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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다큐 글로벌화’ 어떻게 가능할까[서병기 콘텐츠이야기]
‘살바로드 달리 : 불멸을 찾아서’는 20세기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스페인 출신 화가이며 조각가, 영화제작자, 소설가, 포토그래퍼로도 유명한 달리와 그의 뮤즈이자 모델이었던 아내 갈라 달리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한국 영상 콘텐츠는 글로벌화와 디지털화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K-팝, K-드라마, K-예능 얘기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최근 다큐멘터리도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가능성을 보인다. 제작 지원이나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시사다큐·대형 다큐 시대

K-다큐의 힘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다큐는 사실에 기반을 둔 영상물이나 기록물을 말한다. 한국 다큐저널리즘 역사를 보면 한국 다큐는 TV다큐와 영화다큐 중 TV다큐가 먼저 대중화됐다.

1983년 KBS ‘추적 60분’, 1990년 MBC ‘PD수첩’이 신설되면서 1990년대 시사다큐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러면서 ‘PD저널리즘’과 ‘기자저널리즘’을 대비시키는, 이상하고도 엉뚱한 구분법과 해석법이 나왔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등 진영 논리가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시사다큐는 한동안 침체를 보이다가 몇 년 전부터 재개되는 추세다.

TV다큐저널리즘 역사상 또 하나의 다큐 방향은 거대 프로젝트였다. KBS 중장기 다큐 프로젝트였던 ‘아시아 인사이트’가 대표적이었다. ‘차마고도’(2007, 6부작), ‘누들로드’(2008, 7부작), ‘슈퍼피쉬’(2012, 5부작) 등이다. 대형 다큐들은 KBS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제작비 등의 이유로 거대 다큐 실종 시대를 맞았다. 그러는 사이 EBS가 ‘다큐프라임’ 등으로 훨씬 더 선택과 집중을 잘해 다큐멘터리 명가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요즘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으로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KBS는 이 같은 대형 다큐들을 다시 틀어주고 있다.

한국은 아직 다큐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다큐멘터리의 극장 소비가 넓게 퍼져 있다.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등 수많은 다큐멘터리영화제가 이를 담당한다.

지난 2일 개봉한 다큐영화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는 스스로를 천재시하면서 인상주의를 반대하고 초현실주의에 고전주의 등을 접목하는 달리의 예술적 활동과 그의 뮤즈이자 아내인 갈라 달리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달리는 환상을 상상을 통해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예술화한다. 잘린 신체, 정맥 등은 환각과 불안 이미지를 반영하며 전통과 아방가르드 사이 어디쯤에서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달리는 화가, 조각가 등으로 번 돈으로 갈라에게 고딕 양식의 푸볼성(城)을 지어 선물한다. 그 성에서 열 살 연상인 갈라가 먼저 죽고 난 후 달리의 외롭지만 열정적인 노년의 삶은 경이로움과 함께 연민을 느끼게 할 정도다. 달리 하면 어려운 예술가지만, 이런 다큐를 통해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영화 산업은 마이클 무어라는 미시간 출신의 스타 다큐감독의 공이 크다. 고교의 참혹한 총기 사고를 그린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다룬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 등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어 감독은 선동적이고 감정에 치우치지만 다큐를 흡사 풍자코미디처럼 재밌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어 감독에 힘입어 미국은 본격 시사다큐영화 시대에 돌입했다. 당시 제작된 ‘슈퍼사이즈 미(Super Size Me, 2004)는 패스트푸드 문화의 무서움을 고발하기 위해 모건 스펄록 감독이 주연을 맡아 직접 패스트푸드를 먹어보면서 제작한 다큐다.

한국도 2009년 다큐영화 ‘워낭소리’가 무려 293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영화 못지않은 흥행력을 보여준 바 있다. 농부인 최 노인과 그의 베스트프렌드이자 최고의 농기구인 ‘30년 지기’ 소 이야기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의 ‘환상적 케미’는 관객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줬다.

