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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를 위하여 전쟁의 종은 울리나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1953년 케냐에 머물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 국립기록원 제공]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 07~1961. 07)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1954년 10월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 “작가는 최상의 상태에서조차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는 진정한 작가에게 있어 매 작품은 성취감을 뛰어넘어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다시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적이 없거나 다른 이들이 시도했으나 실패한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오늘을 사는 작가에게 시대적 소명을 말해준다.

1961년 헤밍웨이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산탄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은 헤밍웨이의 죽음이 사고에 의한 것으로 한동안 믿었다.

헤밍웨이의 말년 모습은 똑같이 권총으로 삶을 마무리한 그의 아버지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헤밍웨이의 여동생 어설라와 남동생 레스터 역시 그의 사후에 차례대로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헤밍웨이의 작품에는 사랑, 전쟁, 황야, 패배가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도, 가자지구도 비극의 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이자 팔레스타인의 옹호를 받고 있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테러를 가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선포했다. 하마스에 우호적인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이란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세상은 사태를 주시한다. 양 지역 간 전쟁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는 불가피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미국 종군기자 데이비드는 9·11테러에서 탈레반에 의해 죽은 미국인을 생각한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오늘도 서로 로켓포를 주고받았다.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느냐”는 어린 소녀의 절규가 떠올랐다. 그날 있었던 참상을 담담하게 기록하려고 키보드를 움직이는 그의 손이 사시나무 가지처럼 떨린다.

레바논 남부 국경지역에서 생중계 영상을 촬영하던 동료는 폭격을 당해 사망했다. 못내 잠을 청하려는 순간, 묵고 있는 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포대 쪽에서 시작된 소리는 전차가 진입하듯 굉음을 냈다. 데이비드는 숙소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보며 “휴~” 하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문득 종군기자로 스페인내전에 참석한 헤밍웨이의 소설을 떠올린다.

‘The Hemingway on War’ 빈티지판 표지 그림
‘무기여 잘 있거라’ 빈티지판 표지 그림

헤밍웨이는 각국에서 수만명이 참전한 국제 의용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가담했다. 그가 소속한 ‘국제 여단’은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전선을 지원했다. 많은 사람은 스페인내전을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으로 생각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여기에서 누구는 무엇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전쟁에서 피를 흘리는지 회의감이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데이비드는 헤밍웨이의 소설을 반추한다. 미국인 지원병 로버트 조던은 러시아에서 온 좌파 지휘관 골츠의 명령을 받고 중요한 다리를 꼭 정해진 시간에 폭파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조던이 현지 산악 게릴라캠프에 도착해서 정해진 날짜에 다리를 폭파하기까지 사흘 동안의 일지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다리를 성공적으로 폭파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조던은 쓰러지는 말에 깔려 다리가 부러진다. 도저히 더는 탈출이 불가능하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전쟁터에서 만난 연인 마리아를 떠나보내고 죽는다.

그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종 울림이었을까? 데이비드는 전쟁으로 죽은 많은 사람을 생각한다. 전쟁이 어떤 이유에서 시작됐든 그 전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민간인이다. 이유 없이 죽어나간 소중한 생명을 생각하는데 서글픈 생각이 밀려온다. 인류애를 강조한 헤밍웨이의 권총 자살 이후에도 전쟁의 종은 번번이 바쁘게 울렸다. 진정 그 종은 헤밍웨이의 생각처럼 보편적 지구촌의 사랑을 위해 울렸던가. 인류애보다는 전쟁의 수지타산을 계산하기에 바쁜 권력, 국제 지형, 군수산업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종교는 인류애를 부르짖는데 실상 종교 대립은 인류 역사 대대로 서로를 파멸했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을 구호로 앞세우지만 속셈은 다른 데에 있었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화마에 휩싸인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행여 자원민족주의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비산유국은 입을 모으고 있다. 데이비드는 헤밍웨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시를 가까스로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어느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돼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기에.”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쿠바 아바나의 바 ‘플로리디타’ [미국 국립기록원 제공]

영국 런던 세인트폴대성당 수석사제 존 던이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에 시를 지었다. 인류에 대한 연대의식과 희생정신을 읊은 ‘죽음에 임한 때의 기도’의 구절이다. 헤밍웨이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완성했다.

