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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의 일 획에서 한국적 추상을 고민하다
학고재갤러리, 이상욱 탄생 100년 기념 개인전

이상욱 개인전 ‘더 센테너리’ 전시전경 [학고재 갤러리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1910년대생인 김환기·유영국과 1930년대생 작가들의 ‘단색화’ 사이, 한국 추상회화에도 ‘낀 세대’인 1920년대생 작가들이 있다. 학고재갤러리는 올해 초 이들 작가를 재조명하는 기획전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을 열고 이들을 집중 조명한 바있다. 이때 소개했던 작가 중 한 명인 이상욱의 작업을 차분하게 만날 수 있는 후속 전시가 열린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과 1997년 일민미술관에서 작가의 회고전이 있었으나, 20년 넘게 이렇다할 전시가 없었다. 이번 전시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더 센테너리(The Centenary)’라 이름 붙었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말년까지 주요 작업을 망라했다.

한국 추상미술작가의 숙명은 ‘한국적 추상성’의 확보였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은 “모더니티의 회화적 반응이 ‘추상화’였다. 이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엘리트를 위한 그림이었다. 이상욱 화백의 추상은 이와 달리 서정적이며 서체적 추상으로 나타났다” 서양의 추상을 받아들였지만 답습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결과였다.

이상욱 개인전 ‘더 센테너리’ 전시전경 [학고재 갤러리 제공]

일필휘지를 바탕으로 한 서체적 추상은 이상욱 화백이 평생 존경하던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했다. 일견 프란츠 클라인의 액션 페인팅처럼도 보이나, 이 화백의 화면은 에너지의 분출과 갈무리 사이 균형점을 찾아간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1980년대 중반까지 약 10여년의 실험 끝에 1986년 완성한 ‘작품 86’은 최상의 완결미를 획득했다고 평가된다.

이 화백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1942년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기초 데생을 배웠으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향했다. 광복이후 소련에 의해 북한이 공산주의로 편입되자 가족들과 함께 1947년 남하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런 그에게 ‘고향’은 평생의 주제였다. 작가의 작업 중 흔히 나타나는 동그라미는 고향을 상징한다. 1973년작 ‘점’이나 1976년작 ‘망향 76’ 모두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다. 둥근 모양은 달과 비슷하다. 그냥 달이 아닌 고향의 달이다. 1947년 서울 충정로 2가 부근에 마련한 집 거실엔 둥근 달이 선명한 그림이 두 점 걸려있다. 전시엔 그 중 한 작품이 나왔다. 초록의 색면이 선명한 작업이다. 아들인 이홍기씨는 “저는 ‘그림’ 하면 추상화만 있는 줄 알았을 정도로, (아버지는) 늘 추상적 실험을 계속하셨다”고 말했다.

원과 선, 사각형이 서로 긴장과 대비를 이루는 작업은 서정적 추상으로 분류된다. 형태의 조합보다 더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질감이다. 반복된 붓질로 완성된 기하학적 도형들은 매끈하지 않고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고민과 숙고의 흔적이다.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는 전시서문을 통해 “이승조가 ‘핵’연작으로 도시적 느낌의 차가운 옵아트적 느낌의 기하학적 추상을 모색했던 것과 달리, 이상욱은 표면의 마티에르와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방식으로 서정적 추상에 도달한다”며 “겹겹이 쌓인 물감의 묵직한 표면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만큼 두텁게 처리됐다”고 평했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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