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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시장 침체 우려 잠재운 아트바젤 “그래도 영원한 영광은 없다”
아트바젤 인 바젤이 열리는 스위스 바젤의 메세플라츠 [이한빛 기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라인강을 건너는 다리, 도심 곳곳엔 알록달록한 작은 깃발이 펄럭인다. 아트 바젤. 스위스의 작은 소도시 바젤은 6월의 한 주간 전 세계 미술계의 수도가 된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트페어 ‘아트바젤 인 바젤 2023’이 성료했다. 코로나19 이후 국가간 이동 규제가 완전히 풀리고 난 이후 사실상 첫 대면 페어라, 개막전부터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다 보니 일부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미술시장도 본격적인 테스트에 오른 셈이다.

미술시장 침체 우려 불구 대작 줄줄히 ‘완판’

우려와 달리 지난 13일 열린 VIP프리뷰 첫 날부터 수 백억원 규모의 작품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1996년작 ‘거미 Ⅳ’가 2250만달러에 거래된 것을 시작으로 필립 구스통의 1975년작 회화 ‘포 헤즈(Four Heads)’가 950만달러(121억원), 조지 콘도의 2009년 회화를 550만달러(70억원)에 거래됐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신작 ‘스트라이프-타워’. 개막 첫 날 250만달러에 팔렸다. [이한빛 기자]

뿐만 아니라 대형 작업과 실험적 작업을 선보이는 특별 섹션인 언리미티드에서도 세일즈 소식은 이어졌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신작인 ‘스트라이프-타워’가 250만달러(32억원)에 팔렸고,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우리의 지도자)’도 130만달러(16억원)에 유럽의 재단이 소장했다. 토마스 샤이비츠의 대형 페인팅은 호주의 미술관이, 유리 키무라의 설치작업은 그리스 컬렉터가 구매했다. 아트바젤 측이 집계하는 세일즈 리포트는 행사 마지막날인 18일까지 수백만 달러의 매출이 업데이트 됐다.

거장의 작품보다 더 특별한 ‘아트 시티’ 바젤

매일 쏟아지는 판매고 소식보다 아트바젤이 더 특별한 이유는 페어가 열리는 기간 내내 바젤시가 예술로 물들기 때문이다.

이 기간 호텔에 투숙하는 이들에겐 미술관 전시 소식과 갤러리 위치, 아트바젤 부대 행사 등이 담긴 책자가 배포된다. 바젤시에서 제작한 핸드북으로, 도시 지도 위에 예술 관련 기관들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아트바젤을 위해 바젤시를 찾는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다.

바젤 역 플랫폼에는 아트바젤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다. [이한빛 기자]

아트바젤 VIP라면 미술관 입장이 무료거나 할인을 받는다. 심지어 아트바젤과 미술관이 협업해 VIP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어도 따로 진행한다. VIP 중 신청·예약자에 한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나 디렉터가 직접 나서서 전시와 기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아티스트토크, 뮤지엄 나이트, 글로벌 브랜드의 스폰서 파티 등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행사를 다 따라가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트램과 버스는 물론 도심 곳곳의 알림판은 바젤 기간 열리는 전시 포스터로 도배된다. 미술관이나 재단들은 이 기간 최고의 전시를 준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트 바젤 인 바젤에서 2250만 달러에 거래된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1996년작 ‘거미 Ⅳ’ [이한빛 기자]

일례로 아트바젤의 창시자인 에른스트 바이엘러와 힐디 바이엘러가 세운 바이엘러 재단은 올해 콜롬비아 보고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제도의 억압, 페미니즘, 난민 등 묵직한 정치사회 이슈를 개념적이고 시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업은 아트바젤을 찾은 이들 사이 최고의 전시로 꼽히며 회자됐다.

발빠른 시장 관계자들은 바이엘러의 전시를 보며 미술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피카소, 루이스 부르주아에 대한 재평가와 여성 작가들에 대한 시장의 급격한 추종은 모두 바이엘러 전시 이후 시작했기 때문이다. 쿤스트뮤지엄 바젤(바젤 시립미술관)도 미국 추상 미술작가인 셜리 자페(Shirley Jaffe)와 독일 작가인 안드레아 뷰트너(Andrea Buttner)의 개인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트 캐피탈’ 바젤 “영원한 영광은 없다”

그렇다면 바젤이 언제까지나 세계 미술계의 수도로 남을 수 있을까.

페어장에서 만난 한 유럽 갤러리 디렉터는 변화를 이야기했다. 아트바젤 파리 플러스의 영향이다.

그는 “이번 행사에서 미국 컬렉터들의 비중이 확 줄었다. 대작들 역시 대부분 유럽 컬렉터들이 사갔다”며 “‘언제까지 바젤의 불편한 호텔, 경유 항공, 식당을 참아야 하느냐’는 푸념이 나온다. 켈렉터들에겐 가을의 파리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아트바젤 파리가 성공적으로 런칭한 후 ‘파리가 바젤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당장 ‘아트바젤 인 바젤’의 아성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1970년 시작한 페어의 역사와 네트워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헤게모니는 늘 이동한다.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 변화의 계절이 시작했다.

바젤 도심 곳곳엔 퍼블릭 프로그램인 〈파쿠르〉가 열린다 [독자 제공]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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