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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목소리 써도 돼” vs “안돼”…AI, 음악 생태계 흔든다 [생성형AI리스크]
AI, 커버곡부터 음원 사재기까지
진화하는 기술에 음악시장 술렁
목소리 똑같이 학습한 음악 등장
보컬 고유의 영역까지 위협
저작권 논의는 시급한 과제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를 흉내 낸 AI가 ‘K-팝 대세’ 뉴진스의 ‘하입 보니(HYPE BOY)’를 부르자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다. 요즘 새롭게 불고 있는 AI 커버(Cover)곡 트렌드다. [유튜브 캡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K-팝 대세’ 뉴진스의 ‘하입 보이(HYPE BOY)’를 불렀다. 브루노 마스의 상징 같은 ‘쇳소리’와 어눌한 한국어를 타고 흐르는 ‘하입 보이’ 영상은 지난달 27일 게재, 공개한 지 한 달여 만에 133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부른 뉴진스의 ‘디토’, 블랙핑크가 부른 르세라핌의 ‘안티 프래자일’ 등 세계적인 가수들의 난데없는 ‘노래 바꿔부르기’ 열풍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정인의 ‘오르막길’을 불렀다. 이들 모두 실제 가수가 아니다. AI(인공지능)가 원곡 가수의 목소리를 학습해 똑같이 따라 한 커버 곡이다. 요즘 새롭게 불고 있는 AI 커버(Cover)곡 트렌드다.

‘진화하는 AI’가 음악시장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 작사, 작곡을 넘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믿었던 인간의 목소리가 따라잡히자, 지지부진했던 논의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오리지널리티의 위협”…AI, 커버곡부터 음원 사재기까지

최근 미국 팝 시장에선 해프닝이 하나 일었다. 래퍼 드레이크와 위켄드가 협업을 시도한 ‘하트 온 마이 슬리브(Heart on My Sleeve)’라는 곡이 주요 음악 플랫폼에 ‘기습’ 공개된 것이다. 대형 스타들의 만남에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틱톡이 발칵 뒤집혔다. 음악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급증했다. 틱톡에서 1500만건, 스포티파이에서 60만건, 유튜브에서 27만5000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후 이 음악이 AI로 만든 ‘가짜 음원’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각종 플랫폼에선 금세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 그룹이 자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곡에 대해 AI 커버곡 게재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AI 커버곡과 창작곡의 음악시장 진입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스포티파이의 다니엘 에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AI가 스트리밍 음악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AI를 활용한 모든 멋지고 무서운 일들에서 빠르게 혁신과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며 “전에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음악 소비자들에게도 흥미롭고 신선한 경험이다.

캐나다 팝스타 위켄드. [AP]

하지만 생산자의 입장은 각양각색이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음악 산업에선 스트리밍 서비스 등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들어올 때마다 시장이 요동쳤다”며 “독자적인 부분이라 판단했던 보컬의 목소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 오리지널리티의 위협을 감지하자 침범당한 영역에선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음반 제작자의 입장에선 여러 비용의 절감으로 AI와의 협업에 열려 있는 경우도 많다.

AI 창작물의 시장 위협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스포티파이에선 음악 콘텐츠 제작 서비스인 ‘부미(Boomy)’의 생성형 AI가 만든 노래 수만곡을 퇴출했다. 이 회사가 온라인 봇(자동 프로그램)으로 청취자 수를 조작해 스트리밍 수를 부풀렸다는 ‘음원 사재기’ 의혹이 불거져서다. 스트리밍 횟수는 곧 인기의 척도다. 게다가 스포티파이에서의 스트리밍 횟수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순위 집계에 반영되는 주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AI 음악의 ‘불법 스트리밍’은 차트 교란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AI 학습도 저작권 위반?…진화하는 기술, 느림보 제도

AI 음악 창작물의 위협이 거세지자, 업계에선 현안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저작권 보호다. AI와 관련한 저작권 논의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AI의 학습 데이터로 허가 없는 사용 여부와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다.

AI 커버곡에 대해선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원곡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때문에 AI가 학습 데이터를 가져가고자 한다면, 사전에 허가를 받거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I가 목소리 학습 과정에서 복제를 시도할 경우,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복제권 침해에 해당한다.

마이클 내쉬 유니버셜 뮤직 최고 디지털 책임자는 “창작물들이 AI 훈련에 사용될 때 창작자들이 존중받고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전 세계의 창작자들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볼 것”이라며 “우리 아티스트의 음악을 이용한 생성형 AI의 학습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도 “AI 커버곡 영상 제작시 저작인접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음악계에선 AI 학습 데이터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AI 작곡가 에이미문을 데뷔시킨 인공지능 음반 레이블 엔터아츠의 박찬재 대표는 “학습 데이터의 저작 권리를 분류하는 것은 너무 방대해 규제할 수도 없고, 학습 데이터에 저작권을 부여하는 것 역시 90%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AI가 저작권 침해 없이 데이터를 학습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진전이 없다.

에이미문 [엔터아츠 제공]

AI 커버곡이 속속 등장하며 흥미로운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전 연인이기도 한, 캐나다 출신 가수 그라임스는 자신의 음성을 오픈소스(무상 공개 소프트웨어)로 내놓으며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을 테니 내 목소리를 마음껏 쓰라”고 말했다. 조건은 수익 분배다. AI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가 포함된 노래를 성공적으로 만들 경우 곡 수익의 50%를 로열티로 지불하는 조건이다.

최광호 사무총장은 “보컬의 영역이 나만이 가진 고유의 영역이라는 기존 사고를 깨고 발상의 전환을 한 사례”라며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공공재로 변하는 시장이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그런 시장이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내놓은 ‘결과물’도 법의 테두리에선 벗어나 있다. AI 작곡가 이봄은 지난해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사랑은 24시간’의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이후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이봄을 저작권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 저작권법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AI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업계의 고심이 많다. AI를 ‘창작의 주체’로 볼 것인지, 도구로 볼 것인지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구로 볼 경우 AI 창작물은 ‘기계적 복제’로 판단,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된다.

박찬재 엔터아츠 대표는 “AI 창작자(개발자)에게 단순히 저작권을 줄 수는 없다”고 봤다. 특히 박 대표는 “AI가 만든 음악도 작곡이라는 행위로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클릭 한 번으로 나오는 모든 음악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며 “다만 단순한 복제인지, 창작의 주체로 독자적인 정신적 착상인지를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미국 저작권국이 시행하는 기준과 같은 방향성이다.

AI 저작권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기존의 저작권 분류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작사, 작곡, 편곡 등의 기존 분류가 아닌 보다 섬세하고 세분화한 분류 기준이 나올 필요가 있다. AI 창작물을 만드는 업계에서도 새로운 저작권 형태를 제안한다. 엔터아츠에선 AI 작곡가를 통해 K-팝 데모 트랙을 만드는 과정에서 곡의 성향, 분위기 등에 대한 아이디어, 악기 구성에 대한 제안 등 의견을 준 모든 사람(AI 툴 사용자)이 저작권을 나눠 가지는 방식도 구상하고 있다.

이 같은 빠른 기술 진화에도 제도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광호 사무총장은 “법안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그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과 정책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가 될 것이다”며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바라보며 인간과 AI의 상생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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