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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분열된 세계와 한국 외교의 지평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광장에 파괴된 탱크가 전시돼 있다. [AFP]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구도가 더 첨예화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는 양분된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하게 분열돼 있는 쪽에 가깝다.

크게 봤을 때 세계는 서방 진영(Global West), 중·러 진영(Global East) 그리고 남반구(Global South)로 삼분돼 있는 형국이다. 서방 진영엔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이 속해 있고, 중·러 진영엔 중국과 러시아를 위시해 이들과 가까운 시리아, 벨라루스, 북한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가 포함돼 있다. 남반구는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걸쳐 있는 비서방 개발도상국들을 일컫는다.

물론 이런 분류가 엄격한 블록으로 간주될 정도로 행동이 통일되고 응집력이 강한 것은 아니다. 같은 진영 내의 국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때로 진영을 넘어선 엇갈린 행보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 세 개의 진영이 분명히 다른 정체성과 관점으로 국제정치에 임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태도에서 이런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글로벌 웨스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권과 영토 존엄성이라는 국제 규범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수호하는 전쟁으로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성공이 대만에서 시진핑의 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200년 중립국 스웨덴까지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러시아를 겨냥한 신전략 개념을 재정비하는 나토의 노력도 이를 반영한다. 반면 러시아로서는 자국의 국경까지 접근해오는 나토의 팽창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항변한다.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나토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국가를 받아들이며 계속 동진했으며, 이제 러시아 안보의 임계점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토의 팽창을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장악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러의 시각이다.

마지막 글로벌 사우스의 관점은 독특하다. 이 국가들도 러시아의 침략행위 자체는 두둔하지 않는다. 다만 서방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며 자신들은 진영 선택이 아니라 국익우선의 외교를 당당히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인도가 대표적이다.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며 실리를 챙기고 있다.

푸틴의 전쟁 자금을 고갈시키기 위한 서방의 대러 에너지 제재에 구멍을 내는 행위임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서방의 비난에 대해서는 오히려 서구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지적한다. 미국이 가치외교를 내세우지만 그 적용은 선별적이고 자의적이었으며,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독재국가의 손을 잡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유럽의 문제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공동 대응을 강요받기 싫다는 것이 남반구 국가들의 일반적인 정서다. 서구 제국주의를 경험한 남반구의 많은 나라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라는 구호 자체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러시아가 무단으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듯이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기억이 계속 소환된다. 자유무역의 옹호자였던 미국이 자국 제조업 경쟁력 복원을 위해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보호주의적 정책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나토와는 비확산, 사이버 등 11개 분야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합의했으며 ‘대서양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의 불가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치와 정체성에 기반을 둔 외교를 천명해온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이 글로벌 웨스트에 속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북핵 위협을 한미동맹으로 억제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라는 동아시아 세력 재편의 와중에서 우리 외교의 방향성을 친서방으로 설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미동맹을 넘어 서방 선진국들과 중층적 안보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는 방책이기도 하다.

다만 분열된 세계의 복잡성과 위험성을 고려해 균형적 감각과 통합적 시각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 중·러와 소원해지는 것을 넘어 적대관계로 가는 것은 안 된다. 친서방, 대미 밀착외교가 중·러의 대한민국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기대는 말처럼 쉽지 않다. 한중, 한러 관계의 손상이 제한된 수준에 머무르도록 관리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사고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구애경쟁을 벌이고 있고, 일본도 ODA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의 외교지평도 세계의 3분의 1 지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도·태평양도 중요하지만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과 남반구를 놓치지 않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글로벌 외교를 기대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전 국방부 기조실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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