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가격·빠른 납기 앞세운 中
최근 슬롯 채우면서 경쟁력 잃어
현대미포조선이 2021년 인도한 5만t급 메탄올 추진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의 모습 [HD현대]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글로벌 조선시장에서 탱커(유조선) 발주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낮은 가격과 빠른 납기를 앞세워 수주를 독식해 왔던 흐름이 깨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조선소가 슬롯(도크)을 어느 정도 채우면서 납기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데다 환경 규제 강화로 대체 연료 추진 등 친환경선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서다. 한국 조선사가 더 좋은 조건으로 수주를 따내며 탱커 신조 발주 사이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발주된 정유제품 운반선의 93.9%, 화학제품 운반선의 56.1%, 원유 운반선의 60.0%는 중국 조선사가 수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1~7월 중국의 전체 선박 수주 점유율이 56.3%라는 점과 비교하면 탱커 분야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탱커 시장에서 미진한 편이다. MR(중형)급 화학제품 운반선 33척을 따내며 단일 조선사 기준으로 가장 많은 탱커를 수주한 현대미포조선을 제외하고는 올해 이렇다 할 수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원유운반선만 두고 보면 HD한국조선해양이 3척, 삼성중공업이 2척을 수주했고 한화오션은 한 건의 계약도 없었다.
7월 누계 전체 선박 시장에서의 수주 점유율을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30.0%로 선방했지만 대부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LPG(액화석유가스) 운반선을 위주로만 일감을 채웠다.
물론 이는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가 선별 수주 전략에 따라 수익성 높은 선박을 위주로 계약한 영향이 크다. 실제 8월 18일 기준 17만4000㎥급 LNG선의 신조선가는 2억6400만달러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1억26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다만 탱커 발주가 최근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탱커 수주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8월 현재까지 전 세계 선주사가 발주한 1만DWT(순수화물 적재톤수) 이상 탱커는 총 211척으로 작년 한 해 물량(146척)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최근 원유 물동량 증가와 그에 따른 탱커 운임 상승 등이 신조 발주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전체 글로벌 VLCC 선대 902척 중 27.7%인 250척이 15년 이상 된 노후선이라 선주사의 신조 발주는 당분간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최근 탱커의 상당수가 가격이 더 비싼 친환경 선박으로 발주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하는 대목이다. 국내 조선사가 주력으로 하는 VLCC급 원유운반선의 경우 올해 발주된 8척 모두 황산화물 저감 장치인 스크러버를 장착하거나 LNG 이중연료 추진 엔진을 다는 조건으로 계약됐다. 양적 성장과 함께 선가도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중국 주요 조선사가 2026년까지의 탱커 슬롯을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알려져 국내 조선사에는 탱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조선사는 그간 국내 조선사 대비 15% 가량 낮은 가격과 1~2년 빠른 납기를 앞세워 물량을 확보해왔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납기를 뒤로 밀어내면서 중국의 낮은 선가를 받아들이기보다 국내 조선사가 제시하는 선가로 친환경선을 발주하는 흐름이 생겨날 시점”이라며 “국내 조선사의 대형 탱커 수주 소식은 내년부터 들려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