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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생활 행정

오는 7월 1일이면 지방자치제를 부활해 시행한 기간이 지방자치단체장을 기준으로 28년이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는 민주주의 토양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운다는 정치적 주장의 산물로 시작됐다고 본다. 이는 지방자치를 다분히 정치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실제 지방정부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정치적이기보다는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들로서 현실적이고 행정적 측면이 강하다. 이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장과 의원들이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정당제에 따라 선출되고 있지만 정당이 바뀐다고 해서 권력을 점유하거나 행사하는 사람들의 변화 외에 일상적인 주민의 삶에 관련되는 정책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큰 틀의 정책적 기조나 사업의 방향들이 바뀌기도 하지만 실제 주민이 체감하는 단계에서 보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대다수 주민으로서는 어느 당이 집권하든 문제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생활 현장에서 체감되는 행정이라고 할 것이다.

요즈음 공직에 있을 때보다 서울시내를 많이 걷고 자전거도 많이 타게 되면서 여러 현장을 보게 된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바퀴 공기가 빠져 노상 공기주입기가 있는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런데 2대의 공기주입기가 모두 망가진 채로 있어 다시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돌아올 수밖에 없 었다. 결국 다른 곳을 갈 일이 있어 자전거를 가지고 다른 구에 설치된 자전거 공기주입기를 찾아갔다. 이런 과정에서 두 자치구 간의 구정에 대한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 외에도 보도블록의 수준이나 관리상태, 공원 수목의 정돈 상태, 동네의 쓰레기 처리 실태 등 매일 체감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현실 속에서 느끼는 경험들이 내가 사는 지역의 행정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한 가지 잘못으로 다른 부분조차 저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조그마한 잘못이 뭐 그리 큰일일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손에 박힌 조그마한 가시가 주는 고통이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아마 호들갑 수준으로 평가한다면 큰 병에 비해 훨씬 그 강도가 높을 것이다. 주위에 널리 알리게 되는 일도 더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는 식의 처방을 내놓기도 훨씬 쉽다. 공직에 있을 때 경험했던 것이 수억원의 민원보다 1000원의 민원이 숫자 면에서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집요함이나 요란함이 훨씬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불만들이 모여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행정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 속의 행정들은 시장, 군수, 구청장과 같은 고위층 사람들의 일이 아니다.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의 자세와 노력에 달린 일이다. 지방자치의 발전이 단체장이나 의원들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공직자 자신이 담당하는 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할 때 지방자치가 좀 더 빠르게 성숙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출강교수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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