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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왕부터 뉴진스까지…K-팝 콘서트의 꽃 ‘응원봉’의 진화
‘콘서트의 꽃’ 중앙 제어 응원봉
브로마이드→풍선→막대→응원봉
2008년 YG에서 세븐ㆍ빅뱅이 시초
디자인은 가수의 정체성과 팬덤 반영
최신 트렌드는 직접 꾸미는 ‘봉꾸’
기술의 진화가 공연 연출의 진화로
가왕 조용필의 콘서트 사상 처음으로 중앙 제어 방식의 응원봉이 등장했다. 지난 13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공연에서다. 3만 5000명의 관객이 손에 쥔 응원봉은 시시각각 점멸하며 다채롭고 통일감 있는 현장을 만들었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13일 3만 5000명이 운집한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가왕 조용필의 55주년 콘서트에서 ‘고추잠자리’가 날아오르자, 새하얀 응원봉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거대한 야외 공연장이 붉은 물결로 타오른 장관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노래가 바뀌자 응원봉은 ‘팔색조 배우’처럼 얼굴색을 바꿨다. 형형색색으로 시시각각 점멸하고, 철저한 중앙 통제로 또 하나의 ‘연출 포인트’를 만들었다. 주경기장 잔디석으로 가왕 이름의 약자인 YPC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2~3층 객석에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장면을 연출했다. 가왕 공연만의 특별 이벤트였다.

“이거 없으면 왕따 돼요!”

가왕 조용필이 ‘잠실벌’에 뜰 때마다 공연장 곳곳에선 별, 달 모양의 총천연색 응원봉을 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왕따 된다”는 한 마디에, 전국에서 몰려온 관객들의 지갑이 열렸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스케일의 ‘가왕 콘서트’는 휘황찬란한 색깔의 응원봉으로 뒤섞이곤 했다. 이번엔 달랐다. 가왕도 응원봉을 만들었다.

‘응원봉’은 K-팝 공연의 ‘화룡점정’이다. 콘서트의 ‘연출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가수와 팬을 연결하는 도구다.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최근의 응원봉은 단순히 응원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들이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응원봉’은 K-팝 공연의 ‘화룡정점’이다. 콘서트의 ‘연출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가수와 팬을 연결하는 도구다. 사진은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풍선·형광 막대 지나 응원봉의 등장…왜?

응원도구의 역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 한다. 소녀팬들은 한 때 브로마이드를 들어올리며 가수들을 응원했고, 1세대 K-팝 그룹 H.O.T.와 젝스키스가 등장한 1990년대 후반부터 색색의 풍선이 ‘강력한 응원도구’로 자리했다. 이후 일회용 형광막대(단색의 아크릴봉)를 거쳐 응원봉으로 이어지게 됐다.

K-팝 ‘최초의 응원봉’은 2008년 즈음으로 본다. Y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세븐과 빅뱅의 응원봉을 제작한 것이 가요계 전체로 확산됐다. YG 소속 가수들의 응원봉을 제작하는 YG플러스 프로덕션 그룹 안동일 리더는 “팬과 아티스트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도구로서, 가수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해 팬들의 소속감을 높일 수 있도록 응원도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응원도구의 ‘등장과 진화’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필요나 요구’가 아니다. 조용필이 데뷔 55년 만에 처음으로 응원봉을 만들기까진 팬들의 바람이 있었다.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탄생의 윤석수 회장은 “이전 공연까지는 팬클럽에서 일회용 형광 막대를 제작해 공연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며 “그러다가 K-팝 그룹처럼 우리도 공연에서 통일된 그림을 보고 싶어 기획사에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가왕이 응답한 것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응원봉 [빅히트뮤직 제공]
응원봉 디자인…가수의 정체성과 팬덤 반영

응원봉이라고 다 같은 응원봉이 아니다. K-팝 응원봉의 생명은 ‘디자인’이다. 공연장과 음악방송마다 들고 다녀야 하는 만큼 ‘잘 나온 디자인’은 팬덤의 자부심이 된다.

디자인은 가수의 정체성과 팬덤에서 출발한다. 그룹의 이미지와 세계관, 상징 색은 물론 팬덤의 이름과 의미까지 반영된다.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등 K-팝 대표 주자들이 소속된 하이브에선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와 로고, 색상 등에 담긴 디자인 에셋을 기반으로 아티스트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도록 디자인 전략을 수립한다”고 말했다. 뉴진스의 응원봉이 그룹의 상징인 토끼를 단순화해 디자인한 것과 같다.

