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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미로 화상 입히고…기는 보험사 위에 나는 사기꾼"…보험사기 조사 27년차 베테랑의 토로 [실손이 봉이다⑦]
봉이 된 실손…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해 수입보험료만 봐도 250조원 규모로, 전 세계 7~8위권이다. 특히 실손보험은 가입자 수만 3500만명에 이르며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돈이 몰리는 곳에 사기꾼도 몰린다지만 보험사기는 해도 너무한 정도다. 당국에 적발된 것만 1조원이고, 실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는 말이 나온다.

보험사기가 판칠 수 있는 배경에는 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는 물론이고 의료계, 브로커, 여기에 가입자들까지 공범이 돼 힘을 보태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꾼’들의 주 놀이터가 된 실손의료보험의 현주소를 짚고 보험사기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헤럴드경제=강승연·서정은 기자] “보험사기 트렌드가 달라졌어요. 한 번은 교통사고로 인한 허위 입원 의심 제보가 들어와 조사해보니 아동학대가 숨어 있었습니다. 계모가 아이를 다리미, 끓는 물 등으로 화상을 입히고 골절을 만들었습니다. 파고들다 보니 범행이 드러나더라고요. 지금은 대담성이 두드러집니다. 예전엔 실손보험금을 과다 청구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영수증, 진단서 등 서류를 위·변조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과감해지고 지능적으로 가고 있는 거죠.”

27년째 보험사기 특별조사관(SIU)으로 활약 중인 함용호 삼성화재 장기보험조사TF장의 진단이다. 참고로 함 TF장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렸다. 말 그대로 ‘사기꾼을 잡아야 하는데 신상이 알려질 경우 사기꾼들이 이를 피할 수 있어서’다. 함 TF장은 국내에 보험범죄 조사관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7년부터 보험사기 조사를 전담해오며 잔뼈가 굵어진 베테랑이다.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난 그는 진화를 거듭하며 갈수록 대범해지는 보험사기의 심각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병원과 설계사, 브로커 조직이 공모하는 형태의 보험사기 유형이 늘어나고 브로커 조직도 대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보험사기범은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기어다니고 있다”는 자조적 농담에서 이런 위기의식이 크게 느껴졌다.

“요실금, 맘모톰, 하지정맥류 등 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항목들을 연구하고, 설계사들이 직접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유행처럼 항목들이 바뀌고 있죠. 특정 항목을 휩쓸고 나면 다음 타깃을 뭐로 할지 연구하는 거예요. 또 가입 후 1년 이내에는 보험금을 50% 정도 감액 지급하는 것을 고려해 1년 전부터 준비하기도 합니다. 단기적·즉흥적인 것보다는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거죠.”

만성화하는 보험사기에 대한 우려도 컸다. 함 TF장은 “예전엔 보험사기를 경성(고의적 사고 유발)과 연성(보험금 과다청구 등)으로만 나눴는데 최근엔 경미한 보험사고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만성사기’가 늘고 있다”며 “일반적인 보상 담당직원들은 개별 청구건으로 볼 때 만성사기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총괄적으로 분석하는 SIU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교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려면 SIU의 조사역량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이 금융당국이 관계기관에 보험사기 조사를 위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보험사의 SIU 실무자들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보험사기를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보험사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함 TF장은 “보험사기 조사는 ‘데이터 싸움’인데 개인정보 관련 규제 때문에 당사 자료만 분석한 후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자체 데이터 분석 후 유관 협회·당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에 처벌 강화, 자료 제출 요청권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고 환영할 일임은 분명하다. 다만 보험사기 조사를 진행하는 단계에 대해서도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며 “특사경(특별사법경찰)처럼 보험사 SIU가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타사의 정보나 주요 계약 사항을 볼 수 있게 한다면 보험사기 분석 및 수사 의뢰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 TF장은 보험사기 대응 강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해외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공조해 조사를 하기도 하고 처벌도 강력하다”며 “인명 피해가 발생된 보험사기는 수사당국이 직접 개입하되, 다빈도 허위 과다 청구는 제3의 기구를 통해 보험금 지급 기준이나 조사 기준을 마련한다면 더 효율적으로 보험사기 여부를 조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보험사기 조사 강화를 위한 개인정보 관련 규제 완화 등 법적 논의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SIU 역할 강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정부와 국회에서 먼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SIU가 더 조사하고 싶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보는데 그 선에 대해서는 사회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함 TF장은 27년간 SIU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사건 가운데서도 특히나 끔찍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아동학대 외에도 충남 지역의 한 갯벌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도 있다. 돈을 요구하고 괴롭혔다는 이유로 익사로 위장해 전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다. 전 남편 앞으로 들어둔 거액 보험금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그의 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존속살해 범행을 모의한 정황도 나왔지만 관할 문제로 수사가 확대되진 못했다. SIU의 추적만으로 모든 여죄를 수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끝으로 함 TF장은 “나도 보험사기범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관련 의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험사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방어벽도 높아졌다. 가입자에게 보험사 조사나 치료 내용 확인을 위한 상식적인 수준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에도 응하지 말라는 교육까지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보험사기가 우리의 재산을 좀먹는다는 것을 국민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험사기가 늘어나 보험금이 지급되는 액수가 커지면 결국 내 보험료가 될 수밖에 없다”며 “보험사기의 피해가 결국 가입자 개인에게 온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제보도 하게 되고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spa@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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