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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대주택 섞는다고 소셜믹스 아닙니다…강남 아파트 1층을 공짜 공원으로” [건축맛집]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인터뷰
임대주택 섞어 짓는 소셜믹스는 바람직하지 않아
도시의 1층부에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서울은 뉴욕 파리 등과 경쟁하는 도시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이고 공급 늘려줘야
건축 ‘보는 눈’ 기르고 좋은 건축에 투자해야
유현준 건축가 겸 교수는 양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갈등 구조를 치유하는 데 건축이 소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2002년 월드컵 때 겪은 공통의 경험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듯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건축이 제공한다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서울 강남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정순식·박자연 기자] 대다수 사람이 집 또는 건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계산에 기반한다. 몇 가구인지, 용적률을 몇 퍼센트로 하고 층수는 얼마나 올릴지에 따라 향후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서다. 이처럼 ‘숫자 건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좋은 건축’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진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금이 좋은 건축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건축가는 ‘관계를 디자인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갈등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 건축이 ‘공통된 경험’을 제공하며 화해와 소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강남구에 위치한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도시의 효율성 측면에서 아파트가 최적화된 모델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한강변을 가로질러 아파트가 병풍처럼 서 있는 모습이 결코 바람직해 보이진 않습니다. 최근에도 한강변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분열되고, 양극화된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도시의 공간 구조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재건축할 때는 구성원들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된다고 봐요.

그러려면 공통의 추억이 만들어져야 되거든요. 공통의 추억은 확증편향과 알고리즘에 의해 끼리끼리 모일 수밖에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 만들어지지 않아요. 오프라인 공간이 제공돼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도시를 만들 때는 계획하는 사람과 재건축 조합원들이 그런 관점을 견지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집에 살고, 1층부는 일부 도시에 기여를 해서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선형의 공원을 만들자’라는 구상이요. 또 시민들이 제안했을 때 시에서는 과감하게 그런 아이디어에 좀 더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가야겠죠.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봐요. 단군 이래 이렇게 잘 살았던 적이 없어요. 이때 새롭게 만드는 도시가 100년 뒤, 200년 뒤에 전 세계인이 관광하러 오는 도시가 될 거라고 봅니다.

▶임대주택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임대주택의 소셜믹스 등 실험이 이어지고 있지만, 강남 재건축 단지에선 개방형 아파트를 조건으로 인허가를 받아놓고도 담장을 설치하고 있는데요.

=우선 임대주택을 한 단지에 넣어 소셜믹스를 하려는 것은 잘못됐다고 봐요. 강남 고급아파트는 임대주택도 비쌉니다. 주변 시세를 반영하니까 연봉 몇억 되시는 분들밖에 못 살아요. 원래 취지하고 안 맞죠. 차라리 비싸게 분양을 해 조성한 돈으로 다른 좋은 위치에 저렴하게, 제대로 된 임대주택을 짓는 게 낫습니다.

저는 소셜믹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익명성의 상태에서 믹스라고 보거든요. 부잣집 옆에 가난한 집을 넣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처지가 다르다는 건 모두가 알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소셜 믹스는 도시의 1층부에 접근성이 좋은 공간을,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얼마나 마련할 것이냐예요.

제일 좋은 건 단지 내 녹지를 할애해서 선형의 공원을 만들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그 공원에 도서관을 지으면 더 좋습니다. 또 공원에는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으면 좋겠죠. 주변부로 1층 상업 가로들이 완성되면 더 좋을 거고요. 그러한 관점에서 도시의 공간 구조를 개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지금은 억지로 임대주택을 넣으려다보니 임대동을 대로변 또는 뒷동에 배치시키는 뻔한 공식이 나오고 있어요.

또 폐쇄적인 단지는 접근이 잘못됐어요. 건축 계획을 세우는 관리자들은 ‘너의 아파트가 단지가 크니 나는 반드시 여기를 쪼개서 양분해야겠어’라는 식의 철학을 가지면 안 돼요. 제대로 된 철학이라면 그 사람도 좋고 나도 좋게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결국 ‘윈윈’할 방법을 디자인 통해 찾아야죠. 아파트 주민 입장에서 보면 녹지를 내놓는 게 맞죠. 공개공지를 내놓으면서 사생활은 또 지켜져야 해요. 내 땅에서 쉬고 싶은데 아무나 들어오는 게 싫잖아요.