데이비드는 전쟁 속에서 죽은 어린 영혼을 비롯해 많은 이에게 조종(弔鐘)을 바친다. 세간에서 경제의 초점은 유가의 향방을 조준했다. 생각해보니 전쟁을 바라보는 경제학자의 시각은 저마다 달랐다. 2003년 3월 20일 새벽에도 역사적 전쟁이 발생했다. ‘이라크 자유작전’이라 불리는 이라크전은 그렇게 시작했다. 29만5000명의 미군과 연합군이 쿠웨이트에서 국경을 넘어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우리 주식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쟁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주가상승 의 밑바탕에는 전쟁 발발 이후에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깔려 있었다. 이런 생각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찬반양론을 벌였다. 반대의 견해는 이렇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전쟁이 경제성장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당치 않은 말이다. 1991년의 걸프전은 전쟁이 경제에 유해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전쟁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처럼 유가폭등을 낳아 어려운 세계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폴 크루그먼의 ‘뉴욕타임스’ 기고문도 이러한 견해에 동참한 글이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나 1979년 이란혁명 때도 원유생산량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나 간접적인 정치적 파급효과가 유가폭등을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처럼 2003년 이라크전쟁은 국제유가를 상승시켰다. 그렇다고 크루그먼을 전쟁기피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의 충고가 이어진다. 2011년 폴 크루그먼도 위기 해법으로 한 마디 거든다.

“미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짜 외계인 침략론’이 필요하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우리는 그 위협에 맞서기 위해 무언가를 개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과 재정 적자는 부차적인 문제다. 경기침체를 당장 18개월 안에 해결할 수 있다.”

그의 경기침체를 당장 끝낼 경제적 배경이자 힘은 전쟁에 있었다. 세계 2차대전의 군수산업이 대공황을 끝냈다. 이전에도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은 전쟁특수를 누려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지위도 변했다. 양 대전을 치르면서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등극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은 런던에서 월가로 옮겨졌다.

한국전쟁은 일본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일본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 ‘세 개의 전쟁’은 한국전쟁, 수에즈전쟁, 베트남전쟁이다. 1945년 이후 도요타는 경기침체로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2억엔의 자금이 모자라 도산 일보 직전이었다. 도요타를 구하고 경기호황을 이끈 실체는 한국전쟁이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기업이 벌어들인 돈도 한국 산업화의 밑천이었다. 한국군과 미군의 전쟁 수행을 위한 지원활동에 우리 기업이 미국 정부의 돈을 받고 참여했다. 군인과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세계 각국 기업은 오늘도 막대한 돈벌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여러 나라가 미사일, 탱크, 포탄 같은 군수품을 만들어 조달하는 데에 매진했다. 한국도 무기장비 생산량을 신속하게 증가했다. 2022년 한국의 무기수출액은 140%나 늘어 173억달러에 달했다. 우크라이나의 접경 우방인 폴란드에 판매한 탱크, 곡사포, 전투기, 다중연속로켓발사기 등의 금액(124억달러)도 한몫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는 살상무기를 팔거나 지원하는 것을 거절했다.

잠을 설치다 깬 데이비드는 다음날 종군기자 임무에 나선다. 사진·취재기자를 동승하고 운전기사와 함께 이동했다. 로켓포가 차량을 덮쳤다. 얼마 후 언론은 그의 죽음을 기리며 이렇게 그의 삶을 조망한다.

“데이비드는 대중이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파악하는 데에 헌신했다. 인류의 한 사람이자 종군기자로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인류애를 발휘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을 통해 세계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종을 울렸다. 그의 인류애는 대를 이어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전쟁 와중에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돌아가야 했고 전쟁이 몰고 올 경제적 파장에 모든 이는 불안해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전쟁은 그 자체로 사람을 죽이는, 죽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로 인해 평범한 일상은 무너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그런 전쟁의 민낯 속에서도 늘 그렇듯 전쟁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전쟁이 승자를 위한 종을 울린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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