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진출 1세대 “오디션은 계속 도전중”
“앞으로 배우로서 작품을 할 땐 제작진에게 잘해줘야겠구나 생각했어요. 25년 넘게 연기를 했는데 제작이 이렇게 힘든지 정말 몰랐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있는지 몰라요.”
영화 ‘도그데이즈’의 주연이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배우 김윤진(사진)은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 제작의 어려움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7일 개봉한 ‘도그데이즈’는 사람들이 반려견을 매개로 따뜻한 관계를 맺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윤진은 난임을 겪는 와중에 우연히 만난 보육원 아이를 입양해 정성껏 키우는 정아 역을 맡았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해피 디 데이(원제: Dog Days)’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영화가 리메이크될 수 있었던 배경엔 김윤진의 공이 컸다. 김윤진이 기내 시네마를 통해 우연히 ‘해피 디 데이’를 본 뒤 이를 한국판으로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판권 구입에 나선 것.
“당시 제 반려견을 무지개 다리로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영화를 보며 엄청 울었어요. 기내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 영화였죠. 이후 열흘 동안 영화가 머릿속에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적인 색깔을 입힌 버전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곧장 남편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 자이온 이엔티와 함께 미국 소속사, JK필름 등 곳곳을 설득해 제작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화가 나오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김윤진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한국적인 색깔을 입히는 데 가장 주안점을 뒀다. 한국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의 나이, 성별 등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냉정하게 (원작의) 70% 가량이 바뀌었죠. 예를 들면, 반려견 스팅이 머리끈을 먹고 아픈 장면은 사실 원작에선 반려견이 대마초를 먹고 아픈 거였어요. 그런 미국식 유머를 모두 한국식으로 바꿨어요. 감독님과 작가님이 다행히 한국적인 색깔을 너무 잘 입혀 줬어요.”
김윤진의 배우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는 바로 ‘쉬리’와 ‘원조 월드 스타’다. 1996년 MBC 드라마 ‘화려한 휴가’로 데뷔한 김윤진은 1999년 영화 ‘쉬리’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일찌감치 미국에 진출해 2004년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하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할리우드 진출 1세대로서 현재의 K-콘텐츠 열풍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을 묻자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당시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시기는 편안할 때는 아니었어요. 안면 마비가 올 정도로 너무 힘들었죠. 그러나 그만큼 더 응원 받고 박수를 많이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할리우드 진출이 일상화할 정도로 흔해졌지만 그만큼 주목은 덜 받잖아요.”
다만 그는 그의 할리우드 진출이 현재 K-콘텐츠의 인기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에 대해선 손사래를 쳤다. “ ‘로스트’ 땐 동양인의 얼굴이 화면에 잘 안잡히던 시대였어요. 지금은 ‘남한, 북한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듣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달라졌죠. 제가 (할리우드에 먼저 진출했다고 길을) 닦았다고 얘기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김윤진이 배우 생활에 발을 들인 지 어언 30년. 그러나 그는 연륜을 드러내기 보단 초심의 열정으로 쉼 없이 도전하고 있다.
“원조(월드 스타)라고 해주시니 다시 미국에 가서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해야 하나 싶어요.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미스터리고, ‘오늘’은 선물이잖아요. ( ‘로스트’가) 제 역사의 한 부분인 건 감사하지만 ‘내일’을 연결해주는 ‘지금’은 선물이죠. 다음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아직도 수없이 오디션에 도전 중이거든요. 떨어지더라도 계속 도전할 생각이에요.”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