OTT 플랫폼 등장과 새로운 다큐 트렌드

넷플릭스 등 OTT다큐물은 범죄물, 스타, 종교 관련물들이 주로 제작되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 ‘블랙핑크 : 세상을 밝혀라’(2020년)는 수많은 해외 팬이 시청했다. ‘님아 :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2021년),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2021년), ‘사이버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2022년)도 넷플릭스를 통해 방송됐다. 웨이브 수사다큐물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배정훈 PD가 제작한 ‘국가수사본부’(2023년)가 있다.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제이 홉과 슈가의 음악 여정을 그린 다큐 ‘j-hope IN THE BOX’(디즈니+·위버스, 2023년)와 ‘SUGA: Road to D-DAY’(디즈니+·위버스, 2023년)도 있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년)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의 성범죄 혐의 등을 다뤄 큰 파문을 일으켰다. MBC에서 다뤄진 소재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신(神)이라고 칭한 이들의 실체와 만행, 피해자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담긴 새로운 내용이 매우 충격적인 데다 표현 수위의 제약을 별로 받지 않는 OTT 콘텐츠라 더욱 놀라움을 안겨줬다.

OTT 다큐의 독특한 색깔로 인해 지상파에서 못했던 소재를 다룰 수 있고, 이미 다뤘던 소재라 하더라도 더욱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어 각인 효과가 커진다. ‘나는 신이다’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대중에게 알리는 주의 환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OTT 다큐는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다. 교양다큐, 시사다큐도 OTT를 통해 글로벌 수준의 리얼리티나 선정성이 시작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면서 선정성의 새로운 해석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2023년 백상예술대상 TV교양 부문(다큐) 수상작은 MBC경남 다큐 ‘어른 김장하’였다. ‘나는 신이다’가 파격적이었지만 다큐 본연의 선한 영향력을 고려하고 지역 다큐와 마이너 감성, 작지만 큰 영향력 등에서 점수를 받아 백상 최초로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가 상을 받았다.

TV다큐는 OTT 다큐의 영향을 받으면서 과도기적 상황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다큐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영국 BBC도 “우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넷플릭스”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다(多)플랫폼 시대인 지금이 지상파와 케이블의 다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정립해야 할 시기다. 연성화, 선정성, 정통성 등 어느 하나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소재는 어디에서 찾을까?

다큐멘터리가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주의주장을 너무 강하게 집어넣지 말 것, 취재를 잘해 설득력을 갖출 것 등은 기본이다. 다큐는 모든 게 소재다. 하지만 막상 만들려고 하면 쉽지 않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내가 관심 있는 것을 잘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시각을 갖추는 데에는 인문학적 공부, 즉 독서와 사색이 필요하다.

잊혀진 가치 찾아내기도 한 방법이다. 넷플릭스 다큐물로 한국 대중음악 연주자, 즉 세션을 중심으로 다큐를 만든다면 새로운 음악다큐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음악다큐 제작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지만 음악다큐 하면 가수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위주로만 제작됐다.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앞으로의 ‘방송 콘텐츠’가 채굴해야 할 광맥은 바로 ‘스우파’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억눌려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 또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담대하게 공론장에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는데 ‘방송 콘텐츠’ 대신에 ‘방송 다큐’라는 단어를 대체해도 괜찮을 것 같다.

여전히 ‘인간극장’ ‘다큐 3일’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다큐는 드라마, 영화의 원천 소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TV다큐가 대중문화의 소재로 적극 활용된다는 의미다.

영화 ‘브로커’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TV다큐감독 출신이다. 초기 영화는 거의 다큐적이었다. 주로 사회적 약자를 다루고, 가족, 소외, 아동학대 등을 천착해나가는 그의 다큐PD 스타일이 영화로 연결됐다.

다큐를 만들 때는 해당 이슈의 역사부터 공부하는 것도 유익하다. 특수성, 보편성과 연관을 짓는 데에도 유리하다. 다큐물에 역사를 압축해서 집어넣으면 훨씬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보인다.

TV다큐의 경쟁자는 수많은 유튜브 브이로그?

MBC 최별 시사교양PD는 전북 김제의 한 폐가를 구입해 집을 짓고 살며 이웃과 소통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오느른’을 제작해 인기를 끈 바 있다. 요즘은 일주일에 5일은 도시에서 지내고, 이틀은 시골(村)에서 보내는 ‘오도이촌(五都二村)’의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큐일까, 다큐적일까, 미니다큐일까?

