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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브릭스 확장과 동상이몽 국제정치
지난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서밋’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왼쪽부터) 브라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연방 외교장관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 8월(현지시간) BRICS(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정상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모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등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회원국만으로 전 세계 인구의 42%, 영토의 26%, GDP의 23%를 차지하던 브릭스는 이제 중동의 전통 강국들과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가세하면서 세계 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됐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는 세계 GDP의 37%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서구 선진국 클럽인 ‘G7’을 능가하는 규모다.

일각에서는 이번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가 중국 시진핑 외교의 승리이며 향후 브릭스가 G7에 대항하는 ‘반서방 블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신규 회원국 면면은 미국에 부담이 되는 국가들로 구성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몇 년 동안 탈미국 행보를 서슴지 않는 중동 최대 산유국이고,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있는 핵 야망 국가다. 전통적 친미 국가였던 UAE도 최근 자국 내에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을 수용하는 정황을 보이고 있고,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더불어 남반구 목소리를 대변하는 남미의 중견 국가다. 에티오피아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미국의 최대 원조수혜국이지만 최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브릭스를 강력한 반서방 블록이나 중국 외교의 플랫폼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무엇보다 브릭스를 대하는 회원국들의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물론 브릭스를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브릭스 전체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될 정도니, 브릭스의 주도 국가가 중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반서방 차원에서 회원국 확대에 적극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처한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는 데에 브릭스의 확장이 도움되기 때문이다.

반면 인도와 브라질은 브릭스가 노골적인 반서방 동맹으로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입장이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브릭스가 G7이나 G20의 대항마가 아니다”고 명시적으로 강조한 바 있고, 모디 인도 총리도 브릭스가 ‘중국 클럽’으로 변하는 것을 경계한다.

더욱이 회원국 확대로 브릭스의 결속력이 더욱 이완될 가능성도 있다. 신규 회원국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나일강 수역을 놓고 대립해 왔으며,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각각 시아파와 수니파를 대표하는 종주국으로서 예멘에서 대리전까지 치를 정도로 불편한 관계다.

다시 말해 브릭스가 반서방 단일대오를 형성하기에는 회원 국가 내부의 균열과 입장 차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브릭스의 확장에는 어떤 국제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일까? 어느 서방전문가의 지적처럼 몸집 불리기에는 성공했지만 통일된 행동과 구체적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는 상징적 플랫폼에 불과한 것일까?

스페인 전 외무장관은 “불만을 공유한다고 해서 비전을 공유할 수 없다”며 브릭스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릭스를 반서방 동맹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지만 브릭스 확장의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냉소적 시각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6개국이지만 가입을 요청한 국가는 22개국이며 비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나라까지 포함하면 40개국에 이른다.

브릭스를 향한 이 같은 큰 관심은 남반구 국가들이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글로벌 질서가 너무 서구 중심적으로 구축·운영돼 왔다는 불만이다.

남반구 국가들이 해결을 갈망하는 개발 소요, 기후위기, 보건, 농업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에 기존 국제기구가 한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만 보더라도 유엔이 표명한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위해 2조2000억달러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데 지난해 세계은행이 글로벌 인프라 투자에 승인한 금액은 약 700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한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은 남반구 국가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만약 브릭스가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 세계 정치, 경제, 금융 구조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더 커질 것이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결속·확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 건너편에서는 브릭스가 확장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남부의 반서방 분노를 파고들어가는 중·러(글로벌 동부)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혹자는 기회주의와 각자도생의 시기에 글로벌 동부와 남부가 국제질서를 재협상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브릭스 회원국들은 저마다 동상이몽에 빠져 있고, 다른 꿈을 꾸는 만큼 단일대오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꿈을 꾸면서도 같은 침대에 눕겠다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회원국이 되지 않았지만 가입 신청을 했던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 나머지 16개국이 브릭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입장유사국(like-minded country), 가치외교를 강조하며 규칙 기반 현존 질서를 수호하려는 서방의 노력과는 사뭇 다른 국제질서 변화의 한 단면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전 국방부 기조실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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