대부분의 K-팝 그룹이 마찬가지다. 응원봉에 그룹의 정체성이 가장 분명하게 투영된 그룹은 단연 블랙핑크다. 블랙핑크의 응원봉은 그룹의 상징색인 블랙과 핑크를 조합, 모르는 사람이 봐도 ‘블랙핑크 응원봉’일 것이 분명한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블랙핑크의 응원봉은 그룹의 상징색인 블랙과 핑크를 조합, 모르는 사람이 봐도 ‘블랙핑크 응원봉’일 것이 분명한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안동일 YG플러스 프로덕션 그룹 리더 관계자는 “블랙핑크 응원봉은 여러 디자인으로 진행됐다”며 “너클, 건타입, 망치 등 강한 이미지를 담은 디자인과 외유내강의 느낌을 살려 겉보기엔 부드럽지만 속은 꿋꿋하고 단단한 느낌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실리콘 소재와 핑크빛의 부드러운 ‘키 컬러’가 블랙핑크를 상징한다. 블랙핑크 응원봉이 배트 형태인 것은 “나오는 음악마다 히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했다. YG 소속의 트레저는 “보물을 담는 보석함의 오브제를 연상하는 응원봉”으로 제작했다.

‘K팝 종가’ SM엔터테인먼트가 응원봉을 처음 만든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그룹 엑소의 응원봉이 공식적으로 출시됐다. SM 관계자는 “기존에는 아티스트별 공식 색상을 녹인 응원도구만 있었는데, 로고를 활용한 공식 응원봉을 통해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하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M 소속 가수 응원봉의 기본 방향성도 ‘공식 색상’이다. 여기에서 앨범 콘셉트와 로고 등을 더한다. 에스파 응원봉의 경우 싱글 ‘포에버(Forever)’의 디지털 커버 이미지를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에스파가 가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미래지향적’ 이미지가 메탈, 빛의 반사, 그라데이션, 투명한 소재 등으로 구현됐다. SM 관계자는 “특정 컬러를 활용, 응원봉에서 나아가 팬들의 콘서트 패션, 콘서트 연출에도 영향을 주고 아티스트별 아이덴티티를 다방면으로 확장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JYP엔터테인먼트에선 소속 그룹의 세계관과 앨범의 스토리, 음악적 콘셉트까지 담아낸다. JYP 관계자는 “스트레이키즈의 나침반, 트와이스의 캔디봉 등 그룹의 앨범에 담긴 요소와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오브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연차가 오랜 그룹일수록 응원봉은 몇 차례 진화했다. 트와이스의 경우 초기엔 사랑스러운 응원봉이었으나, 이후 세련된 블랙 색상에 트와이스 로고를 새겨 “그룹의 위상을 반영했다”고 한다.

트와이스 응원봉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K-팝 팬덤 사이에선 걸그룹 빌리의 응원봉이 화제였다. 언뜻 ‘부처 형상’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 ‘수상한’ 오브제로 적잖은 관심을 받았다.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빌리의 서사에서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는 ‘종(Bell)’을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빌리의 앨범에서 종은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어떠한 대상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자,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벗어나 한 단계 뛰어넘을 때 사용한 물건이기도 하다. 소속사 관계자는 “이런 부분에서 착안해, 빌리브(팬덤)가 종을 흔들어 응원을 보내주면 빌리와 빌리브는 어디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색상은 빌리의 대표색인 미스틱 블루와 미스틱 바이올렛이다.

그룹 베리베리의 응원봉도 마찬가지다. 응원봉을 처음 만들 당시 멤버들과 논의를 거쳐 디자인했다. 멤버 동호는 “어떤 응원봉을 만들어야 괜찮을까 고민하던 중 우주의 블랙홀처럼 팬들을 사로잡겠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고 했다.

팬덤이 사용하는 만큼 팬덤을 담아낸 응원봉도 많다. 팬타곤은 팬덤 유니버스의 이름을 따 우주의 형상을 한 응원봉을 내놨다. 비투티도 흥미롭다. 큐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본 투 비트’라는 그룹의 의미에 팬덤명인 멜로디가 합쳐져 노래가 완성된다는 세계관이 ‘나팔’ 모양의 응원봉으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팬덤 멜로디가 붙인 이름도 ‘나발봉’이다.

