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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수출규제는 축복이었다 [비즈360]
4년전 일본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소재 국산화 계기
연말 중국 흑연 규제, 국내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으로
위기 상존은 뉴노멀, 돌파구 마련 발판 삼아야

“중국이 올해 말부터 흑연 수출을 통제한다고 하는데 어떡합니까.” 최근 만난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국은 중국산 흑연에 90%를 의존한다. 이런 마당에 전기차배터리 소재인 흑연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지 못하면 국내 배터리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일본은 2019년 한국에 대해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헤럴드DB]

이 관계자의 답변은 이랬다.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공정 소재 수출 규제 당시 반도체업계에 큰 위기가 닥쳤지만 역설적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50년이 걸려도 안 될 일을 해낸 것입니다. 이번 흑연 수출 통제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반발했다. 이듬해 반도체 소재 3대 품목(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불화수소)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 대상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회복되면서 올해 7월에서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복원했다.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라인. [연합]

하지만 지난 4년간은 어찌 보면 한국엔 축복(?)의 시간이었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당시 정부와 민간기업들은 곧바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반도체 생산회사들이었다. 소재 재고는 채 한두 달치도 안 됐다. 생산 중단이 코앞에 놓였다. “살려 달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는 생산 과정에서 관련 소재의 사용량 최적화에 나섰다. 마른 수건 짜듯이 움직였다. 동시에 정부와 소부장기업들은 국산화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동진쎄미켐은 포토레지스트 국산화에 성공했다. SK머티리얼즈는 초고순도 불화수소가스, 솔브레인은 초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생산에 나섰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답이 나오는 법’이다.

앞서 언급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를 계기로 정신을 바짝 차렸다. 국내 소부장 협력 모델 연구·개발(R&D)에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흑연도 조만간 국내 기업인 포스코퓨처엠이 인조흑연 음극재를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스코퓨처엠 인조흑연공장. 현재 이공장은 시험 가동 중이다. [포스코퓨처엠 제공]

실제 포스코퓨처엠은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포항 인조흑연 음극재 1단계 공장을 가동한다. 내년 하반기엔 2단계 공장을 준공한다. 정부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부장 R&D 프로그램을 통해 포스코퓨처엠의 인조흑연 음극재 개발에 97억원을 지원했다.

과거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최근 중국의 광물 수출 규제는 반도체 핵심 소재의 국산화와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독이 아니라 약이 된 셈’이다. 국내 산업생태계도 강화됐다.

자원 민족주의는 최근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 자원무기화 사례는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같은 변수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파괴를 넘어 산업생태계를 무너뜨릴 치명적 규제를 내놓을 수 있다.

이제는 기업끼리가 아니라 한 산업의 생태계 간 경쟁 시대다. 미-중 갈등에 따른 한국의 피해처럼 우리가 못해서가 아니라 생태계 간 경쟁 과정에서 유탄을 맞을 수 있다. 튼튼한 생태계 안에서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되 돌발 변수에 늘 긴장해야 한다.

위기는 항상 생긴다. 핵심은 이에 대한 대처다. 악재가 발생하면 이젠 민·관이 원팀으로 순발력 있게 움직여야 한다. 큰일 났다고 가만히 있으면 진짜 큰일 난다. 유도에서의 되치기처럼 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사 ‘궁즉통(窮則通)’이다.

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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