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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 흩뿌린 듯’ 가을 익어가는 평창
내달 8일부터 열흘간 평창효석문화제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배경
달빛 아래 흰꽃 바다, 사무치는 서정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는 강원도 봉평에서 열리는 평창효석문화제는 자연과 문학이 함께하는 축제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메밀꽃밭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나귀를 타보는 특별한 추억도 남길 수 있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이효석의 소설은 K-드라마를 닮았다. K-드라마는 섬세하게 표현된 모든 표정과 대사가 주제와 탄탄하게 연결돼, 서양 시청자들은 ‘매 순간이 감동’라고 평하는데 이효석의 소설 역시 K-드라마의 공식을 따른다. 16부작 중 12부쯤 되어야 비로소 주인공들의 키스신이나 베드신이 짤막하게 나오는 K-드라마 처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역시 중반을 지난 시점에서야 동이 탄생의 비밀, 그 짜릿한 순간이 나온다.

▶네 음절로 표현한 배드신의 배경 ‘메밀밭’=‘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고 묘사하더니,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라고 허생원은 동이에게 ‘그날 밤’을 전한다.

‘기막힌 밤’ 네 음절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베드신 묘사가 끝난다. 그럼에도 독자의 마음은 나대고, 허생원의 심장도 벌렁거려 결국 개천을 건너다 물에 빠진다. 동이와 지나온 얘기를 나누었던 터라, 뼈에 사무치도록 따뜻한 동이의 등어리에 업혀가면서, 허생원은 이 아이가 ‘기막힌 밤’의 소생임을 직감한다.

그는 예정에 없던 곳으로 시원하게 발걸음을 돌린다. 그곳엔 동이 엄마, 기막힌 밤의 주인공이 산다. 메밀꽃 필 무렵, 역대 최고의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고원, 강원도 평창에 가을이 왔다.

▶메밀꽃만? 해바라기·코스모스도 가을맞이=이효석이 나고 자란 평창은 8월 하순임에도 평지마을엔 메밀꽃·해바라기·코스모스·백일홍의 향기와 선선한 공기가 교차하고, 오대산·선자령·발왕산엔 완연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허브나라의 흥정계곡 물은 와글와글 휘돌아 나가며 트레킹족들의 땀방울을 식혀주었고, 동굴 속에 튀르키예 파묵칼레 미니어처를 품은 광천선굴 데크길은 선선한 바람 덕에 산책하기 좋았다.

이 곳의 가을을 알리는 ‘평창효석문화제’는 내달 8~17일 평창 봉평에서 열린다. 올해에도 메밀과 효석·문학·비움·생태힐링·놀이 등 꽉 찬 여행의 풀옵션을 장착한 채 말이다.

올해는 소설의 묘사에 맞춰 봉평면 메밀밭을 더 늘렸다. 교보문고가 지원에 나서 문학의 향을 더욱 진하게 풍길 예정이다. 메밀 꽃밭길 걷기, 소설 속 주인공처럼 꽃길 당나귀 타기, 메밀꽃밭 사잇길 고무바퀴 열차 타기, 포토존 인생샷 도전 등이 마련됐다.

축제장 가까이에 있는 문학의숲, 달빛언덕, 뗏목과 섭다리체험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오대산·선자령·발왕사·상원사·월정사·적멸보궁과 중대사자암, 광천선굴, 메밀푸드 체험까지 인문-자연 1박2일 건강여행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트로이 목마’를 닮은 나무 당나귀 도서관=이효석 문학의 숲엔 소설 속 장터, 충주집, 물레방아 등이 재현돼 있다. 숲속 넓은 습지에는 희귀 습지 식물과 가재가 어울려 산다.

이효석 문학관 마당에서 작가의 동상 옆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서쪽 300m 지점에 있는 효석 달빛언덕에 가면 ‘트로이언 당나귀’가 있다. 트로이 유적 앞 목마처럼 대형 나무 당나귀를 세웠다. 당나귀 내부는 미니도서관이라 책을 읽으며 편히 쉬기 좋다.