트레저 응원봉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신 응원봉 트렌드는 이른바 ‘봉꾸’(응원봉 꾸미기)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의 진화다. 단순히 불빛이 들어오는 응원도구에서 팬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형태로 나아간 점이 큰 특징이다. 에스파의 응원봉처럼 멤버별 엠블럼을 바꿔 끼울 수 있도록 하거나, 있지처럼 링 형태로 팔목에 착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응원봉은 디자인의 측면에선 2D 시절을 거쳐 입체형 4D로 진화했고, 팬들의 요구에 따라 데코 키트 등 꾸미기를 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가 하면, ‘봉’이라고 특정해 부르지만 다양한 형태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엑소 응원봉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응원봉, 기술의 진화=연출 미학의 진화

응원봉의 또 다른 진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한다. K-팝 그룹이 커지고 응원봉이 다양해지며, ‘기술 경쟁’도 시작됐다. 중앙 제어는 기본, 응원봉간 통합 제어, 수만 가지의 색상 출력, 음악 인식 등으로 압도적인 연출을 완성한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엑소 응원봉이 처음 나왔을 당시만 해도 ‘원컬러 LED’에 온·오프 기능, LED의 점멸 기능 정도만 담고 있었다. 이후 2016년 2.0 버전으로 진화하며 “LED 색상과 점멸을 조정할 수 있는 ‘중앙 제어 기능’”이 마침내 추가됐다.

SM 관계자는 “이 버전을 통해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 연출의 시작을 알렸다”며 “SM은 연출 업체와 함께 최초로 응원봉 연동 어플(Wyth)을 선보이고, 콘서트 좌석별 응원봉 연동과 중앙 제어 기능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팬들이 생동감 있는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첫 걸음이었던 셈이다. 이후 엑소 응원봉은 2018년 3.0 버전으로 진화, “40개의 LED”를 탑재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응원봉 [빅히트뮤직 제공]

하이브에선 ‘응원봉 간의 통합 동시 제어’ 기능을 자체 개발해 모든 공연마다 적용 중이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연 중 무대의 조명이나 LED 영상과 연계해 구역별로 다양한 색과 디자인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공연 중 자주 등장하는 응원봉을 통한 객석의 ‘ARMY(아미)’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응원봉이 구현하는 색상도 어마어마하다. “최대 6만 5000여 가지의 색상(RGB 기준)으로 출력”하는 것도 하이브의 자체 기술력으로 탄생했다. 먼 거리에 있는 관객에게도 “무대와 연계된 몰입형 응원봉 연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알고리즘 최적화를 통해 최소한의 전력으로 빛을 제어하는 것도 특이점이다. 더 긴 시간 동안 응원봉 연출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이브 관계자는 “응원봉을 활용한 공연장 연출은 공연 몰입도를 높이면서 공연장에서의 팬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고도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레저 응원봉 [YG엔터테인먼트 제공]

YG의 자체 기술도 있다. 블랙핑크 응원봉의 ‘중요한 특징’은 “BLE(저전력 블루투스) 연동 사운드캐스트 기술력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안동일 YG플러스 프로덕션 그룹 리더는 “응원봉의 변화를 단순히 콘서트 현장에서만 사용하지 않고 뮤직 플랫폼(바이브, 유튜브뮤직, 스포티파이, 멜론, 지니 등)에서 블랙핑크의 음악에 불빛이 반응하는 기능이 탑재된 YG 응원봉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라며 “현재 대형 공연장 적용을 위해 테스트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K-팝 기획사들이 응원봉 기술력에 투자하는 것은 ‘응원봉의 진화’가 콘서트 미학의 수준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무대뿐 아니라 수만 석의 객석까지 연출의 범위에 포함되는 K-팝 공연은 응원봉을 통한 시각적 변화를 통해 공연의 질을 높여왔다. 뿐만 아니라, 응원봉의 역할을 통해 팬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라는 데에도 무게를 둔다.

안동일 YG플러스 프로덕션 그룹 리더는 “응원봉의 가장 큰 장점은 팬들과의 무대 연출”이라며 “공연의 묘미는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와 팬들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팬들이 응원봉을 들어올려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무대 위에서 열심히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 그 모든 것이 합쳐졌을 때 최고의 무대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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