엄밀하게 보면 ‘오느른’ 같은 브이로그는 다큐는 아니다. 하지만 다큐에 영향을 미치며 다큐의 한 방식으로 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다큐멘터리의 재정의: 유튜브 다큐성 콘텐츠’라는 제목으로 쓴 차우진 평론가의 다음 글도 유튜브와 다큐의 관계를 생각하는 데에 참고할 만하다.

“새삼 우리는 이 불확실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유튜브의 다큐멘터리가 제기하는 질문은 뜻밖에도 이런 것이다. 계획이, 전략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기획 의도와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완성된다. 여기서 21세기의 미디어는 이미지와 실체, 본심과 가식, 대화와 마음을 교차해서 보여준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 경계와 모순의 세계에서 진정성이란 차라리 생존전략이 된다.”

다큐는 어떤 시각이 들어가야 한다. MBC 휴먼다큐 ‘사랑’은 병실 브이로그에 휴머니티가 포착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선이 들어갔다. 요즘 다큐물이 겉으로는 브이로그 같은 일상의 유행을 따라가더라도 속으로는 집요한 한방이 있어야 한다. 포장지는 유행을 반영해도 알맹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나 해석이 필요하다.

올해로 20년을 맞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출품작들은 시리즈물과는 다른 완결성을 지닌 ‘시네마틱 다큐(영화다큐)’ 느낌이 난다. 설정, 장소, 시간, 특정 사안에 대해 공부해 영화 찍듯이 완성도를 높인다. ‘왜 담아야 하는가( 의미, 이유)’와 함께 새로운 접근(차별성)이 이뤄져야 한다. 아무래도 다큐를 극영화에 가깝게 만들려면 시간과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 ‘워낭소리’는 소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몇 년을 찍어야 한다. ‘소’라는 동물과 각별한 어르신이 있다. 이를 자연스럽게 찍어 편집에 의해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다.

김옥영 작가는 자신이 집필한 ‘다큐의 기술’에서 다큐를 제작하는 몇 가지 가이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있는 그대로는 없다 ▷객관성과 주관성, 두 가지 관점을 잘 섞어야 한다 ▷사전 취재에서 자신의 시각(주관성)을 얹어야 한다 ▷사실’보다는 ‘사실’을 보는 독특한 시각, 똑같은 팩트라 해도 어떤 시각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문제의식)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필요한 것은 예민함이다.

K-DOCS와 같은 다큐멘터리 지원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

영화제나 드라마 어워즈가 발전하려면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해야 하고, 마켓이 함께 가야 한다. 부산영화제의 발전에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투자자의 ‘입도선매’가 이뤄지기도 했던 PPP(부산프로모션플랜)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K-다큐의 마켓 발전은 더디지만 가능성은 있다. EIDF가 지난해 기존 다큐 제작 지원사업인 인더스트리를 확대 재편해 ‘K-DOCS’라는 제작 지원 플랫폼을 내놓았다.

한국이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소비가 K-팝과 K-드라마처럼 왕성한 시장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공공펀드는 그리 야박하지 않다. 피칭, 아카데미, 네트워킹을 지원해주는데 이를 통해 고품질 다큐가 계속 제작되는 창작생태계를 조성하고 한국 다큐가 전 세계 플랫폼에서 유통될 수 있게 한다. 완성품이 나오기 전 기획 방향,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구매가 이뤄져 제작비 확보가 가능한 ‘입도선매’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도 이제는 해외 시장을 목표로 하는 작품들의 경우 평균 제작비가 3억~5억원 정도가 된다. 이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해서 한국 시장에서 본전을 회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노크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해 해외 시장에서 팔릴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편집 경향과 선호하는 스토리텔링, 장르 등을 고려해 국제 공동 제작 형태로 전환해야 파이도 커지고 시장의 규모가 확대된다. K-DOCS가 그런 점들을 지원해준다.

아직 한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산업은 K-팝이나 K-드라마에 비해 갈 길이 멀다. 그러나 K-DOCS 등의 제작 지원 시스템들이 활성화한다면 한국의 다큐감독과 제작자들의 잠재력과 창의력이 발휘돼 K-팝 못지않은 활약을 펼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K-다큐의 글로벌은 한국 이야기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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