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배터리 업계를 넘어 완성차 업계까지 확대되며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토요타와 중국 BYD 등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 제조사들이 앞다퉈 자체 개발한 전고체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는 모양새다.

17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14일부터 3일 동안 독일 뮌헨에서 개최되는 ‘인터배터리 유럽 2023’에 참가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눈길을 끈 분야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구성 요소 가운데 리튬이온의 이동을 돕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바꾼 배터리다. 고체 전해질 자체로 분리막 역할을 해 안정적이고, 부피당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고용량 전기차 배터리로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SDI 연구소. [삼성SDI 제공]

올해 1분기 연구개발(R&D)에만 3000억원 넘게 투자한 삼성SDI는 독자 조성의 고체 전해질 소재와 수명을 개선한 혁신 소재 기술인 ‘무음극 기술(Anode-less)’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삼성SDI는 수원 연구소 내 약 6500㎡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S라인’을 상반기 내 준공하고 시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S라인은 차세대 전고체 전지 제조를 위한 전용 설비로 채워질 예정으로 삼성SDI는 이를 통해 기존 업계 최고 수준의 전고체 전지 연구 성과와 더불어 생산 기술까지 단번에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 2021년 9월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UCSD), 독일 MEET, 국가연구기관 헬름홀츠 연구소 뮌스터 지부와 ‘프론티어 리서치 랩(FRL)’을 설립해 고용량 차세대 양극재는 물론 전고체 배터리 건식 전극 공정 연구과제를 수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에너지플랜트.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아울러 KAIST,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국내 명문 대학교와 손잡고 차세대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KAIST에서는 전고체 배터리와 건식 전극 공정, 리튬금속·리튬황배터리 관련 기술을, 포항공과대학교와는 고속 충전 장수명 배터리 소재 개발, 고성능 전극 소재와 공정 기술 개발 등 총 11개의 산학협력 과제를 발굴·개발 중이다.

서울대학교와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리튬황배터리용 소재 개발 등 총 9개의 산학협력 과제를 발굴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SK온도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해 차세대 기술 R&D 인프라 강화를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먼저 오는 2025년까지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모두 4700억원을 투입해 연구원 시설을 확장하고, 차세대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신설할 계획이다.

지동섭(오른쪽) SK온 사장과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4월 열린 ‘대전광역시-SK온 기업투자 업무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온 제공]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착공한 파일럿 플랜트는 전고체 배터리용 소재 개발을 위해 특수 환경설비를 갖춘 실험 공간과 대규모 양산 기술 확보를 위한 전고체 파일럿 생산 라인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SK온은 이를 발판으로 오는 2024년 하반기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개발하고, 2028년에는 상용화에 돌입하겠다는 목표다.

또 SK온은 미국 전고체 배터리 선도 기업인 솔리드파워 등 해외 선진기업 투자나 유수 대학 연구진과의 협업을 통해 차세대배터리 기술력을 강화해 왔다. 지난해 1월 미국 조지아 공대 이승우 교수 연구진, 2019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텍사스대 존 굿이너프 교수와의 전고체 분야 공동 연구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SK온 관계자는 “SK온은 차세대배터리 전문 연구시설 확대를 통해, 현재의 기술적 우위를 미래에도 지속해서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솔리드파워가 개발한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 [솔리드파워 제공]

국내 배터리 3사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점유율 경쟁이 한창인 중국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업계까지 앞다퉈 전고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고 있어 '초격차 기술' 확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은 2025년까지 1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2030년 이후 2세대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 토요타자동차는 10분 이내 충전으로 약 1200㎞를 주행할 수 있는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오는 2027년부터 자사 전기차에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 역시 오는 2028년 출시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이미 미국 테슬라, 배터리 회사로 출발한 중국 BYD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모두 자체 생산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와 독일 BMW도 차세대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토요타자동차 최고기술책임자인 나카지마 히로키 부사장. [토요타자동차 제공]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토요타가 5년 후에 ‘10분 충전·1200㎞ 주행’ 조건을 충족하는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단가나 안정성 부분을 고려할 때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라면서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미 테슬라와 BYD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기차 제조사들의 배터리 관련 기술은 순수 배터리 제조사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토요타가 개발한 고체 전해질에 기반을 둔 배터리를 연구하는 전기차 제조사들도 많다”며 “이미 '완성차 업체', '배터리 업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는 단계이며, 글로벌 기업들 간 전고체 기반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