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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없는 K-팝그룹’ 블랙스완 “피부색 말고 실력으로 평가해달라” [인터뷰][초국적 K-팝 시대]
K-팝 시스템이 발굴ㆍ육성한 그룹
한국어 대학ㆍ연습실 오가며 트레이닝
“피부색의 차이 보지 말고, 무대 봐주길”
걸그룹 ‘블랙스완’은 1세대 K-팝그룹 ‘베이비복스’를 제작한 DR뮤직에서 ‘K-팝 시스템’으로 발굴, 육성한 걸그룹이다. 파투(왼쪽 두 번째)를 제외한 세 멤버는 소속사의 글로벌 오디션 ‘시그너스 프로젝트(Cygnus Project)’ 출신이다. 스리야와 가비는 무려 4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1기, 앤비는 3000여명이 지원한 2기 출신이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네 사람이 모였다.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면서 한국어 노래를 하고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K-팝그룹이다.

“열다섯 살 때였어요.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샤이니’의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블랙스완의 리더 파투(28·벨기에)는 13년 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힘들었던 시절 K-팝이라는 장르의 밝은 기운이 그에게 힘이 됐다. 파투뿐 아니다. 2018년부터 ‘엑소’의 팬이었다는 스리야(20·인도), ‘데이식스’와 ‘원어스’를 좋아한 앤비(24·미국), ‘갓세븐’으로 K-팝에 입문한 가비(20·브라질, 독일). 네 사람은 K-팝스타를 동경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려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이런 그들을 최근 헤럴드경제가 만났다.

1세대 ‘베이비복스’ 제작 DR뮤직이 ‘한국식’으로 트레이닝

블랙스완은 1세대 K-팝그룹 베이비복스를 제작한 DR뮤직이 ‘K-팝 시스템’으로 발굴, 육성한 걸그룹이다. 파투를 제외한 세 멤버는 소속사의 글로벌 오디션 ‘시그너스 프로젝트(Cygnus Project)’ 출신이다. 스리야와 가비는 무려 4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1기, 앤비는 3000여명이 지원한 2기 출신이다. 이후 여타 K-팝그룹 멤버들처럼 ‘한국식 트레이닝’을 받았다.

K-팝 걸그룹 연습생들의 ‘철칙’이 네 사람의 생활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외출 자제와 식단관리는 기본이다. 그때는 숙소, 연습실 이외엔 나가질 않았다. 스리야는 “아침엔 한국어 대학에 다니고, 수업을 마치면 연습생으로 돌아와 종일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고 말했다. 가비는 “당시엔 쉽지 않았지만 금세 연습생 생활에 익숙해졌다”며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걸그룹 ‘블랙스완’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지난 2019년 한국에서 모델생활을 하다 지금의 소속사를 만난 파투는 블랙스완의 원년 멤버다. 다만 다른 한국인 멤버들은 팀을 탈퇴, 파투 혼자 남았다. 그는 “한국 멤버들이 언어와 가요계 문화를 잘 알려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한 모든 ‘꿀팁’을 그 시절 익혔다. ‘방송국에서 만나는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비롯한 신인 그룹으로의 자세도 그 시절 ‘학습의 결과’다.

연습생 생활이 힘들었던 것은 생활 그 자체보다 실력 향상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A부터 Z까지 ‘완벽성’을 추구하는 K-팝 시스템 특성상 항상 더 나은 실력이 요구됐다. 파투는 “한국어도, 노래도, 춤도, 표정도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속사에 가장 늦게 합류한 앤비는 “저는 너무 빨리 데뷔해 한국어도 잘 못하고 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될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앤비는 지난해 한국 땅을 밟았고, 올 5월 ‘댓 카르마(That Karma)’를 통해 데뷔했다.

