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유업에서 생산 중인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는 생산량이 워낙 소량이라 캔 포장 단계에서 일일이 라벨을 붙일 수밖에 없다. [매일유업 제공] |
[헤럴드경제(단양)=이정아 기자] “먹으면 안 돼.”
정선희(38) 씨가 열두 살 난 딸에게 밥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의 딸은 고기, 생선, 빵, 쌀밥을 비롯한 ‘일반식’을 먹을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모유도 입에 대지 못했다. 음식물에 있는 단백질 속 특정 아미노산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씨의 딸은 선천성 대사 이상 중 하나인 페닐케톤뇨증(PKU), 그 명칭마저도 생소한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을 먹게 되면, 섭취한 만큼 정신지체나 성장 장애로 이어진다. 심각하면 생명도 위험하다. 그래서 남과 똑같이 먹을 수 없다. 평생 엄격하게 식이조절을 하며 살아야 한다. 국내에서 단 400여 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거 먹어도 돼요?”하는 듯한 딸의 간절한 눈빛에도, 정씨는 연신 고개를 젓는 게 습관이 됐다. 정씨는 “‘얘는 병 걸려서 이거 못 먹는대’, 유치원 밥상 앞에서 딸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이 딸 아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됐다”며 “또래 친구 사이에서 위축되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1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PKU 가족성장캠프’에서 200여명의 페닐케톤뇨증(PKU) 환아와 그 가족을 위한 특별한 식단이 조리됐다. 이정아 기자 |
그런 정씨와 딸이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PKU 가족성장캠프’ 행사다. 14일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 전국 곳곳에 거주하는 PKU 환우와 그 가족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저단백 햇반을 비롯해 나물비빔밥, 미역국, 단호박감자로스티 등 PKU 환우들을 위한 특별한 한끼 식사가 준비됐다. 1박 2일간 진행되는 행사 내내 조식, 중식, 석식 등 총 4끼가 환우들을 위한 맞춤형 저단백 식단으로 조리됐다.
“집밖에서,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행사에서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밥상’ 입니다.” 단백질이 0㎎인지, 매번 식품업체에 연락해 성분을 재차 확인하는 정씨도 이날만큼은 마음 편히 숟가락을 떴다. 이날 만난 한 환아의 어머니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행사를 통해 함께 의지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특별하다”고 털어놨다. PKU 환아를 위한 식이요법부터 치료제 개발 진행상황, 부모를 위한 심리치료 교육 등이 이어 마련됐다.
매일유업이 매년 생산하는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을 위한 특수분유 12종 [매일유업 제공] |
그런데 올해 21회째를 맞는 이 행사를 1회 때부터 뒤에서 조용히 후원한 회사가 매일유업이다. 보건복지부·인구보건복지협회(인보협)가 주최하는 이 행사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매일유업은 한 해도 거스르지 않고 나눔을 실천했다. 행사에서 만난 10대의 환아들은 “10년 넘게 얼굴을 봤다”며, 매일유업 관계자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는 고(故) 김복용 창업주의 철학이 이 모든 선행의 시작이었다. 김 창업주는 매일유업 회장이던 1999년 한 대학병원에서 희귀병을 앓는 아이를 만난 뒤 이 가족을 위한 특수분유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매일유업은 24년째 선천성 대사 이상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12가지 특수분유를 만들고 있다. 특수분유 생산을 위해 1년에 두 차례 전 공정을 중단시키고, 24시간 동안 내부 세정 작업도 벌인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캔 포장 단계에서 일일이 라벨을 붙인다. 매일유업은 연령에 맞는 특수분유 연구·개발(R&D)도 이어갔다. 2017년 4세 이상의 환아를 위한 제품 2종을 추가로 출시했을 정도다.
특수분유를 만들지 않는다면 매일유업은 해마다 일반 분유를 4만캔 더 생산할 수 있다. 정씨는 “환아는 평생 특수분유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특수분유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가 없다”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내밀어 준 매일유업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1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PKU 가족성장캠프’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매일유업 제공] |
실제로 환아들에게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는 단순한 ‘밥’이 아니다. 목숨이 걸린 평생에 걸친 약이다. 이정호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아에게 특수분유는 정말 중요한 치료제”라며 “매일유업이 이윤 때문에 (특수분유를)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 19세 미만의 환자는 인보협을 통해 무료로 특수분유를 지원받고 있다. 협회는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를 수입 제품보다 5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고 있다. 매일유업은 2013년부터는 매년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가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하트밀(Heart Meal)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정씨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답했다. “‘힘들었을텐데 잘 견뎌내고 크고 있구나, 대견하다’고 해주신다면, 저희에겐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사회공헌을 하는 매일유업 같은 기업이 더 많이 발전하고 성공하기를 응원합니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