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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일은 싫은 음식처럼 소화해버리죠”
전신 화상 떨쳐낸 이지선 교수
“장애인에게 환대 경험 중요해”
발달장애 일자리 등 연구에 매진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포스코관 교수 연구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빛나 기자

“교수 연구실 문고리를 바꿨어요. 원래 무거운 철로 된 것이었거든요. 꽉 잡아서 돌리고 당기는 게 제 손으로는 너무 힘들었어요. 문을 열 때마다 제 손의 불편함을 느껴야 했죠. 근데 문고리를 바꾸니까 저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답니다. 장애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죠.”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문고리를 바꾼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23살 때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던 이 교수는 30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고도 안면장애와 지체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이 교수의 손은 뼈가 녹아 양손 엄지를 제외하고 한마디씩 절단해야 했다.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를 출간해 큰 사랑을 받았던 이 교수는 올해 23년만에 모교인 이화여대로 돌아와 강단에 섰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이 교수를 최근 이화여대에서 만나 장애인 복지와 인생사를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교수는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20여년 전 사고 이후에도 그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 찾아왔다. 그는 “2월까지 수술을 받았는데, 아마 마지막 수술이 될 것 같다”며 “제가 목이나 손목을 돌릴 때 불편해서 계속 (수술을) 받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과거 사고 흔적들이 삶에 아직도 영향을 주지만, 이 교수는 아픔을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과거의 아픈 사고가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먹기 싫은 음식을 삼켜서 소화하는 것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며 “나쁜 과거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확 터지게 한다. 그럴때는 그냥 꼭꼭 씹는다. 그러면서 흘려보낸다”고 말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완전히 나쁜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불쑥불쑥 나를 괴롭히진 않게 할 수 있다”며 “당시 상황을 적거나 말하는 등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교수로 임용된 뒤 발달장애 일자리 연구 등 이 교수는 활발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지원단체인 푸르메재단을 통해 사회적 농업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이 일자리를 통해 어떤 변화를 느끼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직업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장애인이 고용되는 곳은 정해져 있다. 사회적 농업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작물을 수확하면서 장애인이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인 연구를 하는 이 교수에게 중요한 단어는 ‘환대’다. 타인을 환영하고 환영받는 경험은 장애인에게 꼭 필요하다. 이 교수는 “외국인, 장애인 등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랑 한 번만 이야기를 한 경험이 있어도 달라질 수 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만나 하나의 공동 목표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대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길을 나섰을 때 나를 환영하지 않는 눈빛이 있었다. 호기심을 넘어서 불쾌한 시선도 있었다”며 “그럴 때 친구와 가족이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지켜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것. 그것이 환대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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