 활용하는 등 실제 순환경제 움직임에 동참하며 눈길을 끌었다.

사카모토 감독은 “에도 시대에 분뇨업자들이 음식과 분뇨의 순환 과정에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니 이런 독특한 방식의 순환경제라면 충분히 다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그간 공개된 시대극 중에서 이런 주제를 택한 작품이 없었기에 제작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앳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동시에 서글프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청춘들과 이들의 순수한 사랑도 섬세하게 다룬다.

사카모토 감독은 “에도(시대)를 무대로 청년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린 작품”이라며 “영화가 단지 에도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오키쿠로 분한 마키 쿠로도는 데뷔와 동시에 9개의 신인상을 휩쓴 연기파 배우로 ‘작은 집’(2014)으로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탄 바 있다.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90분.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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