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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유통사 갑질 막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낡은 법’ 딱지 붙은 이유 [언박싱]
경쟁법학회,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 세미나
최영홍 한국유통법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30일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 관련 특별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한국경쟁법학회 제공]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시행 10년차를 맞은 ‘대규모유통업법’이 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등 대규모 유통업자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로 중소 납품업체 등에 불공정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2년 제정됐다. 유통업계는 최근 온라인 시장 확대 등 판매채널 다변화로 유통업체의 지위가 약해진 반면, 제조사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는 만큼 현실에 맞게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 개념 모호…형식적 판단으로 거래질서 왜곡”
홍대식 한국경쟁법학회 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30일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 관련 특별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경쟁법학회 제공]

한국경쟁법학회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모두 대규모유통업법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대규모유통업법 초안을 마련했던 최영홍 한국유통법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처음 법 제정 의도와 달리) 대규모유통업법이 너무 강력하게 집행이 되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과징금에 대해서는 2%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100%까지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명책임만 확실히 해도 충분한데 과징금까지 확 올리면 안 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전문가들은 여러 측면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문제점들을 제기했다. 우선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 기준인 ‘거래상 우월적 지위’라는 개념부터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은 거래상의 미세한 지위 격차가 뚜렷하지 않은 당사자들 사이의 거래조건이나 이익다툼에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당사자 간 지위 격차가 49대 51의 구도인 사안에서 어느 한쪽이 51에 해당하는지를 규명한 뒤 미세하더라도 우위에 있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부당성을 규명하는 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류송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백화점과 홈쇼핑에 가전제품을 공급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중소기업들에 제공해야 할 특별보호 혜택이 대기업에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여러 판결에서는 거래상 지위의 존재여부에 대해 형식적 기준에 따라 판단해온 경향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류 변호사는 “외형적으로 명확한 기준에 따라 법 적용 대상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최소한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사는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제외하도록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유통환경에 맞는 새 규제 필요…PB상품에 하도급법 적용은 부당”

온라인쇼핑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 등 유통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따지기 더 애매해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경제의 특징이 유통시장에 나타나면서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합한 법령의 정비와 유통규제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 판매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유통시장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고 이에 맞는 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대규모 유통업자도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소매업자와 온라인몰 운영자에 대한 규제방식에도 차이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 모바일 기기 상용화로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판매채널이 생기고 있고 선택지가 다양화하면서 소비자의 구매행태 역시 많이 달라졌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런 변화를 감안할 때 더 이상 대형 유통업체들이 과거만큼의 우월적 구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PB(자체 브랜드) 상품 같이 유통사들이 제조위탁하는 상품에 대해 대규모유통업법이 아니라 하도급법을 적용하는 상황도 법 제정 목적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GS리테일에 대해 ‘하도급법 위반’을 명목으로 과징금 244억원을 부과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 제정 이후에는 유통 관련 실무가 대규모유통업법에 맞춰 정비됐다. 이런 상태에서 하도급법을 유통 분야에 전면적으로 적용하면 기존 거래질서와 현황을 크게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류 변호사는 “유통시장에서 발생하는 거래에 대해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정을 통해 규제할 수 있음에도 다른 특별법을 적용하면 유통업자로서는 추가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PB제품 관련 사건에서 문제가 된 성과장려금, 판촉비 등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서도 대규모유통업법을 통해 규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정부 측 패널로 참석한 신용화 공정거래위원회 유통대리점정책과장은 “업계의 현실적인 애로사항과 학계에서 말해준 법리적 정합성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검토를 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설명했다.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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