압구정을 예로 들면 단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전형적인 토목 솔루션이에요. 건축적인 솔루션을 한다면, 길의 레벨을 다르게 하면 됩니다. 작은 높이 차이만 두더라도 시각적으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어요. 전체 단지의 녹지 15% 정도를 동호대교 라인으로 하면 선형의 공원을 만들고 거기 상업가로를 만들고, 포켓 파크도 다 만들고 해요. 그럼 거기는 일반인들이 압구정역을 나와서 한강까지 걸어갈 수 있겠죠.

입주자의 본능도 이해하고 압구정역을 옆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본능도 이해하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어요. 그걸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단지를 만드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죠.

창의적이고 입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건축의 묘미가 있는 거니까요.

몇백억 자산가나 알바생이나 가서 쉬고 싶은 공원을 만들고 그렇게 가고 싶은 공원을 누구나 쓸 수 있게끔 디자인해야 되는 거죠. 그런 디자인을 가져오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거절해야 합니다.

유현준 건축가 겸 교수는 양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갈등 구조를 치유하는 데 건축이 소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2002년 월드컵 때 겪은 공통의 경험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듯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건축이 제공한다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서울 강남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그럼 이상적인 소셜 믹스는 뭘까요?

=앞서 말했지만 공통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도시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은 공짜여야 합니다. 실내 공간이라면 도서관, 그다음은 교회의 마당이 될 수도 있고, 제일 좋은 거는 공원이에요.

우리가 국민드라마, 월드컵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잖아요. 그 사람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이게 안 되면 대한민국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너무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니까요.

저는 위기의식을 느껴요. 이번 대규모 재건축을 거치며, 안 되면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갈등의 시대로 갈 거라는 겁니다.

▶공급 얘기도 해볼게요. 서울에 공급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넘어 뉴욕이나 런던이나 파리하고 경쟁해서 이겨야 되는 도시예요. 또 자원이 사람뿐이죠. 그러니까 서울은 도시 경쟁력을 키워서, 더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이곳에 전 세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어야 해요.

밀도를 높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단순히 공급을 늘리는 건 정답이 아닙니다. 사람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그런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자연, 사람과 맞닿게 하면서 접점을 많이 만들어주고,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는 지하철이나 걷는 것을 더 많이 하는 도시를 만들어줘야 되는 것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최대한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뉴욕 같이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파리 같이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뭔가 이전엔 없었던 걸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무량판 사태를 겪으며 건축 설계 업계의 열악한 현실이 민낯처럼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축업계에선 덤핑 수임과 최저가 낙찰 관행이 지속돼 부실 설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창의적인 설계가 제약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언젠가 터질 사건이었어요. LH라는 조직의 문제점도 있었고 또 그것뿐만이 아니고 대한민국 건축계의 노동자들이 다 해외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직업윤리가 크지 않아요. 건설기술사 몇 명이 또 다른 감시의 눈을 더 둔다고 해결이 될까요? 감리에 감리에 감리가 생기겠죠. 그러니 직업 윤리를 만들어줘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건설현장에 가서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들이 만들어져야 되는 게 맞고요.

▶우리나라 건축업계가 외국에 비해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구조적 문제일까요?

=지금까지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걸 요구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건축주들이 좋은 건축을 보는 눈이 없었으니까요. 좋은 건축이 뭔지 알아야 좋은 건축을 선택할 거고 그래야 좋은 건축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훌륭한 건축가가 많지만 그들이 설계사무소를 차리면 다 망해요. 좋은 설계를 알아봐주는 건축주가 없어요. 현실인 거예요. 그리고 좋은 건축을 알았다면 그 건축가에게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70~80년대, 90년대까지는 그냥 싸게 지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축만 추구하다보니 건축 설계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지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마지못해 돈을 내는 거예요. 허가 도장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 좋은 디자인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시면 그거는 로또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해요.

알게 모르게 좋은 건축가들이 많아요. 이를 보는 눈이 있어야 되고 그래서 실력이 안 되는 건축가들이 퇴출돼야 한다고 봐요. 좋은 건축과 창의적인 건축이 좋은 평가를 받고, 그런 사람들한테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방법은 국민을 일단 건축에 관심을 갖게 하자에요.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건축가는 진짜 멋있는 직업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건축가로서 생활하기에는 팍팍한 건 사실이지만 좀 성숙해지면 점점 건축가가 생활하기 좋아질 거라고 보고요, 그리고 여러분이 활동할 때쯤 되면 제대로 된 설계비를 받으면서, 높은 안목을 가진 건축주를 만나는 그런 환경이 되게끔 제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겁니다.

sun@heraldcorp.com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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