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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만한 게 라면·과자?”…두더지식 물가잡기 실효성 의문
정부 물가안정 취지 대부분 환영
일부선 “국민체감 효과 적을 것”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연합]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 식품기업을 찍는 ‘두더지식 잡기’에 나서면서, 실효성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가 안정’이라는 정부의 취지는 환영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가격 인하 효과는 비교적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재료 유통 시장을 비롯한 물류비·인건비·임대료 등 가격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관치’ 시절 대증적 요법에 매달릴 경우 ‘풍선 효과’를 가져와 물가 안정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을 필두로 삼양식품·오뚜기·팔도가 일부 라면의 가격을 평균 5% 안팎으로 내렸다. 빵이 주력인 SPC그룹도 식빵, 크림빵, 바게트 등 30종 빵 가격을 평균 5% 인하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와 해태제과도 일부 과자값을 역시 평균 5%가량 내렸다. 제분사들이 26일 정부와 간담회를 가진 뒤, 7월부터 소맥분 공급가격을 평균 5% 낮추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사실상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기조에 거스르지 않게 짜맞췄다는 인상도 준다. 일례로 라면업체의 가격 인하 폭은 개당 50원 정도에 불과하다. 1년간 매일 라면 1봉을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한 사람당 느낄 수 있는 가격 인하 폭은 1만8250원에 그친다.

이와 함께 라면업체들은 주력 제품인 너구리(농심), 불닭볶음면(삼양식품), 진라면(오뚜기), 비빔면(팔도) 등의 상품 가격에는 손대지 않았다. 총 35종의 비스켓을 판매하는 해태제과가 가격 인하 결정을 한 제품은 아이비, 단 한 제품에 그쳤다.

개당 150원 가량 가격이 떨어진 일부 빵 가격 인하 체감도는 더욱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빵 소매시장에서 양산빵과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전문점의 비율은 3대 7 정도이기 때문이다. 국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커리 전문점이 매장별 인건비, 임대료 등 생산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상품 가격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크리스피도넛(롯데GRS)과 다점포 매장을 전개하는 노티드(GFFG)는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부 식품 생산업체만 닦달해 사실상 가격 인하를 종용하는 꼴”이라며 “통신료, 학원비 등은 뺀 채 밀가루·라면 가격만 잡겠다고 서두르는 것은 소비자가 느낄 체감물가와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반복되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값을 내려야만 했던 특정 식품기업들로선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식의 불만도 감지된다. 총리가 나서 담합 가능성까지 언급했기 때문에 정권 눈치를 봐야만 했지만, 문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불확실한 변수로 인해 원재료 비용을 부추기는 자극이 도처에 널렸다는 점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식품업계는 밀가루 가격을 제외한 원료비, 물류비,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이 높아 상품값 인하에 난색을 표했었다. 실제로 농심은 올해 1분기 원재료 매입에 2531억원을 썼다. 지난해 1분기 원재료 매입액(2284억원) 보다 10.8% 지출액이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라면 소스에 투입되는 간장만 봐도 1년 만에 최소 10% 넘게 가격이 올랐다”며 “같은 기간 수입 팜유는 20% 넘게 가격이 올랐다”고 털어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라면값 인하는 상징적 효과는 있겠지만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에 체감할 정도로 물가를 낮추진 못할 것”이라며 “기업의 근본적인 원가 절감 요인을 추가로 찾아 소비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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