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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구 뗐다 붙였다” 저출산이 정치지형 바꿨다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전남 여수·경북 예천 가보니
인구 더 줄어든 여수갑 또 고비
전남 1위 순천으로 유출 이어져
예천은 4년마다 바뀐 선거구 불만
통합, 합구 다양한 조정 시나리오
여수시를 지역구로 한 주철현(여수 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회재(여수 을) 의원의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세진 기자
경상북도 예천 호명면 검무로(路)에 예천군이 설치한 횡단보도 그늘막이 펼쳐져 있다.길 건너 아파트는 행정구역상 안동시 풍천면에 속해 있다. 김진 기자

인구소멸 위기의 지역 정가(政街)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가 대폭 줄어든 몇몇 지역 선거구가 인근 선거구와 ‘합구’될 위기에 직면했거나 기존 선거구를 떠나 다른 선거구에서 새로 둥지를 틀어야 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관련기사 4면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라는 현상 한쪽에서는 지방 권역 내에서의 인구 이동도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낙후된 구도심에서 인근 선거구 신도시로의 인구 유출도 매우 민감한 주제다. 지역에서는 선거구 사수를 위한 ‘인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8~9일 전라남도 여수시와 경상북도 예천군을 찾아 지역 정가와 주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구가 감소한 여수는 갑·을 선거구 간 합구 가능성이 거론돼 현역 국회의원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지역 소도시인 예천은 지난 19·20·21대 총선에서 번번이 다른 선거구와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하면서 휘청여 왔던 곳이다.

▶“선거 때마다 고비”...현역 의원 전면전은 눈살=여수 갑 선거구는 4년 전보다 인구가 더 줄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3려통합’ 전 구(舊)여수권이자 돌산읍 등 어업지역을 포괄하는 여수 갑은 산단 근무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여수 을에 비해 인구 소멸 속도가 빠르다. 화학산업단지와 어업·관광업 등 경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때 전남 인구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던 여수지만 수년 전 인근 도시인 순천에 1위를 빼앗겼다.

특히 갑 지역 인구는 지난 20대 총선 전보다 1만3000여명이 줄어 선거구 획정 기준이 되는 올해 1월 말 기준 12만574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중앙선관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시한 인구 범위 하한 기준(13만5521명)에 미달한 규모다. 반면 여수 을은 신규 주택단지가 들어선 웅천지역 인구 유입 등으로 14만8746명을 기록했다. 이에 지역에서는 여수 갑·을 내 인구 조정을 통한 선거구 유지, 인근 순천 지역구와 통합·조정, 또는 여수 갑·을 합구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많은 주민은 여수 인구순감의 원인을 순천으로의 인구 유출에서 찾았다. 여수 둔덕동에서 만난 40대 강모 씨는 “엑스포 이후 집값이나 생활물가가 많이 높아진 여수보다 훨씬 정주여건이 좋은 순천으로 이사 간 이웃이 많다”면서 “특히 산단 다니는 젊은이들이 교육여건도 낫고 직장까지 차로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순천 신대지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근처 한 부동산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송모(52) 씨는 “10년여간 이 지역에서 거래하면서 내본 통계로는 40% 이상이 여수에서 순천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최종 획정 인구수 기준 합의에 따라 갑·을 지역이 합구될 가능성도 상존하다 보니 현재 지역 정가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주철현(갑), 김회재(을) 의원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만 국회의원 자리가 1석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에 날 선 신경전으로 번진 상황이다.

두 의원은 지역 현안에서도 건건이 부딪치고 있다. 주 의원은 지난 2005년 전남대와 여수대 통합 시 MOU를 근거로 대학병원급 의료기관 설립을 주장하는 한편, 김 의원은 순천에 전남권 의과대학을 신설하고 여수에 대학병원 설립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주민 피로도는 당연히 높다. 이동 중에 만난 한 50대 택시기사 조인종 씨는 “결국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로 두 의원이 부딪치는 것이라면 인구를 유치하는 데 힘을 합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택시기사 김모(71) 씨는 “이렇게 싸울 거면 차라리 한 명인 게 낫겠다는 말도 나온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남겼다.

▶4년마다 바뀐 선거구에 “인구 적다고 무시하나”=인구 5만6000여명인 경북 예천군은 또다시 선거구가 변경될 처지에 놓였다. 오는 6월 1일부로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군위를 대신해 의성·청송·영덕과 한 선거구로 묶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의성·청송·영덕은 인구 10만9000명 규모로, 선거구 하한 인구수(13만5521명)를 밑돌아 다른 지역과 합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천 외에 울진도 합구 후보지역으로 거론된다. 영주·영양·울진·봉화 선거구에서 울진을 분리해 의성·청송·영덕과 묶는 방안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말 주호영 의원이 “의성·청송·영덕만으로는 선거구가 유지가 안 되니 예천을 받아오면 된다. 안동은 독립 선거구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천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15~19대 문경·예천군으로 총선을 치른 이후 20대 영주·문경·예천, 21대 안동·예천으로 3번 연속 선거구가 바뀐 탓이다. 예천 토박이 신모(67) 씨는 “인구가 적다고 군민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이자 정치놀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예천은 의성·청송·영덕과 생활권이 다르고, 청송·영덕과 지리적으로 접점이 전무하다. 반면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이 맞닿은 경계에 들어선 경북도청 신도시에서는 두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했다. 2015년 최초 분양을 시작한 이래 인구가 유입되면서 현재 유동인구를 포함해 3만명 규모 도시가 됐다. 길 하나를 놓고 행정구역이 안동과 예천으로 나뉘지만 신도시에서 만난 30대 주민 진모 씨는 “여기 사람들은 안동이랑 예천이라고 나눠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도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임모(51) 씨는 “선거구가 갈라지면 신도시 안에 국회의원 2명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만 챙기려고 하면 신도시 안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무조건 하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도시는 경북도와 안동시가 추진하는 행정통합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예천 원도심을 중심으로 흡수통합을 우려하는 반발이 나오지만, 인구 위기 시대를 맞아 장기적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4년마다 선거구가 조정되면서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반면 지역 성장을 위해 안동·예천이 분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수·예천=이세진·김진 기자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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