음악뿐 아니라 팀 운영도 ‘K-팝’식으로…리더 파투 역할 커

K-팝 시스템을 통해 태어난 다국적 그룹은 음악뿐 아니라 팀 운영, 관계 등 삶에서도 한국적 특성을 빼다 박았다. 한공간에서 합숙하며, 트레이닝을 받은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동료애’가 쌓였다. K-팝 팬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팀’으로의 미덕과 멤버 간 관계성이 블랙스완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앤비는 “혼자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세 멤버가 많이 도와줘 잘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리더인 파투의 어깨가 무겁다. K-팝그룹에서 리더는 멤버 간 관계는 물론, 트레이닝 과정에서 엄마처럼 심적 안식처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스리야는 “파투 언니는 우리 세 사람을 굉장히 잘 챙겨주고,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고 말했다.

걸그룹 ‘블랙스완’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다만 연습 중에는 ‘군기반장’이 따로 없다. 특히 파투의 엄격함이 최고치에 도달했을 때는 언어가 달라진다. 보통은 영어 소통이 편한 멤버들을 위해 영어로 대화하지만 연습 중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단박에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나온다. 가비는 “평소엔 영어로 얘기하다가 연습 때 못하면 ‘가비, 왜 이거 아직도 못해’ 라며 갑자기 한국어로 이야기한다”며 웃었다.

파투는 다른 멤버들보다 먼저 한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잦은 멤버 교체와 불확실한 미래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지난해 12월까진 멘탈이 무너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파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이 보내준 응원메시지 때문. 놀라운 사실은 팀 합류 전 블랙스완의 팬덤 ‘루미나’였던 가비와 앤비가 파투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응원댓글을 달았다는 점이다. 파투는 “멤버들이 응원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며 “우리 네 명이 한팀으로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K-팝엔 한국어가 찰떡…“피부색 말고 무대로 평가해 달라”

블랙스완 멤버들의 국적이 제각각이지만 주요 활동무대는 한국이다. 이에 멤버들은 유창한 한국어로 노래한다. 글로벌 무대를 겨냥한 ‘영어 가사’의 대세인 K-팝시장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한국을 무대로 활동한다는 전략은 오히려 신선하다.

사실 이들이 ‘한국어 노래’를 부르는 건 피 나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과 노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앤비는 “노래 중에 ‘뜨거워, 너의 온기’라는 가사가 있는데, 쌍자음이 너무 어려워 수백 번씩 반복했다”고 말했다. 완벽한 발음을 자랑하는 스리야조차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땐 ‘을/를’의 조사 사용과 발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멤버들이 한국어 노래를 고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파투와 가비는 “K-팝을 가장 K-팝답게 만드는 것은 한국어”라며 “K-팝의 멜로디와 한국어 가사, 발음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어 노래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랙스완은 한국 문화 안으로 깊이 들어간 후 멤버들의 모국 문화를 보여주며 ‘문화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게 팀의 목표다. 멤버들의 모국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것 역시 이러한 방향성의 일환이다. 스리야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뮤직비디오나 음악으로 가져올 때 문화 차이와 무지로 인해 빚어지는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서로의 문화를 깊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걸그룹 ‘블랙스완’ 스리야, 가비, 파투, 앤비. 이상섭 기자

최근 발매한 싱글 앨범 ‘댓 카르마’의 확장판 ‘댓 카르마- 팝 에디션(That Karma - Pop Edition)’엔 지난 6월 발생한 인도 오디샤주 열차 사고의 추모곡 ‘어 월드 위드아웃 페인(A World Without Pain)’을 담았다. 오디샤주는 블랙스완의 ‘댓 카르마’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스리야는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노래로 위로할 기회를 갖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블랙스완의 활동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최근엔 웹드라마 ‘김치 김치’에 캐스팅돼 촬영에 한창이다. 네 멤버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국어 연기와 김치 만들기에 도전한다. 드라마에선 스리야의 러브 라인도 중요한 볼거리다. 막내의 풋풋한 러브 라인이 설렘을 자아낸다.

신인 그룹인 만큼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차트 1위는 물론 ‘아메리칸 뮤직어워드’에 노미네이트돼 앤비의 모국 무대에 서는 날도 꿈꾼다.

“피부색과 생김새의 차이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블랙스완의 무대를 봐주세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요.”(파투, 앤비)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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