‘기막힌 밤’ 분위기를 고조시킨 달(연인의 달)은 낮에도 달빛언덕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다. 달 아래 근사한 예술카페와 운치 있게 핀 해바라기·코스모스의 조화가 계획에 없던 포토존이 되었다. 이효석 생가 재현집들, 문학체험관과 책박물관, 작은 도서관 카페가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다. 축제의 중심인 봉평면 창동리는 초대 문화부장관인 이어령 석좌교수가 둘러본 뒤 자연과 인문의 조화에 감탄하며 국내 첫 문화마을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유일의 민간 주도 행사 ‘평창효석문화제’=평창효석문화제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주민 주도로 진행되는 행사다. 지난 1999년 주민 10여명이 메밀과 문학으로 주제로 축제를 열어 쇠퇴해가는 평창을 살리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를 위해 일본 도야마현 도가무라의 모범적 메밀 소바축제를 벤치마킹했고, 우리 식으로 콘텐츠를 확충했다.

성공을 거둔 이후 봉평과 도가촌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져 그들도 도가무라 축제 때 음식과 프로그램을 확장했다고 한다. 도가촌은 신라인들의 왕래가 많았던 기후현의 세계유산, 시라카와고 합장촌에서 가깝다.

흥정계곡 물이 휘감아도는 1만평의 허브나라공원에서 해 볼 것은 4가지. ▷라벤더·세이지 등 150여 종의 허브와 벌개미취·털여뀌를 비롯한 가을 꽃 감상 ▷청정 옥수에 하는 탁족 ▷시원스럽게 흘러가는 흥정계곡 물멍 ▷다양한 갤러리 탐방 등이다.

세익스피어 가든에서는 세익스피어가 정원사 출신이며, 그래서 작품 속에 많은 허브가 등장한다는, 식물과 문학의 조화로운 스토리를 듣는다. 건강 허브먹거리 레스토랑과 카페, 펜션, 허브박물관, 터키갤러리, 만화갤러리 등이 있다. 국내 첫 허브공원인 이곳은 여행·체험 예능 ‘같이갑시다’, ‘러닝맨’, ‘집사부일체’의 촬영지였고, 야외공연장 별빛무대에서는 이문세, 노영심, 이루마 등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파묵칼레를 닮은 석회 지질이 동굴 속에=흥정계곡에서 장평을 지나 대화면으로 가면 신선이 놀았다는 광천선굴 어드벤처 테마파크를 만난다. 개방된 곳은 850m로 작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고, 직선로 중심의 편안한 동굴탐방 데크길이 마련돼 있다.

40여년 전 야트막한 바위산이 갑자기 뚫리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틈이 생기기 전 동굴 하천들이 내부에서 흐르다 물이 포화상태가 된 순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지금도 이 동물 하부엔 동굴 하천이 미로를 따라 순환한다.

이곳은 그간 인적이 드물어 석순과 석주, 종유석의 원형이 살아있다. 천장의 바위 홈엔 아기 박쥐들이 매달려 몸을 웅크린 모습도 보인다. 예닐곱평 규모의 파묵칼레(튀르키예에 있는 석회붕) 미니어처가 인상적이다.

점심 두 끼는 메밀음식·산채정식, 저녁은 평창한우가 좋겠다.

평창은 이탈리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일본 등 메밀을 먹는 나라 중 그 음식 종류가 가장 많다. 국수와 전병, 부침개와 막걸리는 기본이고, 메밀 중 최고 품종인 달단메밀로 만든 차(茶)는 마즙 닮은 우윳 빛깔의 달콤차이다. 늦게 심은 메밀이 풀처럼 자라면 꽃피기 전 수확해 나물로도 먹는다.

국내 최고의 청정구역 백두대간 능선의 풀을 먹고 자란 대관령 한우의 맛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올림픽 성지, 평창엔 건강하지 않은 것이 없고, 문학의 소재가 아닌 것이 없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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