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혼란 야기…노사갈등 조장·경쟁력 하락도
성과급·임금피크제 등 친노조 판결에 우려 커져
지난 2010년 11월 17일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지윤·양대근·김은희 기자]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 시 사측이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산업계는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판결”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법원 판단대로 노조원의 불법파업 가담 정도를 사측이 입증하고, 개개인의 손해배상 산정을 차등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계는 이번 판결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일부 조항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향후 법안 처리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5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노조의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관련 기준을 제시한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명을 상대로 2012~2013년 제기한 손배 소송과 쌍용차(현 KG모빌리티)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2010년 낸 손배 소송의 상고심 판결이다.
핵심 쟁점은 불법파업 손해배상에 대해 노조원 전원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가담 정도에 따라 ‘개별 책임’을 지는지였다. 기존 판례는 불법파업의 경우 노조와 노조원이 손해배상 전액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개별 조합원의 책임은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를 입힌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대법원은 기존 손배액 산정에도 제동을 걸었다. 현대차 소송에서 쟁의행위 종료 후 부족 생산량을 만회했다면 파업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조의 평택공장 점거농성 관련 소송에서도 파업에 따른 손배액을 감액했다.
현대차는 “대법원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되는 만큼,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내놨다.
재계 전반에서는 날 선 비판이 나왔다. 이번 판결이 사실상 노란봉투법 입법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법안에는 ‘법원은 쟁의행위 등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특히 강성노조로 분류되는 조선, 자동차 업계의 고민은 더 깊다. 조선업계 고위관계자는 “조선업계에도 이번 현대차 소송과 비슷한 사안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슈퍼사이클 효과로 대규모 채용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노사 갈등이 커지면 이런 분위기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노조원 개개인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결과적으로 노조원 상당수가 이 과정에서 면책될 것”이라며 “폭력적이고 무분별한 파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경제단체들도 이번 판결에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이번 판결은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유일한 대응 수단인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최근 대법원이 경영성과급,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변경 등 그간 산업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용해 온 원칙을 부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고 있다”며 “법적 안정을 추구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산업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노사갈등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불법파업의 경우 추후 생산 물량이 회복된다면 조업 중단 기간 발생한 고정비에 대해서는 손해 발생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며 “이럴 경우 단기간의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회사가 피해를 받았음에도 손해를 묻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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