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라인과 공장 모습. [그래픽=김지헌 기자]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투자의 60%를 차지하는 3대 칩 기업 중 유일하게 올해 설비투자(Capex)를 줄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웨이퍼 투입을 줄여 칩 생산을 줄이는 감산 기조는 유지하지만, 장기적 관점의 시장 우위 확보를 위한 투자에는 여전히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2일 시장조사업체 세미컨덕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삼성 반도체는 올해 설비투자를 예년 수준으로 유지한다. 402억달러(약 53조1000억원) 규모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50%,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42% 가량 줄이는 것과 대조된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전체적으로 예년보다 19% 가량 설비투자를 줄일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1위인 대만의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 320억달러(약 42조3000억원)를 쓴다. 이는 지난해보다 12% 가량 감소한 수치다.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는 예년보다 27% 가량 투자 규모를 줄인다. 종합반도체기업인 미국의 인텔도 작년보다 19% 감소한 200억달러(약 26조4000억원)를 투자한다.
삼성만 설비 투자를 유지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투자 규모를 유지하는 중국의 SMIC 뿐 아니라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독일의 인피니언 등은 오히려 투자를 늘릴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각각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미만의 투자를 올해 집행할 예정이다. 삼성·TSMC·인텔의 투자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적은 규모다.
올해 삼성은 TSMC와 인텔을 포함한 ‘톱 3’ 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투자금액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지만, 그 규모가 400억달러를 넘으며 압도적이란 점이 주목된다.
올해 반도체 업계 총 투자금액은 지난해보다 14% 감소한 1560억달러(약 206조1000억원)인데, 삼성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수준이다. 세계 반도체 설비 시장 규모의 4분의 1을 삼성이 차지하는 것이다.
이같은 삼성의 투자는 세계 정보기술(IT) 불경기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라 업계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인공지능(AI) 등 신시장 개척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 기반한 시장 불확실성은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29일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의 천난샹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세계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르면 다음 달 초부터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의 강도를 높이고 AI 칩의 대중 수출을 규제할 방침이다. AI칩 수출 통제가 시행될 경우 엔비디아와 AMD 등 미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는 중국에 AI 칩을 수출할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 등 역시 세계 반도체 시장에 메모리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기존 전망과 달리 세계 반도체 산업이 2030년까지 1조달러(약 1317조원)의 매출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2월 YMTC 등 중국 기업 36곳을 수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장 위기에도 삼성은 투자를 통한 시장 경쟁력 확보에 주력한다는 평가다. 앞서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사장이 경기 침체기일수록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위기 상황에서 위축되지 않은 투자를 해야 경기 회복기에 최정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지난 14일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CEO로서 종종 리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받는다”며, 투자를 일시 중단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고 밝혔다.
경 사장은 “투자는 현재 우리가 처한 경기 침체기에 훨씬 더 중요하다”며 “투자를 통해서만 기업은 새로운 혁신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기 침체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려면 회사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며 “경제가 기업들에 불리할 때 혁신하는 기업이 (경제 상황 등) 흐름이 바뀔 때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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