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마다 유예 반복 생산 계획에 차질”
SK하이닉스 우시 라인 모습[SK하이닉스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미국이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자국 보조금을 받는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 내 웨이퍼(칩 생산 기반이 되는 원판) 투입을 제한키로 한 가운데, 내달 초 결정될 중국 수출 통제 유예 여부가 사실상 국내 반도체 기업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25일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미국 정부가 제시한 가드레일 규정에 대해 “미국의 가드레일에 따른 기업들의 웨이퍼 투입 제한은, 요즘과 같은 반도체 감산 시기에는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다시 반도체 활황기가 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활황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칩을 더 많이 팔아야 하는데, 웨이퍼 투입이 제한되면 칩 생산량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가드레일이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메모리 부문 수석부사장은 “이번 가드레일에서 향후 10년간 웨이퍼수 증량 제한 자체를 둔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항이고, 이것이 핵심”이라며 “이 제한만으로도 첨단 칩이든 레거시(범용) 칩이든, 향후 중국 공장에서 계속해서 운영해 나가는 것이 ‘손해보는 장사’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지고 있는 중국 생산공장에서의 신규 첨단반도체에 대한 계획도 제대로 세우기 어려워 질 수 있다”며 “두 회사가 미국의 가드레일을 따른다고 할 때 현재 운영 중인 중국 공장에 대한 향후의 용도변경이나 매각까지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스 사업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당장 중국에서 생산하는 낸드 플래시 수익성 문제가 대두된다. 황 교수는 “최종 소비자에 대한 낸드 플래시 가격은 상당기간 거의 변하지 않는데 칩 성능은 매년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입장에선 생산 원가를 계속 더 투입하는 구조”라며 “삼성의 원가 상승으로 인해 낸드에 대한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이라, 웨이퍼 투입 수를 늘려 칩을 만드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어 “(가드레일로 인해) 웨이퍼 투입을 미국이 제한한다면, 결국 삼성 입장에서는 웨이퍼당 생산되는 칩 개수를 늘리기 위해 기술 수준을 높여야 하는데, 기술 수준을 높이려면 오는 10월 중국에 대한 장비 수출 통제가 유예되거나 풀려야 한다”며 수출 통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또 황 교수는 “아직 SK하이닉스는 미국 공장에 대한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아, 가드레일 조항의 위협에선 벗어나 있다”며 “그러나 이미 수출통제와 상관없이, 극자외선(EUV)장비가 중국에 못 들어가 첨단 D램을 못 만들 상황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공장을 다른 곳에 팔거나 용도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22일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규정을 밝히며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은 기업이 중국 내에서의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 확장에 제한을 두도록 했다. 가드레일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게 되면, 이들 기업의 중국 내 생산시설은 보조금 수급 시점으로부터 10년간 첨단 반도체의 생산능력(웨이퍼 투입 기준)을 5%까지 확대할 수 있다. 28㎚(나노미터·1㎚은 10억분의 1m) 이전 세대 범용 반도체의 생산능력 제한범위는 10%까지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보조금을 신청한 상태이고, SK하이닉스 역시 조만간 패키징 관련 공장을 세우며 보조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 이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들은 중국 내 공장 반도체 칩 생산시 웨이퍼 투입량을 제한받아야 한다. 이때 첨단 칩을 생산하면서도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첨단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를 중국 시장에 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이 조만간 이 통제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추가 유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상무부는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를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통제 조치를 발표한 가운데, 업계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유예 조치가 1년가량 연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통제 유예 조치는 다음달 초 끝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수출 통제 유예가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트이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재근 교수는 “기존에 1년 유예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연장될지 여부가 결국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중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도체 수출 통제가 유예돼야 일단 웨이퍼 수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웨이퍼당 칩의 생산 기술을 그나마 늘리고, 칩 제작 공정 횟수를 줄여 원가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단 분석이다.
다만 1년 단위의 미국의 수출 통제 연장이 국내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최 부사장은 “(설령 오는 10월에 수출통제가 국내기업들에 대해 추가 유예돼도) 1~2년 뒤에 다시 제한이 들어올 수 있다”며 “공장의 유지, 즉 수익성 측면에서 보면 신규 제품 도입과 설비 확장 그리고 양산 웨이퍼 투입 증가는 동시에 있어야 할 필수사항”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칩을 제작하려면 반도체 장비가 2년 전에는 공장에 들어와야 한다”며 “1년씩 장비 수출 유예를 하냐, 마냐 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장기적인 생산 계획을 정하는데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클린룸 확장에 제한을 분명히 표기하여, 생산 공장 확장에 대한 제한을 제시했던 지난 3월 가드레일 규정을 미국이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한국 정부·기업은 미국 상무부에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선인 5%를 10%까지 확대하도록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웨이퍼 투입 증가는 그간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을 위해 업계에서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던 사항이다.
미국의 가드레일 확정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별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삼성은 전체 낸드플래시 반도체의 30~40%를 중국 시안에서, SK하이닉스는 전체 D램의 절반가량을 중국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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