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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연예톡톡]시대극도 요렇게 만들면 새롭게 보인다 ‘오아시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KBS2 월화 드라마 ‘오아시스’의 촌빨 날리는 장면들이 나는 좋다. 정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아시스’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지는 격변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자신만의 꿈과 우정 그리고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몸을 내던진 세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물이다.

시청률은 꾸준히 우상향 하더니 지난 11일 방송된 12회는 전국 기준 7.1%에 달했다. 이 시대극속에는 영화 ‘친구’ 느낌도 들어가 있고, ‘야인 시대’ ‘빛과 그림자’의 분위기도 있지만 ‘오아시스’만의 길을 꿋꿋하게 가고 있다.

현재의 관전포인트는 최철웅(추영우)쪽 사람들에게 매번 당하며 죽은 줄 알았던 이두학(장동윤)이 재일동포 지하경제의 거물인 채동팔(김병기)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고, 3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모습이다. 두학은 철웅과 강여진(강경헌), 황충성(전노민)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여야 복수도 완성된다.

두학이 3년간의 부재동안 연인인 오정신(설인아)과, 두학과는 형, 동생 하는 친구이며 사실은 형제 사이인 철웅이가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정신은 철웅의 도움을 받아 영화사를 오픈하며 재기했다. 철웅은 정신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정신은 ‘친구’로서의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철웅은 정신에게 도움을 주는 등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정신은 한결같다. “넌(철웅) 나한테 그런 존재야. 소중한 추억같은. 하루하루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친구. 난 소중한 친구 잃고 싶지 않아.”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 정신에게 허탈감을 느낀 철웅, 철웅이 아무리 잘해줘도 ‘친구’로 선을 긋는 정신이의 춘향과 같은 지조. 시대극에서는 이런 게 더욱 더 잘 보인다. 정신은 두학과 철웅을 친구로 처음 만났지만 사랑은 두학과 하고 있다. 두학은 애인, 철웅은 친구다. 정신의 단호함이 ‘오아시스’의 멋이기도 하다.

‘오아시스’는 안전기획부에서 사람 하나 때려잡는 건 대수롭지 않은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대와, 또 정치깡패가 등장하고, 용역건달들을 동원해 원주민을 내쫓아 철거민들을 대거 만들어내고, 부동산 투기 열풍이 등장한다.

또한 프락치까지 설정돼 있는 대학생들의 체제 저항 데모와 1990년대 IMF 외환위기는 당시를 겪었던 시청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격동기에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남자들간의 진한 우정과 의리, 그리고 로맨스는 가난했던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과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두학과 철웅, 정신은 삼각관계속에 있지만, 정신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일과 사랑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이라는 점이 멋있게 다가온다.

정신이 자신의 스승이자 사회적 엄마인 영화 독점 배급 제작업자 차금옥(강지연)을 상대로 해 자신의 지분을 양보하지 않으며 담판을 짓는 단호함은 정신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멋있는 젊은이다. 요즘 단어로 걸크러시의 원조 같은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방송가에는 시대극이 별로 없다. KBS가 시대극을 이어왔지만, KBS에서도 ‘하나의 조국 두개의 이념, 하나의 사랑 두개의 운명‘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서울 1945’(2006)이후 재밌게 본 시대극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아시스’의 제작과 편성이 반갑게 느껴졌다. 시대물은 지금과는 다른 독특한 정서를 잡아낼 수 있다. ‘오아시스‘에도 두학은 소작농의 아들이고 철웅은 지주집 도련님이다.(출생의 비밀이 있다.) 설정은 ‘오아시스’보다 훨씬 이전 시대를 다루면서 양반 계급의 몰락과, 가혹한 농민수탈 등을 그린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두학은 철웅의 고의성 없는 살인을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갔다왔다.

두학의 아버지 이중호(김명수)는 아들 두학에게 철웅이보다 높은 성적을 받지 말라고 하고, 결국 철웅보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농고로 전학 보내버리는 사람이다. 안기부 간부인 황충성(전노민)은 이런 두학의 부친을 교통사고를 위장해 죽인다. 이런 건 현대물에서는 쉽게 그릴 수 없는 설정이다.

그러니 두학과 철웅, 그리고 정신까지, 인물들이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두학은 건달이 되고, 철웅은 검사가 되는 등 너무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온갖 난관을 극복하면서 삶을 개척해나갈지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들의 성장을 보는 게 시대극의 묘미다.

이런 시대물은 복고와 추억이 포함돼 있는 감성이지만 현대물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오아시스’는 적어도 시대물을 이어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시대물이 사라져가는 이맘때, ‘요로코롬’ 만들면 시대극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애플티비+ ‘파친코’는 4대에 걸쳐 이주 역사를 담은 한국인을 소재로 미국 제작진이 만든 시대물이다. ‘오아시스’ 제작을 계기로 한국의 역사까지 담는 대하 시대극이 국내에서 소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은 물론이고 글로벌하게 확장될 수도 있는 시점임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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