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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평 땅에 올라간 날씬한 4층 꼬마빌딩…4인 사업가의 꿈을 품다 [건축맛집]
오후건축사사무소 인터뷰
협소한 부지에 상가주택 아닌 상업공간으로
계단 외부에 배치해 2~4층 동선 한눈에 확인
단독주택 빙그레-가, 마당서 뛰어놀 수 있게
서울 마포구 상암동 레드홀(RED HOLE) 모습. [오후건축사사무소 제공]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저녁이면 직장인과 동네 주민들의 정겨운 소리가 가득한 마포구 상암동 먹자골목 한편에는 ‘붉은 계단집’이 있다.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대지면적 77㎡(23평)에 불과한 부지에 올라선 4층짜리 꼬마빌딩은 새하얀 외벽과 붉은색 벽돌로 채워진 건물 후면이 대비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후면 외부에는 배치된 계단을 통해 2~4층까지의 동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세심한 설계가 돋보이는 붉은 계단집 ‘레드홀(RED HOLE)’은 블랙홀에서 이름을 본떠 온 의도대로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건물이 됐다.

서울 도심 속 레드홀은 오후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여성 듀오 건축가 노서영·김하아린 소장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다.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오후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노서영 소장은 “땅의 규모가 워낙 작고 모난 형태라 설계안을 이끌어낼 때도 그렇고, 공사 여건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프로젝트”라고 회상했다.

레드홀 설계 초반 이들이 가장 고심했던 지점은 건물의 활용도와 수익률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었다. 건물을 올릴 부지 자체가 협소했기에 커진 고민이다. 노 소장은 “레드홀과 같은 상권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1층에 매장이 있고 위층에는 주택이 있는 상가주택 형태가 많았다”며 “레드홀 필지는 작기 때문에 1층에만 상업공간을 넣는 건 수익률이 나지 않고, 상가주택 형태로 가면 주차대수가 늘어나 1층의 면적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레드홀(RED HOLE) 모습. [오후건축사사무소 제공]

이들은 건축주와의 논의를 통해 전층을 상업공간으로 구성하기로 결정짓고, 계단실의 형태·배치 등을 설계의 시작점으로 봤다. 통상 상가건물의 계단실은 내부에 위치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골목길 유동인구를 2~4층까지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 소장은 “외부에 계단을 배치해 사람들이 골목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하고, 3~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드러나있다”며 “마치 길이 연장돼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해 윗층으로 올라가는 거부감이 덜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계단이 위치한 후면에는 다른 색감, 다른 질감의 재료를 적용해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이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게끔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개소 5년차를 맞은 오후건축사사무소는 레드홀 외에도 ‘등촌오각’, ‘빙그레-가’, ‘인향재’, ‘이의동 티라미수(金盤)’ 등 저마다의 특색이 담긴 여러 유형의 건축물들을 작업해왔다. 두 소장이 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되새기는 점은 어려운 건축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재밌는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건축을 하자는 것. 그런 과정 속에서 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노 소장은 “기본적인 생각은 건축주가 오랜 기간 머물게 될 공간이기 때문에 건축주가 하고 싶은 방향은 최대한 적용을 한다”며 “건축주의 니즈를 좋은 방식으로 반영하면 만족도가 매우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런 건축철학을 바탕으로 오후건축사사무소는 건축주의 의도가 명확한 프로젝트 위주로 작업한다고 말한다. 노 소장은 “일례로 건축주가 ‘가족은 4명이고, 방 3개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경우 저희 입장에서는 어렵다. ‘어떤 인상의 건물이었으면 좋겠다’와 같이 건축주 스스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한 경우 저희가 그런 부분을 어떻게 재밌게 살려서 작업할지 고민하게 된다”며 “저희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케미가 잘 맞을 수 있는 건축주와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단독주택 빙그레-가 모습. [오후건축사사무소 제공]

경북 구미에 위치한 단독주택 빙그레-가 또한 ‘쌍둥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집’이라는 건축주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마당을 품은 ‘ㄷ자’ 형태의 주택은 어린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 차도를 등지고 있고, 공원을 향해 개방돼 있는 구조다. 노 소장은 “중정 마당에서 아이들이 언제든지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하고, 부모님이 거실에 있건 서재에 있건 주방에 있건 시야에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공원을 향해 열려있는 측면에 빙그레 웃는 듯한 곡선형의 담장이 설치된 것도 빙그레-가의 재밌는 설계 요소다. 노 소장은 “건축주가 인도 쪽에서 마당이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기를 바라셨고, 주택 필지와 인도 사이의 단차가 있다보니 허리 정도 높이의 담장을 설치해도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며 “개방감을 주면서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도록 낮은 곡선 형태로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오후건축사사무소는 개소 초반에는 단독주택 위주로 작업했지만 이제는 상가주택, 공동주택뿐 아니라 도서관, 소방청사 등 분야와 규모 면에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노 소장은 “소규모 민간 주거를 설계할 때는 건축주가 원하는 대지에 좋은 건축물을 만들었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많은 건물들이 공공 영역이기 때문에 공공 건축물에도 좋은 디자인을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주수곡 행복주택 설계 모형. [오후건축사사무소 제공]

이들이 작업한 공공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주수곡 행복주택이다. 획일화된 아파트 형태보다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을 수 있는 공동주거 설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했던 2019년 LH공공주택 공모전에서 당선돼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당시 오후건축사사무소는 LH 공공주택 최초로 오픈 발코니 설계를 적용했다.

노 소장은 “설계를 하다보니 아파트의 표준 평면의 형태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창고로 쓰이는 실내화된 발코니를 외부 발코니로 만들면 거주자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었다”며 “오픈형 발코니는 창호 설치가 많이 빠지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절감되기도 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빈집 재생 프로젝트 MBC ‘빈집살래 시즌3’에 참여해 방송인 박나래씨와 전북 전주시 팔복동 신복마을의 빈집을 미트파이 가게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노 소장은 “저희가 새로 짓는 건물만 튀게 만들어선 안 되고 마을의 전반적 분위기와 어울려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했다”고 전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빈집살래3-수리수리 마을수리에 참여한 오후건축사사무소. [M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의 건축물보다는 편안하고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는 오후건축사사무소는 건축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건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사무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건축가로서의 일상, 또는 건축 현장을 보여준다.

노 소장은 “유튜브를 보면 변호사, 의사 등 여러 직업군의 개인 유튜브 채널이 많다”며 “그러나 건축은 상대적으로 많은 전공자, 종사자들이 있음에도 콘텐츠의 다양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축 관련 유튜브 콘텐츠는 쉽고 재밌게 보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아 당장 내 집을 지을 건축주말고 일반 사람들이 ‘건축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설계하는 거구나’라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만한 콘텐츠를 만들고자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기성세대 선배 건축가분들이 건축 자체에 더 많이 집중하고 어떻게 보면 권위적이고 무게감 있는 활동들을 해오셨다면, 요즘의 젊은 건축가들은 대중들과 조금 더 쉽게 소통을 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노력에도 비중을 많이 두는 추세인 것 같다”고 했다.

노서영·김하아린 오후건축사사무소 소장. [오후건축사사무소 제공]

오후건축사사무소는 이 같은 건축계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건축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와 함께 좋은 건축물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기를 바란다. 노 소장은 “일상 속에서 좋은 건물을 많이 접하고 이해도가 높아진 사람들의 관심이 더 큰 규모의 건축물들까지 연결되기를 바란다”며 “저희도 골목 상권, 동네에서 시작해서 그에 맞게 조금씩 성장하며 나중에는 스케일이 큰 좋은 건축물을 작업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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