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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형 국적사 탄생 ‘美 불허’에 막히나…과거 사례 살펴보니 [김상훈의 딜스나이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수출 화물을 싣는 화물비행기 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상훈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심사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양대 항공사 합병 승인의 키는 결국 미국이 쥐게 될 전망이다. 최근 미 법무부가 양대 항공사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딜 무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실제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미국 정부가 외국 항공사간 합병을 막기 위해 제기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투자은행(IB) 및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 현지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8일(현지시각) 미 법무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과 관련해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글로벌 항공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승인 문턱도 가장 까다로운 편으로 알려졌다. 미 법무부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발표한 2020년 11월부터 조사를 시작, 독과점 우려 등을 살펴왔다. 이런 기류는 미 법무부가 지난해 3월 양사 합병 심의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상향하면서 보다 두드러졌고, 당초 지난해 11월 예정이었던 최종 심사 발표도 연장됐다.

美 법무부 칼 빼드나…소송 시 외항사 대상은 최초

이런 상황에 현지에서 미 법무부가 합병 저지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시장의 우려를 더욱 높이는 요소다. 특히 실제로 법무부가 양사 합병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는 미국 정부가 외국 항공사간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첫 사례로 기록된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모두 자국 항공사 간 합병에 대한 건이었다. 올해 3월 미 법무부가 저비용항공사(LCC) 제트블루의 저가항공사 스피릿 항공 인수합병을 막기 위해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에는 제트블루와 아메리칸항공의 미국 국내선 제휴에 제동을 거는 소송을 제기했었다.

2013년에는 아메리칸항공(AMR)과 US에어웨이 통합에서 미국 법무부가 거대 항공사의 등장으로 소비자 피해가 예상 된다면서 법적 절차에 나섰다. 이에 결국 두 항공사는 경쟁 제한 우려 및 소비자 피해 불식 방안을 제시했고, 양사가 보유한 주요 공항의 슬롯과 게이트, 공항 인프라 등 일부를 내놓으며 합병을 승인받았다.

물론 미 법무부가 한국에 본사를 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법적 관할권을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과 같이 자국 내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명분으로 실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관련 업계에선 현지에서 법무부의 소송 가능성이 제기된 것 자체가 그간 미국이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방증 아니겠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만만치 않은 EU, 에어캐나다 합병 불허 전례

현재 대한항공은 ▷한·미 노선에서 한국인 승객이 다수라는 점 ▷한국 공정위에서 강력한 시정조치를 이미 부과한 점 ▷한국 정부의 항공 산업 구조조정 및 고용 유지 방침에 대한항공이 호응해 이번 합병이 진행된 점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노선에 신규 항공사의 진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기업결합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여객 슬롯보다도 화물 슬롯에서의 독과점 해소 방안을 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여객·화물 운송 실적은 각각 세계 19위, 29위다. 양사가 합병하면 세계 7위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폴리티코’ 역시 미 법무부가 반도체 등과 같은 핵심 상품의 화물 운송에 대한 통제권이 한 회사에 몰리면 관련 공급망 탄력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최근 유럽연합(EU) 역시 양사 합병 시 한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간 4개 노선에서 경쟁 제한 우려를 표한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은 그간 EU, 일본 등 남은 심사 국가의 추이와 상황을 지켜보며 조사를 이어가겠단 입장이었다.

EU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항공사 합병과 관련해선 그동안 까다로운 잣대를 내세워 왔다. 대표적으로 2021년 캐나다의 1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가 3위 에어트랜젯과 합병을 시도했지만, EU가 유럽행 중복노선 30여개를 타 항공사에 재분배할 것을 요구해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2011년에는 그리스의 양대 항공사인 올림픽 항공과 에게안 항공의 통합에 대해 최종 불허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11월 1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추진 사실을 밝히고 있다. [사진=산업은행]

세상에 ‘공짜’ 없다지만…가진 거 어디까지 내놔야 하나

미국과 EU 등 남은 심사 국가들의 경쟁 제한성 우려가 커질수록 연내 아시아나항공 인수 마침표를 찍으려던 대한항공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 일각에서 합병을 위해 너무 많은 슬롯을 내준 것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도 커진 상황이라 더 과감한 시정조치를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영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현지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과 코드쉐어(공동운항)을 하고 런던 히스로공항 슬롯 7개를 넘긴 바 있다.

IB업계 안팎에선 양사 통합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혔던 2020년도와 현재 상황이 많이 달라 플랜B를 짜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공업이 본격적인 리오프닝을 맞으면서 공급이 오히려 부족해지고 있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일 원매자도 꽤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3년 전에는 코로나 시국에 항공사 공급이 과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양사의 통합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차라리 산업은행이 더 관리하다가 다른 그룹 계열사 합병을 모색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일단 미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소송을 제기할지는 미지수라며 남은 심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측은 “소송 여부는 전혀 확정된 바 없고, 현지 매체가 소송 가능성을 제기한 것일 뿐”이라며 “지난 12일 법무부와 대면 미팅을 통해 아직 법무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당사와 지속 논의하겠단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awar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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