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서 레벨4 로보택시 상용화 계획
글로벌 수요 대응…공급망 구축 전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자동차 반도체 공급망 확충에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외 반도체 회사의 글로벌 생산기지를 찾아 산업 현황을 챙기는 것은 물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킹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아일랜드 킬데어주 레익슬립에 있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의 아일랜드 캠퍼스를 방문해 글로벌 사업 현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반도체 생산 공정을 살폈다.
1989년 가동에 들어간 인텔의 아일랜드 캠퍼스는 현재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 ‘팹34’를 구축하고 있으며, EUV(극자외선)를 이용하는 최신 제조 설비를 갖춰 고성능 반도체 양산을 앞두고 있다.
정 회장은 앤 마리 홈즈 인텔 반도체 제조그룹 공동 총괄 부사장의 안내로 ‘팹24’의 ‘14나노 핀펫(14FF)’ 공정을 살피고, 인텔의 팹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ROC(원격 운영 센터)’에서 인텔의 반도체 생산과 공급망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흥수(왼쪽부터) 현대차 부사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앤 마리 홈즈 인텔 반도체 제조그룹 공동 총괄 부사장, 닐 필립 인텔 팹24 운영 총괄 부사장 7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레익슬립에 위치한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 팹24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
▶한 발 앞선 수급책 힘입어 실적 반등=정 회장의 현장 경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간 기술 경쟁에 따른 것이다. 특히 고성능 전기차와 더불어 자율주행 고도화로 급증하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선제 대응해 차량 생산·공급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 등에 발목이 잡혔지만, 같은 해 4분기를 기점으로 다시 3조원대 영업이익을 회복했다. 올해 1분기에는 역대 최대치인 3조5927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에 올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2분기 영업이익은 3조6089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이 유력하다.
경쟁사 대비 한발 앞선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책과 이에 따른 고부가가치 차량과 전기차 판매량 증가가 실적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 차량용 반도체 부족 여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매월 전년 대비 뚜렷한 판매량 상승세를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4월 전년 동기 대비 8.5%늘어난 33만6212대, 5월과 6월에는 34만9194대, 37만5113대씩 팔아 같은 기간 각각 7.8%, 9.5%의 증가율을 보였다. 기아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난 157만5920대를 판매, 창사 이래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기아 플래그십 전기 SUV ‘EV9’. [기아 제공] |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미래차 기술 ‘열쇠’=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정 회장이 그룹의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제시한 자율주행과 미래 모빌리티, 로보틱스 분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 회장이 공정을 살핀 팹24의 경우 현대차의 표준형 5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기아 대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EV9’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에 탑재되는 ‘CPU(중앙 처리 장치)’를 생산한다. 레벨4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자동차 한 대당 내연 기관 차량의 10배 수준인 2000개의 반도체 칩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올해 초 남양연구소에서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열린 신년회에서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도전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고속도로 자율주행(레벨3)이 가능한 차량을 출시하고, 북미에서는 레벨4 기술이 탑재된 로보택시 상용화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자율주행 개발 계획을 구체화했다.
현대차그룹은 연내 레벨3 수준의 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인 ‘HDP’를 탑재한 ‘EV9’을 국내에 선보이고, 모셔널을 통해 미국에서 우버 등 차량공유기업과 손잡고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레벨4 ‘아이오닉 5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세종 스마트시티와 경기도 판교 제로시티에 이어 국회에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한 ‘자율주행 로보셔틀’ 시범서비스를 시행했다.
현대차 쏠라티 차량 기반의 ‘자율주행 로보셔틀’ 차량. [현대차그룹 제공] |
반도체 핵심 기술 내재화 움직임도 분주하다. 2020년에는 연구개발(R&D)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 부문을 합치고, 지난달에는 차량용 반도체 스타트업인 보스반도체에 20억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을 비롯한 미래차 기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며 “이미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확충이 미치는 파급력을 경험한 현대차그룹인 만큼 정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수급을 위한 대비책과 기술 내재화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의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 방문은 최근 각국의 주도권 경쟁 속에 요동치고 있는 글로벌 주요 시장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 등을 파악하고, 향후 차량용 반도체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다각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상시로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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