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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미국의 채무위기와 재정준칙

미국 정부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 부채가 의회가 정한 부채 한도를 벌써 넘어섰고, 편법적으로 마련해 온 자금도 이르면 다음달 초 동이 난다고 한다. 부채 한도 조정을 위한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협상은 순탄치 않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협상에 집중하기 위해 호주 및 파푸아뉴기니 방문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대중국 견제를 위해 야심 차게 기획한 쿼드 정상회의와 미·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포기할 정도로 디폴트 우려가 심각해진 것이다.

미국의 재정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일까. 1980년대 이래 재정적자가 꾸준히 누적돼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20%를 훌쩍 넘었다. 레이건과 부시의 감세정책,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한 오바마와 트럼프의 재정지출 확대 등이 중요한 계기였다.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확대는 필요했지만 평상시에도 과도한 재정적자가 누적됐다. 보수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하고 진보는 이를 경시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민주당의 클린턴 정부만이 예외였고 그 밖에 모든 행정부 아래서 지속됐다.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제 비교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북구 복지국가들이 가장 재정이 건전하다. 진보가 보수에 비해 재정의 역할을 더 확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건전성은 지출통제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수확충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재정건전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비록 국가채무비율이 50% 수준으로 아직은 양호하지만 최근 너무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면서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게 확대된 측면도 있지만 포퓰리즘으로 인한 재정 낭비가 갈수록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위기를 맞아 사회적 연대를 위한 부담은 외면하고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뿌리기에 급급했던 모습, 낭비성 국책사업을 걸러내기 위해 도입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가 무력화돼 선거만 치르면 공항이 하나씩 생겨나는 모습이다. 게다가 정치양극화는 미국 이상으로 심화되고 있다.

나아가 세계 최고의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가 향후 재정에 가할 압박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결코 방심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준칙의 효과성을 과신하면 안 된다. 지금 위기를 맞은 미국도 1917년 도입한 채무 상한은 물론 1985년의 ‘그램-루드만-홀링스법’, ‘1990년 예산집행법’, ‘2011년 예산통제법’ 등 여러 번 재정준칙을 법제화했지만 별무 소용이었다. IMF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한 105개국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도 준칙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재정준칙 무용론이 아니다. 여러 나라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도출된 교훈을 바탕으로 정부 안을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경직된 준칙은 무시되기 십상이며 지나치게 유연한 준칙은 규율 효과가 없다. 충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허락하되 재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한 독립적 재정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평상시 미래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완벽한 재정준칙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진지한 논의를 주문하는 이유는 책임성과 생산성을 담보하는 건전한 정치문화의 단초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장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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