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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부부생활..바위 안고 출산 기원, 각방하니 감소
한국국학진흥원 온라인 스토리북 談
‘조선의 출산문화’ 주제로 에피소드 게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시대에도 출산 독려 문화와 출산의 통제환경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 여성 1인이 평균 5.09명을 출산했고 이 중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남성은 1.25명 수준에 불과했다.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라 자식이 있어도 더 많은 자녀를 원했다.

그러나 유교적 교리가 사랑을 목적으로 한 부부관계를 터부시 하면서, 조선후기엔 부부 각방, 각채 구조가 고착화됐고, 출산은 줄게 된다.

남편이 있는 사랑채에서 20m 지나면 부인이 기거하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을 만난다. 안채 문밖 꽃나무가 서 있다.[함양=함영훈 기자]
출산 후 감사의 마음으로 차려놓는 삼신할머니 밥상

박희진 교수에 따르면, 18세기 종법 질서의 강화로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워지며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졌다. 바위를 쓰다듬거나 껴안기도 하고, 돌을 넣거나 타고 놀기, 동전이나 돌 붙이기, 구멍에 나뭇가지 등을 끼우기 등의 행위는 유사 성행위를 흉내 내는 행태로 나타났다.

다산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출산율은 17세기 이후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성에 대한 터부, 여성의 재가 금지 등을 들 수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대표로 하는 성을 금기시하는 풍속은 가옥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쳐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하였고, 성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 ‘씨 내리는 날’을 정해 남편이 안채와 사랑채를 오고 가는 것이 암묵적 관행이었다.

쾌락으로서의 성을 터부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의식이 드러나는 속담이 지역마다 생길 정도로 고착되었다. 또한 여성의 주체성 제한과 함께 사족 여인들의 재혼 금지 풍속은 일반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기도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박 교수의 글을 비롯해 ‘조선의 출산문화’라는 주제로 웹진형 스토리집 ‘담(談)’을 펴냈다.

배냇저고리

‘배냇저고리의 미학’이라는 글에서 안귀주 대표는 배냇저고리에 담긴 문화적 상징 코드를 풀어낸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조선시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입는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옷이다.

신생아는 목이 짧고 피부가 연약하여 깃이 목둘레에 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깃을 달지 않았다. 이처럼 깃이 없는 불완전한 옷을 입힌 이유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서 악령으로부터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름은 길게 하여 옷이 풀리지 않게 몸을 돌려 감았는데, 긴 고름처럼 장수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깃과 섶이 없는 배냇저고리를 ‘눈, 코 없는 옷’이라며 비약해서 부르고, 이것을 입히면 잡귀들이 못 알아본다고 생각한 것에는 불안을 희화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안 대표는 배냇저고리에서 해학이 전해지는 것은 어렵게 아이를 낳아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은 인간의 정성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현실의 애환과 번뇌를 공감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담(談)’에는 흥미로운 웹툰 에피소드도 담겼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명의 배냇저고리를 준비하고, 출산을 걱정하며, 아버지를 위해 비단으로 수의를 짓는 딸의 이야기가 나온다.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함께 준비하는 풍경이 이채롭다. 사실 수의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국학진흥원엔 온라인 스토리테마파크가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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