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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머프마을 시라카와고, 북유럽이 울고간다 [함영훈의 멋·맛·쉼]
유네스코세계유산 시라카와고 합장촌
첩첩산중 산촌서 화약을 만든 이유는?

[헤럴드경제, 기후현=함영훈 기자] 멀리 ‘일본 알펜루트’ 3000m 안팎 고봉들의 봄 잔설이 보이는 산악지대 아래 기후현 북부엔, 가옥의 외형은 오각형 북유럽풍인데 지붕은 풀로 엮은 집 150여채가 모인 초당 마을이 있다.

시라카와고 근경
시라카와고 중경
시라카와고 원경
시라카와고 기념촬영 전망대

주지하다시피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가옥은 눈이 빨리 쏟아져 내리라고 뾰족하게 짓는 경우가 많은데,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덴마크와 이들 건축양식에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벨기에-영국-독일 북부가 그렇다.

▶스칸디나비아식 예각 지붕, 그런데 초당= 이 기후현 시라카와고 합장촌(한자표기의 한글발음은 ‘백천향 합장조’)의 가옥 역시 60도 각도로 지붕 모양을 만들었다. 어쩌면 스칸디나비아보다 눈이 더 많이 오기 때문에 지붕의 예각은 그들보다 가파르다.

전형적인 가옥 구조

눈이 와도, 눈이 오지 않아도, 이런 초당 15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풍경화를 연출한다.

딱딱한 건축재료로 지은 북유럽 가옥과는 달리, 지붕을 풀로 이었기 때문에 꺾어지는 부분이 동글동글해 포근함을 준다. 어찌 보면 개구쟁이 스머프 마을 같기도 하다. 600여명의 주민이 지금도 거주한다.

몇몇 사진가들은 눈이 많이 온 날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많은 여행자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눈 온 때는 모두가 하얗기 때문에 단조롭고, 5월, 뒷산에 잔설이 남고 마을에는 눈이 없는 때, 시라카와고 합장촌의 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기에, 더 멋지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봄이 온 시라카와고

▶겨울 보다 봄이 더 멋지다= 한국인 일행이 모두투어 버스를 타고 다녀온 때는 4월 하순이었고, 고동색과 노랑색이 어우러진 가옥을 흰색 눈, 녹색 초원, 진초록 침엽수군락, 파랑색 강물, 분홍색 꽃, 황토색 밭이 호위하는 풍경이었다.

이 마을은 통째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첩첩산중 속 은둔의 마을이다.

모두투어 임지은 역사문화해설가에 따르면, 이들은 세상이 달라진 1868년 에도시대 종료, 메이지유신 선포 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2023년 봄에도 외지인들의 방문이 많아졌을뿐,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화로

가옥의 이름은 갓쇼즈쿠리(合掌造:합장조)이다. 나무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지붕은 억새의 일종인 ‘새’를 엮은 다음 조롱박나무 줄기로 묶어 고정시켰다. 해발 2000~3000m 설산을 지붕 삼아 푸른 초원 위에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촌 풍경을 연출한다. 일부 일본인들은 알았겠지만, 1970년 독일 건축가 브루너가 사진첩을 내면서 지구촌에 널리 알려졌다.

▶예쁜 산촌서 화약 제조를?= 농사 지을 땅도 넓지 않아, 주민들은 양잠, 짚신, 화약 제조, 직물로 생업을 영위한다. 직물은 마에다 영주 가문에 시집 온 도쿠가와 가문의 타마공주와 궁녀 수백명이 주부(中部)지방 일대에 널리 발전시켰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데, 화약 제조를 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다락 작업장 겸 창고

할 말은 많지만 간략히 그 이유를 설명하면, 16세기 일본 큐슈남부 가고시마에 표착한 포르투갈 무장선단이 이 지역 영주에게 조총 2자루를 거금(성 한 채 값)에 팔았고, 이를 쇼군인 오다노부나가가 알게 되면서, 조금씩 퍼지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철제무기에 정통한 선교사를 군사외교 고문으로 앉혀 시행착오 끝에 일본식 조총과 화약을 만들고는 부하의 배신 등의 이유로 몰락한다.

정권교체 혼란기를 거쳐 토요토미 집권 이후에도 지역별 군웅이 할거하던, 일본내 땅따먹기 경쟁의 기운이 여전했고 신무기와 화약 확보 경쟁도 이어진다. 그러나 쇼군에게 걸리면 모반의 뜻으로 간주돼 희생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총과 화약 확보경쟁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강타를 맞고 패퇴한 토요토미 정권은 비교적 일찍 몰락한다.

