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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안 한 척” 위장미혼 부추기는 신혼부부 대출지원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헤럴드경제=서정은·박자연·홍승희 기자] 서울 도봉구에 신혼 전셋집을 얻은 직장인 김모(30)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부부 합산소득 6000만원을 넘겨 신혼부부 전용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혼집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연 2.1% 금리로 청년전용 버팀목 대출을 받았다”면서 “소득이 비슷한 결혼상대를 만났을 뿐인데 혼인신고를 하면 4~5%에 달하는 은행 대출금리를 내야하는 게 아이러니”라고 전했다.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세제를 개편하는 등 지원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지만, 이처럼 부동산 관련 혜택에서 맞벌이 부부가 미혼보다 불리한 경우가 있어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미루고,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특히 ‘내집마련’을 위한 정책대출 조건이 미혼과 신혼가구의 차이가 거의 없어서 맞벌이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신혼부부인데 보증금 지원한도 너무 낮아…오피스텔서 출산 어떻게 하나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청년과 신혼부부가 2.1%의 저리로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버팀목전세대출 상품은 지난해 10월 대출 한도와 보증금 상한 기준이 상향됐다.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대출 한도와 보증금 상한 기준이 시세에 비해 너무 낮다는 비판이 나와서다. 대출 한도의 경우 청년은 7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신혼부부의 경우 수도권 2억원→3억원, 지방 1억6000만원→2억원으로 올랐다. 보증금 상한액 역시 청년은 1억원에서 3억원, 신혼부부는 수도권 3억원→4억원, 지방 2억원→3억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전세 대출 한도 및 보증금을 상향했음에도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거환경 마련을 돕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세 중위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의 경우 여전히 4억원을 웃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4월 처음으로 5억원 이하로 내려간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은 3개월째 4억9500만원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신혼부부들이 버팀목 전세대출로 집을 구한다면, 외곽의 소형 아파트로 밀려나거나 빌라와 오피스텔 등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빌라 등 비아파트의 공시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5월부터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되면서, 전세사기 범죄 노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비아파트 매물의 주거 안정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개월 전 결혼한 30대 신혼부부는 “양가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워 대출 상품에 의존해 집을 구해야 하는데, 금리가 너무 높아 당장 정책대출에 기댈 수 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빌라나 오피스텔에서 전세를 살면서 당장 아이를 낳아 기를 계획을 세우는 건 어렵다”고 전했다.

소득합산, 신혼부부가 더 불리…혼인신고 미루고 ‘위장미혼’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보증금 한도만이 아니다. 정책대출의 소득 합산 조건은 아예 결혼하면 더 불리하다. 때문에 대출을 위해 ‘서류상 미혼’으로 남는 이들도 있다.

특히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청년 전용 합산 소득 5000만원, 신혼부부 전용 6000만원 이하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신혼부부 전용의 경우 수도권에선 보증금 한도 4억원에 최대 3억원까지 최대 2.1% 저금리로 대출이 나오지만, 맞벌이 부부일 경우 합산 소득이 6000만원을 안 넘기는 쉽지 않아 해당 혜택을 포기하는 사례가 족족 나오고 있다.

[연합]

주택을 매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금자리론의 경우 신혼부부에게 0.2%포인트(p)의 우대금리가 주어지지만, 미혼과 신혼부부의 소득 요건이 1000만원(미혼 6000만원·신혼70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해당 대출을 받기 위해선 미혼으로 남는 게 유리하다.

이에 정책대출 합산소득 조건이 현재 직장인의 임금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잇따라 나온다. 지난 3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은 370만3000원으로 1년 전(359만2000원) 대비 3.1% 올랐다. 이를 연 소득으로 단순계산하면 4440만원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합산 소득이 8000만원을 훌쩍 넘기 십상인 것이다.

여기에 내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되면서 직장인의 임금은 더 오를 예정이다. 반면 직장인들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줄면서, ‘임금이 올라 혜택은 못받고 실질 임금은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연합]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택도시기금뿐 아니라 각종 금융공사 등에서 하는 정책상품은 정책적으로 저소득층이 우선 대상자가 돼야할 것”이라며 “결혼을 하는 가구 중에는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도 상당히 많다. 맞벌이의 경우 혼자 살다 둘이 살면 소득이 늘어나니 은행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도 신혼부부를 위한 소득 요건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디딤돌, 버팀목 대출 등 주택 구매, 전세자금에 23조원을 추가로 공급하기로 했다. 일부 소득 요건도 상향조정한다. 신혼부부가 주택을 구매할 때 저금리로 받을 수 있는 특례대출은 부부합산소득 연 7000만원 미만이어야 가능했지만, 7월 말부터 8500만원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전세자금대출 역시 합산소득 6000만원에서 7500만원까지 기준이 대폭 완화된다.

hss@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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