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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 한복판에 아파트 3층 높이로 세워진 ‘이것’
1600년만에 디지털로 재현된 ‘광개토대왕릉비’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 LED로 세워져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와 전시관을 잇는 중앙 통로인 ‘역사의 길’에 세워진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아들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릉비. 1610년 뒤인 지난 24일 이 비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에 다시 세워졌다.

사실 이 비석은 장수왕이 중국 만주의 지안(당시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에 세운 실물은 아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비석에 새긴 기록을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해 그대로 재현한 발광다이아오드(LED) 타워다. 받침대를 포함한 높이만 8m로, 무려 아파트 3층 높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와 전시관을 잇는 중앙 통로인 ‘역사의 길’에 세워진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이정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와 전시관을 잇는 중앙 통로인 ‘역사의 길’에 세워진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이정아 기자.

디지털 영상에는 장구한 세월 동안 궂은 날씨에도 묵묵하게 견뎌 온 불규칙한 기둥 모양의 비석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네 개면에 1775자가 새겨진 비석 표면에는 이끼와 넝쿨들이 가득해졌지만, 그럼에도 초연하게, 한 자리에 서 있는 영상 속 비석의 모습에서 먹먹한 울림이 전해진다.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가 세워진 위치도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와 전시실 사이를 뻗은 중앙 통로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역사의 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와 함께 상설전시관인 고구려실로 진입하는 입구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가 있던 자리였으나, 탑비가 2026년 개관 예정인 국립충주박물관으로 이관되면서 그 자리에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가 들어섰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 2005년 박물관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추진하고 싶었던 과제 중 하나”라며 “지난해 광개토대왕릉비 원석탁본 구매를 계기로 구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24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진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윤 관장이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해 이같이 애틋한 이유는 이 비석이 4~5세기 고구려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세기 말 일본 학계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비문의 ‘속민’을 ‘신민’으로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악용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청명본과 미즈타니본 등 원석탁본 자료 연구와 우리나라 남부 지역 발굴 성과가 축적돼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고구려의 남쪽 정벌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는 ‘속민’으로 간주하고, 왜의 침략을 매우 과장했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왜곡된 역사관은 일본만이 아니다. 2002년부터는 중국이 한국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국책 프로젝트로 추진 중이다. 실제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동북공정의 전 단계로 고구려사에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이라는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 하나의 역사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개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고구려실에 전시된 광개토대왕릉비 원석탁본 ‘청명본’. 이정아 기자.

고구려실에는 광개토대왕릉비 원석탁본도 최초로 전시돼 관람객을 만나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구매해 소장하게 된 탁본으로, 청명 임창순 선생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이 탁본은 ‘청명본’으로 불렸다.

탁본이란 비석에 석회와 진흙을 발라 면을 고르게 한 후 먹을 사용해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뜨는 방법을 말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인 광개토대왕릉비는 한국의 고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지만, 우리 국경 바깥에 있어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광개토대왕릉비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비석의 탁본 작업이 시작되면서 연구도 본격화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원석탁본은 1989년 리윈충이 탁본한 것으로, 세 글자씩 잘라 붙여 마치 책처럼 만들어졌다.

다만 이 탁본은 3·4면 일부가 빠져 있어 완전한 판본은 아니다. 이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원석탁본 사진을 활용해 362자를 보완했다.

특히 원석탁본은 비문에 석회가 칠해지기 이전에 뜬 탁본으로 원형과 가깝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광개토대왕릉비의 원석탁본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10여종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구려실 규모를 새로 단장해 기존의 배로 늘릴 계획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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