도쿄와 멀지 않아 새로운 쇼균 도쿠가와 권력의 더 많은 규제를 받아야 했던 주부지방 패권자 마에다 가문은 겉으로는 ‘바보 영주’라는 말을 들어가며 자신들이 약하다는 점을 쇼균에게 보이려했으나, 은밀하게는 화약을 제조할 장소를 물색했고, 그 최적지로 시라카와고 합장촌을 선택했다. 이 은둔지 마을에 화약제조가 주업 중 하나가 된 이유였다. 나중에 역사기록으로 확인됐지만, 18~19세기 마에다 가문은 도쿠가와 쇼균 보다도 많은 화약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락방의 직조 도구들

▶“가장 완벽한 전통 건축물”= 화약에, 양잠에, 직물까지, 중요한 산업 인프라가 이 마을에 많다보니, 외부로 출타해야할 때, 혹은 여행갈 때, 마을 주민들은 3개조로 나누어, 날을 맞춰, 번갈아 출타해 마을이 텅 비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대가족이 함께 살기 때문에 모든 집은 2층 이상이고, 3~4층 되는 집도 적지 않다. 층과 층 사이 구석진 마루바닥에서 양잠을 하는데, 이는 화약제조와도 연관이 있다. 누에똥 성분이 화약원료인데, 4년 동안 발효하고 끊여 말리고 저장하는 과정을 반복한 뒤, 특정 물질과 섞으면 재래식 화약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의 분뇨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발효때 가스의 효능이 더 강해지는 원리와도 연관이 있다.

집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공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도 키우고, 집주변 화단에 수선화 등 꽃들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유럽과 미주에 이 마을을 알린 브루너는 “가장 완벽한 전통 건축물”이라고 소개했다.

전망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가족여행객들

다소 간격이 있는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하도록 만들어 놓은 길은 이제 여행자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편하게 탐방하는 길이 되었다. 마을 북쪽 잘 닦여진 산길로 15분 가량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반드시 올라서 마을을 내려다봐야만 시라카와고 합장촌의 진면목을 볼수 있다.

▶버킷리스트 하나 해결= 오뉴월에도 멀리 고산의 잔설이 여전히 보이고, 마을은 초록초록하며, 그 사이사이로 스머프네 마을 중 가장 멋진 집들만 착상한 듯한 풍경은 ‘버킷리스트’ 하나 해결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감동적이다.

보여주는 집의 창밖으로 본 마을

마을 주변으로 쇼강이 휘감아 돌아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자연 해자’ 역할을 한다는 느낌, 안동 하회마을을 닮았다는 느낌도 든다.

5월말까지는 한국의 모두투어 등이 전세기를 내어서 진행하는 알펜루트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개인 여행으로 왔다면 버스 도착 직후 떠나는 버스를 예약하는 것이 좋고, 점심시간엔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므로 미리 혹은 늦게 식사를 하는 것이 시간관리에 효율적이겠다.

지식백과에 따르면, 행정구역상 시라카와고(白川鄕)의 면적은 356.55㎢인데, 96%가 오지 숲이다. 마을 자체 해발은 500m이고 하쿠산(白山, 2702m)이 멀지 않다. 연평균 강수량은 2415㎜로 많고, 강설량은 무려 1055㎝라고 한다.

이 마을과 비슷한 가옥형태는 기후현 시라카와고와 현 경계를 맞대고 있는 알펜루트의 거점 도야마현의 스가누마(菅沼), 아이노쿠라(相倉) 마을에도 있다. 시라카와고가 원조임은 분명한데, 가장 큰 집은 아이노쿠라에 있다고 한다.

시라카와고로 흐르는 쇼강 구곡저수지. 도야마-시이카와-기후현 접경지이다.
시라카와고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쇼강 출렁다리

시라카와고 마을을 충분히 구경하는데에는 1시간 30분 정도이고, 모두투어 패키지는 4개 현의 명소와 해발 3000m 안팎 알펜루트와 설벽을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등정하는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1시간 10분 가량 자유시간을 준다. 늦게 오면, 일행 20명의 커피를 사야하는 게 오대양 육대주 한국형 패키지 여행의 철칙이 되어가고 있다.

규슈지방, 교토·나라현, 도쿄인근 사이타마 등에 각각 가야인, 백제인, 고구려인 족적이 있는데 비해, 기후현은 신라인들의 초기 개척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문득, 신라인들의 일본 개척을 담은 설화 ‘연오랑 세오녀’가 떠오른다.

[도움말: 모두투어·임지은 역사해설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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