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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지로·익선동이 흥한 이유? 모두가 아파트에 살잖아요” [건축맛집]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인터뷰
건축의 묘미 살린 재건축 디자인 필요
1기신도시 밀도만 높이려면 하지 말아야”
유현준 건축가 겸 교수는 양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갈등 구조를 치유하는 데 건축이 소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2002년 월드컵 때 겪은 공통의 경험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듯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건축이 제공한다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서울 강남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정순식·박자연 기자] 대다수 사람이 집 또는 건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계산에 기반한다. 몇 가구인지, 용적률을 몇 퍼센트로 하고 층수는 얼마나 올릴지에 따라 향후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서다. 이처럼 ‘숫자 건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좋은 건축’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진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금이 좋은 건축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건축가는 ‘관계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갈등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 건축이 ‘공통된 경험’을 제공하며 화해와 소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강남구에 위치한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교수님한테 건축이란 뭔가요.

=건축은 저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매개체입니다. 제가 표현하는 방식이자 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직업으로 확장해서 보면 건축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 관계를 조율하고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사회의 관계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해요.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들면서 그들 간 관계를 디자인하는 거죠. 어떤 것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정치적이기도 하고, 때론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기도, 여러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의식이 반영되기도 하죠.

▶요즘 인구가 줄면서 지방 구도심들은 슬럼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지방정부 차원에서 도시재생을 시도하기도 하는데요, 이 맥락에서 건축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건축물은 필요한 곳에 지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게 건축이니까요. 사람이 없는 곳에 공간을 만든다고 수요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지방에 혁신도시를 만들면 인구가 그쪽으로 갈 거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고, ‘강남처럼 쾌적한 아파트가 있는 도시를 지방에 만들면 인구가 분산될 것이다’라 했는데 반대였어요. 오히려 KTX 등장 이후로 시공간 개념 자체가 달라지면서 중앙 집중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생겼죠. 그래서 지방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소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과 차별화된 뭔가 가치를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연남동이나 익선동, 을지로도 낙후됐지만 젊은 사람들이 상권을 만들었잖아요.

=그곳들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서울이고, 방문자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을지로나 연남동인 거예요. 인구가 있다는 게 기본 전제죠.

저는 지방에 연남동, 을지로를 만든다고 해서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지방은 2~3시간이 걸리더라도 갈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해요. 결국 하룻밤을 잘 가치가 있을 때 가는 거죠. 향후 일자리가 줄면 주4일근무제 같은 걸 할 텐데, 그럼 3일 휴일을 보낼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공간이 제공이 돼야 지방에 갈 거라고 봐요. 그것이 연남동과 을지로 스타일은 아니겠죠.

▶특별법이 추진되기도 하는 등 과밀화된 신도시 재건축이 화두입니다. 실현 가능한 건지 또 바람직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답변드리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분명 그곳에 밀도를 높여서 재건축을 하면 사람은 채워질 거예요. 하지만 보다 외곽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를 하겠죠.

관건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밀도만 높여서 그 정도 수준의 도시를 만들거라면 저는 안 하는 게 낫다고 보고요. 밀도를 높이면서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은 해요. 할 거면 제대로 해서 전 세계인들이 다 와서 살고 싶은 정도 수준의 도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서울 강남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묘안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그런 건 있죠. 걸어서 5분에서 10분 이내에 공원을 만날 수 있는 도시, 아이들은 자연과 가깝게 저층형 학교에서 지낼 수 있는 ‘스머프마을’ 같은 학교가 있는 도시, 저밀·중밀·고밀화된 곳들이 몇백 미터 안에서 공존하면서 조금만 걸어도 그 모든 다채로움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시,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밀도가 높아 굳이 차를 타고 다니지 않고서도 걸어 다니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 상업이 한쪽에 집중화되지 않고 선형으로 돼 걷고 싶은 거리가 형성된 도시 등이죠.

그런데 중앙공원이 있고 중심 상업지역에 상가 올라가 있고 아파트 있고, 근린상가 만들고 이럴 거면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일산 신도시가 도곡동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상권의 양극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흐름인데요.

=만약 우리가 걸어갈 만한 거리에 좋은 동네 식당들이 있다면 기꺼이 5분, 10분 걸어서 가서 즐길 것 같아요. 또 상권을 가는 경험이 즐거워야 하는데 근데 그러는 도시 환경 구조가 아닌 거죠.

예전처럼 우리가 상가만 만들어 놓으면 상가 복도 4층에 있더라도 찾아가는 그런 시절은 아니거든요. 내가 그 가게를 가기까지 가는 동선과 거기서의 공간 체험들, 공원을 산책하듯이 걸어 가게에 갈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성공적으로 돼 있는 곳이 서울에서는 경의선숲길이라고 보는데, 선형의 공원 형태인 숲길 주변에 상권이 적절하게 분포가 돼 있어 상권이 살아나는 겁니다. 반면 10층짜리 건물에 상가를 다 집어넣고 역세권이라고 해서 비싸게 팔면, 그건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 구조도 아닙니다.

nature68@heraldcorp.com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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