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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그미족이 ‘가·나·다’를 쓴다 [헬로 한글]
국내 언어학자 4명 ‘치뗌보’ 표기 고안
아이들은 30분만 배우면 자기 이름 써
최관신 선교사가 트와족에게“ 치뗌보 정음”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치뗌보 정음은 콩고 동부 지역에 모여 사는 트와족의 고유 언어 치뗌보를 표기하기 위해 한국인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개량해 만든 표기 체계다.

“가. 나. 다~~.”

중앙아프리카 콩고 동부의 열대 우림 속 부냐키리라는 마을에는 이처럼 한글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작은 키 탓에 피그미족으로 알려진 수렵 채집인 트와족이다. 이들이 배우는 문자는 언뜻 보기엔 한국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치뗌보 정음’이다. 치뗌보 정음은 4명의 국내 언어학자가 트와족의 고유 언어인 치뗌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한 문자이다.

트와족은 사는 지역에 따라 치뗌보 외에도 다른 여러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데, 하나같이 문자가 없다. 지난 2013년부터 트와족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해온 최관신 선교사는 “2020년 1월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한글학교 교사들이 원주민 초등학교 교사 15명에게 (치뗌보 정음 체계를) 가르쳤고, 이어 같은 해 2월에는 서울에서 훈민정음학회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하며 치뗌보 정음 교육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지금까지 트와족 성인 약 40여 명과 청소년 약 500여 명이 치뗌보 정음 체계를 배웠다”며 “아직 능숙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간 트와족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할 수 있는 표기 체계를 제대로 갖춘 적이 없었다. 부족 역사가 시작된 지 수천 년에 이르지만 후손들이 선조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의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들에게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와족이 한글과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5년 부족장의 여동생이 한국을 방문하면서다. 한국 언어학자들이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을 위해 한글을 개량한 표기 체계를 만들어줬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들에게도 글자를 만들어 달라 요청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에 서강춘 전 국립국어원 원장은 김주원 서울대 교수, 고동호 전북대 교수, 박한상 홍익대 교수 등과 함께 치뗌보 정음을 만들었다.

부냐키리에서 이들에게 치뗌보 정음을 가르치고 있는 최 선교사는 현지 아이들이 30분 정도만 배우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무엇을 가르치든 간에, 일단 먹을 것을 줘서 학교에 오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트와족이 원래 거주지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되면서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의 평균 기대 수명도 46세에 불과하다.

최 선교사가 속한 작은손선교회는 다른 선교 단체와 함께 지난 1월 현지에 간호 학교를 건립했다. 이는 교회, 초등학교에 이어 부냐키리에 세워진 세 번째 인프라 시설이다. 또 치뗌보 정음으로 쓰인 성경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코리아헤럴드=김소현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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