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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늑장보고 물으니 “고객 피해 없었다” 문제의식 없는 은행권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5만원권을 옮기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서정은·김광우 기자] 은행권에서 각종 금융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며 내부통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는 가운데 논란이 된 은행들의 안일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고객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에 신고를 지연하거나, 자체감사를 소홀히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대구은행 금융사고, 금감원은 ‘외부제보’로 인지…은행권 은페·축소 계속

대구은행 영업장 모습.[연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대구은행 직원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1000여개에 달하는 증권계좌를 추가 개설한 혐의와 관련해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대구은행은 지난 6월 이미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사고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은행은 당시 영업점들에 불건전 영업행위 예방 공문을 보내는 데 그쳤다. 금감원은 외부제보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게 돼, 즉시 검사를 개시했다.

대구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횡령이 있거나 고객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힌 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감원에 보고를 할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며 “완벽하게 횡령 등 사기 행각이 있으면 당연히 보고해야겠지만, 그런 건이 아니라 좀 더 지켜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구은행 사건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쟁점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고 수위가 낮지 않다. 조직적인 사고 정황이 발견될 시 처벌은 더 강해질 수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상품 설명이 제대로 안 됐다면 모르겠지만 문자 차단까지 했다는 건 조직적이라고 볼 수 있고, 처벌이 가장 센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금융사에 다니면서 이 부분에 대한 심각성을 바로 포착하지 못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고 말했다.

경북 포항 포스코국제관에서 열린 대구은행 2023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황병우 대구은행장이 발언하고 있다.[DGB대구은행 제공]

일각에서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관련해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대구은행은 시중은행 전환과 관련해 큰 파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어떤 큰 의도를 갖고 했거나 대규모 사기 행각을 벌였다면 당연히 (시중은행 전환에) 영향이 있겠지만, 우선 그 정도의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법 시행령에 따르면 은행업 본인가 세부요건에는 ‘위험관리와 금융사고 예방 등을 위한 적절한 내부통제장치 마련’ 항목이 명시돼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 또한 “내부통제 완비, 고객 보호 시스템, KPI 시행 여부 등을 심사 과정 점검 요소로 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은행 횡령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줄곧 외쳤지만, 여전히 문제를 축소하려는 은행권의 모습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BNK경남은행서도 15년간 한 업무를 담당한 직원의 500억원대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경남은행이 금감원에 대한 보고 지연 및 허위 보고를 한 정황이 드러나며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법령상 허용 가능한 최고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은행 “고객 자금 영향 없어”…업계는 ‘기관 제재’ 주장까지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

내부통제에 대한 안일한 태도는 최근 미공개정보 활용 불공정거래 사건이 발생한 KB국민은행서도 나타났다. 국민은행에서는 무상증자 업무를 담당한 증권대행부 소속 직원들이 127억원 규모의 부당 이득을 취득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에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 자산이나 고객의 영향을 주진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신뢰가 중요한 금융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송구하다”고 말했다.

사건의 심각성은 작지 않다. 불법 행위는 2021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3년이 넘게 이어졌으나 은행은 이를 진작 포착하지 못했다. 당초 혐의자도 1명으로 확인됐지만, 금감원 조사 결과 해당 부서 17명의 과반이 넘는 10명까지 늘었다. 국민은행은 20년 전에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적도 있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사옥 전경.[KB국민은행 제공]

실제 같은 증권대행 라이센스를 가진 타 기관의 경우 내규에 따라 6개월에 한 번 증권거래내역을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증권대행부 직원들의 경우 더 강화된 3개월 주기의 신고가 이뤄진다. 유·무상증자, 합병 일정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도 내규상 신고의무는 있었지만 본인계좌 뿐 아니라 차명 계좌 등을 동원하며 이를 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측은 “우리도 내규가 있지만 관련자가 누락해 신고를 한다면 이를 알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연루자가 상당수인 만큼 국민은행이 실효성 있는 내규를 갖추지 못했거나, 이에 따른 내부통제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개인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기관에 대한 제재도 강하게 이뤄져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증권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국민은행, 하나은행, 예탁결제원 등 3곳에 불과하다. 이에 업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할 문제지만 아무 제재 없이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며 “관련 라이센스 재심사를 하든지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oo@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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